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별인사
김영하 지음 / 복복서가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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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말을 하라고 했다. 글쎄. 나는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마지막이라고 하니까 한 번도 해보지 않은 말이 나왔다. 미안하고 사랑해. 그렇게 한 사람과 작별 인사를 나눴다. 화장을 해서인지 죽은 것 같지 않았다. 죽으면 어떻게 되는 걸까. 스티븐 킹식으로 해석하면 다른 세계에서 고통스러운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하면 슬프고. 김중혁식으로 삶도 죽음도 그게 무슨 의미가 있겠어 자문하며 의미 없음에 의미를 두면서 슬퍼지지 않으려 애쓰면 되고.


할 수 있는 건 딱히 없기에 책을 많이 읽었다. 좋은 이야기도 아닌데 죽은 사람에 대해 자주 말하면 누가 좋아할까. 이야기할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니어서 책을 읽었다. 소설은 삶보다는 죽음을 자주 다루고 있었다. 몰랐다. 내가 겪기 전까지는 모를 일이었다. 비로소 경험하고서야 겪어 내고서야 알 수 있었다. 모든 건 그랬다. 공감이란 함부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네 상처. 네 억울함. 네 분노. 그것에 대해 쉽게 동조해서는 안 되는 일이었는데.


김영하의 『작별인사』는 자신을 인간이라 믿는 소년이 나온다. 이름은 철이. 인공지능을 연구하는 연구소에서 아버지와 함께 살아간다. 학교에는 가지 않고 집에서 공부한다. 배경은 로봇과 인간이 공존하는 어느 미래 시대. 사람들은 상점에서 원하는 기능의 로봇을 자유롭게 산다. 샀다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집 한 쪽에 넣어두거나 폐기한다. 아버지는 철이에게 밖으로 나가지 말라고 한다. 아버지를 마중 갔다가 철이는 인간이 아니라는 이유로 수용소로 보내진다.


자신을 인간이라고 믿었던 철이는 수용소에서 진실을 마주한다. 소설은 인간다움이 무엇인지 시종일관 묻는다. 무엇이 인간을 인간으로 만드는가. 수용소에서 만난 친구들과 철이는 자신의 정체성을 두고 고민한다. 로봇과 인간이 함께 사는 미래는 내가 살아 있는 동안에는 오지 않을 것 같지만 이미 기계가 인간의 일을 대신하고 있는 시점에 인간다움은 무엇으로 증명해야 하는가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작별인사』에서 기계의 죽음은 전원 코드를 빼는 것, 전기가 없어 더 이상 충전할 수 없는 상태라고 표현한다.


기계에도 감정이 있다면. 전원이 나간다고 해서 감정과 지능까지 없어지는 걸까. 소설은 철이가 몸을 여러 번 바꾸는 장면을 보여주면서 인간의 나약함을 고발한다. 인간의 죽음은 육체가 더 이상 움직이지 않는 것이다. 육체가 사라지고 영혼은 어떻게 되는 걸까. 철이가 보여준 것처럼 인간의 영혼도 이곳저곳으로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다면. 작별인사는 왜 한 걸까. 마지막이 아니고 단지 우리가 느낄 수 없을 뿐 죽은 자는 여기에 있는데.


『작별인사』는 죽음을 이야기하는 소설이다. 너무나도 많은 죽음이 있었다. 그걸 나는 소설로 신문으로 누군가의 경험담으로 듣기만 했다. 오만하게도 극복, 담담함, 받아들임이라고 첨언했다. 죽음이라는 건 극복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 아님을 안다. 죽음이 아니더라도 우리의 고통은 쉽게 이겨낼 수도 잊어버릴 수도 없다. 떨쳐내려고 할수록 기억은 짙어진다. 해마 안에 잘 묻어두었다가 뛰쳐나오면 그러려니 해야 한다. 숨을 크게 내쉬고 맛있는 음식을 먹을 거라고 이야기해줘야 한다.


마지막 인사를 할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매일의 안부를 묻는 일. 작별 인사가 될 수도 있는 말이니 나의 일상의 언어를 다듬어야지. 날카로운 말은 둥글게 둥글게. 김영하식으로 죽음이란 영혼의 유영이다. 어디에나 존재하고 어디서든 만날 수 있는. 그래서 그 말은 마지막 인사가 아니어서 다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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