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속의 겨울
문진영 지음 / 실천문학사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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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 이틀을 누워서만 보낼 수 없다는 생각에 일요일 오후에 컴퓨터를 켰다. 되도록이면 금요일에는 야근을 하지 않는 게 좋겠다. 늦게까지 일한 여파는 다음날 그 다음날에도 나타났다. 이불을 빨고 청소를 해야지 했던 계획은 날아가고 내내 누워만 있었다. 거실에서 방에서. 밥을 먹고 자고. 좀 움직이다가 다시 자고. 안 되지. 안 돼. 이러면 안 되는 거지. 오후만 남은 일요일에 책상에 앉았다.


예스24에서 만드는 채널예스 웹진을 종종 본다. 관심사라고는 책과 영화뿐이라서. 최근에는 하나 더 늘었다. 드라마. 한동안 클리셰 범벅인 드라마는 질색이라고 생각했는데. 다시 드라마에 발을 들였다. 「미조의 시대」 이후에 좋아하게 된 이서수 작가의 글이 있었다. 「신간을 기다립니다 문진영 소설가에게-이서수 작가」. 어렴풋이 문진영의 『담배 한 개비의 시간』을 읽은 기억이 났다.


최애 작가가 다음 작품을 기다린다니. 그러면서 소설집 한 권을 소개해 줬다. 열 편의 소설이 실린 『눈 속의 겨울』을 전자책으로 구매해 일요일 저녁에 찬찬히 읽어 갔다. 직장을 옮긴 뒤로 월요병은 괜찮아졌다. 정말 다행이다. 그때 그만두지 않았으면 어떻게 됐을까. 『눈 속의 겨울』은 일요일 저녁과 주중의 저녁에 읽기 좋은 소설이라는 걸 다 읽고서야 깨달았다.


심각한 일은 이미 일어났고 앞으로 일어난다 해도 이보다 심각해질 수는 없다고 열 편의 소설은 말하는 듯해서.


생각해 보면 그 일들은 지나가는 일에 불과했다. 아닌 건 아니라고 말하고 멈추면 되는 일이었다. 표제작 「눈 속의 겨울」의 주인공 나는 7년 사귄 애인과 결별하고 호주로 유학을 떠난다. 계획은 없고 무작정. 청소 일을 하다가 현지인 집에 들어가 아이를 봐주는 일을 하고 있다. 주희지만 주이라고 불리면서. 미아라는 아이를 돌본다. 눈이 없는 크리스마스를 함께 보내며 주희는 영원의 의미를 생각한다. '그건 멈췄던 시계가 다시 움직인다는 뜻. 모든 것에는 끝이 있다는 걸 안다는 뜻.'


「방공호」는 출장 때문에 집을 비운 X의 집에 머무는 여자들의 이야기를 그린다. 임시 고양이 집사를 자청하며 X의 집에 머무는 나는 그곳에서 자꾸만 비밀번호를 입력하며 집으로 들어오는 사람들과 만난다. 모르는 사람들과도 밥을 먹으며 침묵을 공유할 수 있는 X의 집에 가고 싶다. 「남쪽의 남쪽」은 취업 대신 카페에서 일하는 두 청춘의 일상이 담겨 있다. 소설을 읽으며 자꾸 엉뚱한 생각이 들었다. 나이가 들어도 카페에서 일할 수 있을까 하는.


하나의 서사도 이어가지 못하고 문장과 문장으로만 끝나는 소설은 질색이다. 이건 취향 차이니까 어쩔 수 없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아남으려고 어쩔 수 없이 돈 벌러 나가는 활동 밖에는 하지 않는 내가 원하는 건 간접적으로라도 다양한 사람들의 사는 모습을 보는 것이다. 비슷한 고민이 있지만 쉽게 좌절하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 좌절하고 실망해도 다시 뚫고 나가는 서사를 원한다. 그런 면에서 문진영의 『눈 속의 겨울』은 오래 기억에 남을만한 소설이었다.


정상이라고 불리는 가족의 형태는 간단히 무시한다. 누구와도 가족이 될 수 있으면 기존 가족의 모습이 이상하다고 말한다. 각자의 방을 가지고 안전하게 살아가는 일이 계속되기를 기도하듯 소설은 쓰였다. 알 수 없는 불안과 이유를 생각하기도 싫은 우울로 지쳐 있다면 『눈 속의 겨울』을 읽었으면 좋겠다. 이서수 소설가의 말대로 살아가는 것이 아닌 살아내는 소설 속 모습이지만 그것만으로도 위로가 된다. 같이 살아내고 있구나. 나만이 아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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