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게으른 시인의 이야기
최승자 지음 / 난다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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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승자가.


어느 날 시인 최승자는.


정신분열증을 앓고 있다고 했다. 조선일보 기사에서 그 사실을 알았다. 외삼촌이 보호자로 따라 나온 인터뷰에서 시인은 그 사실을 밝혔다. 오랫동안 시를 썼고 어떤 시는 누구라도 알만한 유명한 시인데도. 시를 써서는 생활이 안 되었다고. 인연이 있는 출판사에서 매달 25만 원씩을 부쳐 주었다. 최승자는 기초생활수급대상자고 기사의 마지막 문장은 그러했다.


『한 게으른 시인의 이야기』는 내가 글을 읽는다기보다 글이 나를 읽어내는 느낌의 책이었다. 문장이 저희들끼리 소곤대면서 현실의 나를 흘깃거렸다. 네가 이걸 읽는단 말이지. 그게 가당키나 할 것 같아 하는 식으로. 시인의 산문은 나를 추궁했다. 1976년과 2021년 사이에 쓰인 글은 시간을 가늠할 수 없었다. 젊었을 때나 나이가 들었을 때나 최승자의 글은 또렷하고 명징했다.


최승자의 시와 시론은 삶이란 무엇인지를 찾으려고 애를 쓰는 글이었다. 결국은 삶이었다. 살아내는 것이었다. 시가 무엇인지 의문하는 일은 삶이란 도대체 어떤 의미를 가져야 하는지 되짚는 일이었다. 독일어를 전공한 최승자는 『양철북』을 끝내 읽어내지 못했다. 간첩 혐의로 감옥에서 수감 중인 그가 책장에 쓴 글 때문이었다. 출근길에 엄마를 보고도 끝내 아는 척을 하지 못했다. 살아 있다는 게 때론 죽어 있는 게 아닐까 헛갈리기도 했다.


산 것도 죽은 것도 아닌 상태에서도 시를 썼다. 문학을 하고 나중에는 신비주의 사상에 젖어 들어갔다. 한때 나는 시를 읽으며 나 자신이 곧 뭐라도 될 것 같은 기분에 취하기도 했다. 시는 읽는 동안은 그랬다. 그럼 시를 쓸 때는 어땠을까. 겉멋과 허세에 찌든 문장을 쓰며 아프지도 않은데 아픈 척을 내내 했던 것 같기도 했다. 오랫동안 시란 무엇인가 고민하는 노력도 하지 않았다. 잠깐 괴롭고 잠깐 우울해했다. 그렇게 시는 떠났고 아직도 세상 바깥에서 헤매고 있다.


2021년에 최승자는 이렇게 쓴다.


오래 묵혀두었던 산문집을 출판하게 되었다.

오랜 세월이 지난 것 같다.

지나간 시간을 생각하자니

웃음이 쿡 난다.

웃을 일인가.

그만 쓰자

끝.


웃음이 난다고 그게 또 웃을 일인가 자조하면서 그만 쓰자고 정확하게 끝을 외치는 최승자. 존멋이다. 웃을 일이 아닌 건 또 뭔가. 되지도 않는 말에는 재치 있는 말을 하지 못하고 웃어버리는데 자꾸 그렇게 하니까 사람들은 또 나를 우습게 여긴다. 대학교 4년 동안 문학을 배웠는데 그런 건 아무것도 아닌 게 되어 버리는 시간을 내내 보내고 있다.


괜찮고 다 괜찮을 것. 좋은 일들이 자꾸 생길 거라는 이야기를 듣는 것으로 시의 시간을 살고 있다. 무엇이 시가 되고 시가 되지 않는지 모르겠다. 이 모르겠음이 답답하지 않은 건 문득 떠오르는 기억들을 쓰기만 해도 시가 될 거라는 예감이 들고 자꾸 벅차오르고. 최승자 시인이 밥 먹는 걸 잊어버리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래야 뭐든 쓸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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