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일
김중혁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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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나의 카톡 상태 메시지는 '그게 무슨 의미가 있겠어'였다. 김중혁 소설 『나는 농담이다』의 주인공 송우영의 독백 대사였다. 때론 단순한 문장이 오래도록 뇌리에 남는다. 사람이 죽고 다치고 사라지기까지 하는데 아등바등 살아서 악착같이 돈은 모아서 뭐 하냐 그런 생각들을 마구잡이로 하던 때 만난 문장이었다. 죽음이라는 걸 실감하기 전에는 옹졸하고 갑갑하게 살았다. 지금도 뭐 여전히 다르지는 않지만. 그때보다는 지금이 아주 조금 어 리를 마음이 넓어졌다.


신작 소설집 『스마일』에 실린 「휴가 중인 시체」의 주인공 주원 씨가 하는 말 '우리 힘으로는 안 되겠네요'로 상태 메시지를 다시 바꿨다. 한동안 '그게 무슨 의미가 있겠어'였다가 이제 '우리 힘으로는 안 되겠네요'로. 관심도 없겠지만 그래도 누군가 본다면 이 사람 참 부정적이다 싶겠다. 원래는 「왼」에 나오는 케빈의 '그 의미를 찾는 게 우리가 할 일이야'로 하려고 했다.


그러니까 '그게 무슨 의미가 있겠어'에서 '그 의미를 찾는 게 우리가 할 일이야'로 하면 앞과 뒤의 연결이 자연스럽겠지만 남의 프로필을 보면서 그런 생각을 누가 하겠는가. 나만 신경 쓰면서 살고 있는 거지. 그리하여 내가 발견한 김중혁 소설 세계관의 변화는 이런 것이다. 무슨 의미가 있냐고 질질 짜다가 먹고살려고 정신 차리다 보니 의미가 생기고 그 의미를 다시 찾아가는 과정을 『스마일』은 보여준다. 여행 유튜브 곽튜브를 보다 보면 심심찮게 볼 수 있는 자막이 있다. '무슨 의미?' 대개 어떤 여성이 친절을 보여줄 때 곽튜브가 즐겨 쓰는 말이다. 여행도 의미를 찾아가는 과정의 일종이니까. '무슨 의미?'하면서 다니는 것도 의미가 있다.


죽은 사람의 얼굴을 보고서 그가 웃고 있다는 걸 발견한 남자의 이야기 「스마일」로 의미 찾기를 시작해서 경비행기에서 추락해 플라스틱 섬에서 표류한 조이의 생존기 「심심풀이로 앨버트로스」, 왼손잡이 부족을 관찰·연구하면서 악수의 의미를 되새기는 「왼」, 별장으로 가다가 자신의 자동차가 해킹 당해 곤란을 겪는 설정의 「차오」, '나는 곧 죽는다'라는 글귀를 써서 여행 중인 사람과 동행하는 논픽션 작가의 회상기 「휴가 중인 시체」까지 『스마일』은 살아 있으면서도 끊임없이 죽음을 생각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담담한 문체로 그린다.


어쩌면 살아 있다는 건 우리의 거대한 착각이 아닐까. 『스마일』은 질문한다. 실수로 아이를 죽일 수도 있었다는 걸 받아들이느라 버스 한 대로 여행을 하는 주원 씨는 차에 문제가 생겼을 때 '나'에게 무심하게 이렇게 말한다. '우리 힘으로는 안 되겠네요' 그리고 '사람은 얼굴이 답안지예요. 문제지는 가슴에 있고 답안지는 얼굴에 있어서 우리는 문제만 알고 답은 못 봐요. 그래서 답은 다른 사람만 볼 수 있어요. 사람과 사람은 만나서 서로의 답을 확인해 줘야 한대요' 그러고선 '나'의 얼굴에서 29라는 답을 도출한다.


일하다가 죽을 수도 있겠구나. 한 번 죽음의 고비를 넘기고 나니 모든 게 아니 일정 부분은 가벼워지고 시시해졌다. 까불이라서 염세주의자까지는 되지 못하고 사소한 일에도 의미를 부여하면서 정당성을 찾는 행위를 그만하게 되었다. 그냥 그렇게 됐고 그럴 수도 있으며 그래도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 김중혁의 소설은 답답하고 무거운 기운이 나를 감싸고 있을 때 귀신같이 알고 찾아와 시원한 바람이 부는 그늘로 데려다준다. 단어로만 알고 있던 청량감을 느끼게 해준다.


소설의 내용은 시원함, 그늘, 청량감과는 멀고도 먼 데. 나만 그렇게 느낀다. 한 문장이. 한 문장씩을 던져 나를 안전한 곳으로 데리고 간다. 살려둔다. 일단 여기에 있어. 허튼 생각은 하지 마. 소설로써가 아닌 실제 인물로서 김중혁을 볼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도서관에 강연을 온다는 것이었다. 갈 수도 있었지만 가지 않는 걸 선택했다. 새로운 곳에서 일한 지 한 달이 되지 않아 연차가 발생하지 않았고 그랬는데 평일에 하루 쉬겠다고 말할 수 있는 뻔뻔함의 기능이 내 몸엔 장착되지 않았다.


주원 씨가 버스에 붙인 글 '나는 곧 죽는다'는 '나 다'로 바뀐다. 죽고 나서야 나다움을 찾는다는 의미일까. 그렇다면 억울하고 기가 차고 슬플 일. 아니 나는 그냥 나라는 뜻일지도 모르겠다. 여러 의미를 붙여 나다움을 만들어 내지 말라는 뜻. 단순하게 생각해 사는 동안 내가 어떤 인간인지만 알면 좋겠다. 문학은 소설은 그걸 가능하게 해준다. 너는 곧 죽을 거고 그전에 네가 어떤 인간인지만 알면 된다.


『스마일』은 소설 속 다양한 인간 군상의 면면을 보여주면서 다른 형태의 삶을 제시한다. 이를테면 「왼」의 마지막 장면은 어떨까. 대안이 될까. 김중혁 소설의 특징은 인간적인 따뜻함을 엉뚱한 곳에서 느낄 수 있다는 데에 있다. 죽음이 두려울수록 삶이 간절한 인물이 내미는 손을 잡는다. 웃으며. 오랫동안 잡은 손을 놓지는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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