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진과 데이브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40
서수진 지음 / 현대문학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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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다가 환호하는 순간은 그런 때이다. 현실에서 내가 느끼는 감정을 말로도 글로도 표현하지 못하는 걸 책에서 정확한 문장으로 쓰여 있는 걸 본 순간. 아, 내가 이상한 인간은 아니구나. 나 말고 다른 사람도 뭣 같은 기분과 감정을 느끼며 살고 있구나 안도하기에 이른다. 서수진의 소설 『유진과 데이브』의 주인공 유진은 사귄 지 얼마 안 된 남자친구 데이브의 집에 인사를 간다. 밥을 먹고 난 후의 설거지거리를 본 순간 고민한다.


자신이 사용한 컵만 씻을까 하다가 '얌체처럼' 보이지 않기 위해 꽉 조인 원피스를 입고 설거지를 하려고 한다. 데이브의 가족은 경악을 하지만 유진은 그들이 왜 그런 반응을 보이는지 얼른 이해하지 못한다. 유진은 한국인이고 데이브와 그의 가족은 호주인이다. 한국에서라면 유진은 밥을 먹음과 동시에 일어나야 하고 자연스럽게 주방에 들어가 싱크대 앞에 서 있겠지. 당연하게도 뼛속까지 한국인인 유진은 호주에 유학 와서도 한국인의 습관을 버리지 못한다.


뒤늦게 입시 미술을 준비하고 미대에 들어간 유진. 엄마는 추가 근무까지 하며 일을 했지만 유진의 유화 물감 값까지는 감당하지 못한다. 유진은 학교에 다니면서도 일을 해야 했고 자신의 그림을 그린다는 꿈은 포기했다. 미술 학원에서 일을 하다 호주로 유학을 갔다. 그곳에서도 생활은 만만치 않았다. 카페에서 일을 하고 일이 끝나면 술집에 가서 술을 마시는 게 그나마 호주 유학 생활의 낙이었다. 그곳에서 데이브를 만났고 결혼 생각도 없는데 집에 인사를 갔다.


『유진과 데이브』는 한국인 유진과 호주인 데이브의 연애기를 그린다. 문화 차이는 말할 것도 없고 사고방식도 다른 그들은 자주 싸움을 한다. 데이브의 가족은 편하게 옷을 입고 있는 반면에 유진만 차려 입고 가서 불편하게 밥을 먹는다. 과자로 나온 음식이 식사인 줄 알고 유진은 그것으로 배를 채웠고 나중에야 식사가 준비된다는 걸 알았다. 통창이 있고 거대한 집에서 데이브의 가족은 전쟁과 난민을 주제로 이야기를 나눈다. 유진은 불편하고 기묘한 기분에 휩싸인다.


유진이 한국에 들어오고 그걸 계기로 데이브도 한국에 와서 머문다. 나이 서른이 넘은 유진은 한국말이 서툰 데이브의 한국 생활을 도와준다. 집도 잘 살면서 데이브는 뷰가 좋다는 이유로 옥탑방에 집을 마련한다. 그곳은 택시도 갈 수 없다면서 돌아가는 곳이다. 유진의 엄마와 언니, 형부를 만나는 자리에서는 철물점에서 발견한 빗자루를 선물로 사겠다는 데이브. 유진은 간신히 말린다. 데이브가 사들고 온 건 작은 화분이었다.


언뜻 보면 『유진과 데이브』는 국적이 다른 여자와 남자의 연애 갈등사를 다루는 것 같지만 그 안에는 다양한 논쟁이 숨어 있다. 유진 자신은 호주에서 인종 차별을 겪지 않는다고 천진난만하게 말하지만 아직 차별을 제대로 경험하지 않았거나 경험했더라도 외면하고 싶어서 하는 이야기였다. 다시 한국으로 돌아온 유진은 한국식의 제대로 된 차별을 당한다. 인간은 어떡하든 행복해지고 싶어 한다. 예전보다 덜 불행하고 싶어 하기도 하고. 자신의 노력이든 아니든 과거보다 나아졌다고 해보자. 만족할까.


욕심은 끝이 없어서 다른 이의 행복을 탐하며 자신의 오늘이 불만족스럽다. 한국보다 호주가 낫겠지. 유진은 호주로 돌아가지만 그동안 외면했던 차별의 현장에 도착했을 뿐이다. 원하는 그림을 그리지만 직장은 얻지 못한다. 하나를 얻으면 하나를 더 얻고 싶다. 인간의 마음이다. 얻은 하나에 만족하기 보다 얻지 못한 하나에 서글프고 우울하다. 연인 간의 불화를 반복적으로 그리는 듯하지만 『유진과 데이브』는 인간이 삶에서 느끼는 불만족의 풍경을 경쾌하게 드러낸다. 꿈을 이룬 순간에도 마음껏 행복하지 못하는 나, 한국인의 애처로운 얼굴이 담겨 있다.


『유진과 데이브』에는 각종 클리셰가 없다. 유진의 엄마는 데이브를 있는 그대로 본다. 언니와 형부도 유진보다 더 데이브를 포용한다. 유진만 한국 정서에 과몰입해서 데이브를 한국화하려고 한다. 소설은 유진과 데이브 어느 쪽에도 손을 들어주지 않는 균등한 시각으로 쓰였다. 유진 편을 들고 싶다가도 데이브에게도 마음이 기우는 식이다. 다들 그러고 있진 않은지. 회사에서 내 물컵 씻으러 갔다가 싱크대에 놓인 컵과 그릇을 본능적으로 씻고 있진 않은지. 애인 집에 가서도. 설거지 그거 안 해도 뭐라고 하지도 않는데 내가 찔려서 '얌체처럼' 보이기 싫어서.


진짜 눈치가 있는 사람은 눈치가 없는 척을 한단다. 『유진과 데이브』의 주인공 유진은 한국에서 살아남느라 없는 눈치 있는 눈치 다 끌어모아 가며 살았다. 그걸 호주에서도 써먹으려고 했지만 번번이 실패한다. 공부도 많이 하고 배울 만큼 배워 더 배우기 위해 유학도 간 유진이 남의 집 주방에서 설거지를 하려는 모습이 짠하고 좀 그렇다. 이때만큼 남보다 뛰어나다는 공감 능력이 원망스러울 수가 없었다. 나, 여성, 한국인, 받고 호주인 더블로 지구촌에 사는 우리들. 상처를 내면화하기보다 다소 거칠더라도 드러내면서 치유하는 과정을 『유진과 데이브』는 그려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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