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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원이 되고 싶어 (0차원 에디션)
박상영 지음 / 문학동네 / 2021년 10월
평점 :
박상영의 장편 소설 『1차원이 되고 싶어』를 다 읽고 나서 한참을 생각했다. 특별한 이야기였을까 하는. 이야기는 단순했다. 중학생 해리가 친구 윤도를 좋아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 밸런타인데이에 자신이 만든 수제 초콜릿을 윤도 책상 위에 올려놓는다. 학원 복도에서 무늬를 마주치고 어쩐지 그 애는 모든 걸 다 알고 있다는 얼굴로(나중에야 밝혀지지만 실제 무늬는 모든 걸 다 알고 있었다) 해리를 데리고 다니면서 담배 셔틀을 시킨다.
그리고 「캔모아」 챕터가 있었다. 무늬는 해리가 윤도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퍼뜨리지 않았다. 비밀을 함구하면서 해리의 비주얼을 마음껏 이용한다. 덩치와 외모 때문에 가게 주인들은 해리에게 술과 담배를 판다. 좀 사는 무늬는 에쎄라이트에서 세븐스타로 갈아탈 거라면서 교동시장에서도 으슥한 곳에 위치한 미자주류로 윤도를 끌고 간다. 무사히 물건을 사오면 맛있는 걸 사준다면서. 임무를 마치고 해리는 무늬와 경양식 집에 가서 밥을 먹고 캔모아로 간다.
여기서 캔모아 아는 사람 소리 질러. 중학생들끼리 좋아하고 고백하다가 까이는 이야기를 읽고 있어야 하나 할 때쯤 캔모아라는 세 글자를 보는 순간 『1차원이 되고 싶어』를 읽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캔모아는 그러니까 추억이 담긴 곳이다. 그 시절이 아닌 그 시절에서 한참 지난 어느 여름날의 추억이. 캔모아에서 우리는 밥보다 비싼 과일 빙수를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먹었다.
2000년대 초반에 학교를 다닌 이들이라면 환호하면서 반가워할 소재들이 『1차원이 되고 싶어』에는 가득하다. 만화, 영화, 음악, 장소까지. 공부 빼고는 다 열심히 했던 시절이라 특히 문화생활에는 없는 돈도 만들어서 투자했던지라 해리가 보는 만화 윤도가 보던 영화 그들이 듣던 음악에 깊이 공감할 수 있었다. IMF 이후로 집안 사정이 좋지 않은 해리는 부모님 걱정을 시키지 않기 위해 공부를 열심히 한다. 그 점 빼고는 해리의 감정, 불안, 우울에 동조할 수 있었다.
10대들의 성장 서사를 다룬 『1차원이 되고 싶어』가 소설로 쓰여 읽힐 수 있는 특별한 지점이 무엇인가. 이미 너무 많은 성장 소설이 있는데. 해리는 남자고 윤도도 남자다. 무늬는 여자고 무늬가 좋아하는 나미에도 여자다. 소설을 읽고 있으면 그건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나 자신을 발견할 수 있다. 『1차원이 되고 싶어』가 특별한 소설이 될 수 있는 이유다.
좋아하면 좋아한다고 말하는 게 어때. 해리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다. 단순하게 생각하란 말이다. 제목도 그런 의미 아닐까. 여리고 섬세한 나머지 툭 치면 눈물이 나오게 마음의 모드가 설정되었던 그때의 우리에게 바치는 소설, 『1차원이 되고 싶어』. 세상의 고민을 모두 내 것으로 받아들인 채 죽도록 우울하던 그 시절의 우리를 떠올리며 썼을 소설, 『1차원이 되고 싶어』.
모두에게 공평하고 정의로워질 세상이 온다면(진짜 그런 날이 오긴 올까?) 『1차원이 되고 싶어』는 시시한 소설이 될 것이다. 해리가 느꼈을 부당함과 폭력적인 주변 세계의 시선이 몇 백 년 후의 세상에서는 소멸되었을 테니까. 아직은 아니니까. 여전히 남자가 남자를 여자가 여자를 사랑한다는 사실이 보편적으로 용인되지 않아서 『1차원이 되고 싶어』는 특별한 이야기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