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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 밥맛
서귤 지음 / arte(아르테) / 2020년 4월
평점 :
책을 사고 읽는 기준이 까다롭, 지 않다. 좋아하는 작가의 신간이라서. 무심코 읽었는데 지금의 내 상황과 맞아떨어져서. 표지가 귀여워서. 첫 문장이 웃겨서. 서귤의 『회사 밥맛』은 표지 밑에 쓰인 글이 웃겨서 읽기 시작했다. '이렇게 개처럼 일했는데 아무거나 먹으려고?' 하는 글. 눈이 약간 맛이 간 여자가 오직 살려고 음료를 흡입하고 있는 그림까지. 안 읽을 수가 없는 책이었다.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다 알 테지만 제목은 중의적이다. 회사에서 먹는 밥맛 혹은 회사는 밥맛이라는. 오랜 회사 생활에서도 어떻게 했으면 유머감각을 잃지 않았을까. 서귤이 부럽다. 그에 반해 나의 유머감각은 조금만 방심하고 정신을 놓고 있으면 까딱 잘못하다가는 분위기와 함께 인간관계를 망치는 수준인데. 학교 다닐 때까지는 그럭저럭 통했는데. 조금 이상한 애로 보이는 수준이었는데. 사회에서는 영 글러먹은 유머감각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다.
10년 넘는 시간 동안 점심 대신 저녁을 먹었다. 시간은 30분 정도. 라면도 끓이고 소시지도 굽고. 비빔밥도 하고 몇 번 얻어먹으면 눈치껏 내가 쏘기도 했다. 허겁지겁 먹느라 무슨 맛인지도 모르는 건 아니고 맛있게 많이 먹었다. 계속 그렇게 저녁에 무얼 먹지요? 물어보면서 오늘의 메뉴를 심각하고도 진지하게 고르며 살 줄 알았다. 그리고 8개월의 점심시간. 최악의 시간. 무엇이 최악이었냐고 물어본다면 전부 다였다고 말해야겠다.
정적이 흐르는 걸 참지 못하고 되지도 않는 소리를 하는 시기를 지나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밥만 먹은 시간까지. 그만둬야겠다고 생각이 든 날 처음으로 밖에 나가 혼자 점심을 먹었다. 이렇게 먹을 수도 있었는데. 왜 나는 억지로 싫은 사람과 마주 앉아 밥을 먹었던가. 지나고 나서야 깨닫게 되는 일에 후회는 하지 말자. 『회사 밥맛』을 읽으며 그간의 밥시간을 떠올렸다. 서귤은 국어 교사 임용을 포기하고 회사원이 됐다. 가장 많이 들은 말이 왜 선생이 안 됐냐는 말이었다고.
의대, 법대 정도 빼고는 학과 대로 직업을 가지는 사람이 그렇게 흔한가. 하여튼 회사 인간들은 쓸데없는 말하기 선수들이라니깐. 일 년 만 버티자던 서귤은 존버 정신으로 7년째 회사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이쯤 되면 손뼉을 쳐야 한다. 7년이라니. 글과 만화로 봤을 때 서귤의 회사는 애매하게 이상한 사람들이 많던데 잘도 다니고 있다. 그 힘과 원동력 중에 하나는 아니 전부는 회사에서 먹는 점심과 간식이 아닐까, 『회사 밥맛』은 이야기하고 있다.
각각 '오늘의 메뉴'에 담긴 회사 생활의 이야기는 정식 회사는 다녀본 적은 없고 회사인척하는 곳에서만 일한 나도 무지막지하게 공감이 됐다. 아무거나 먹자고 해서 메뉴를 말해도 전부 거절하고 자기 먹고 싶은 거 고르고 회의하면서 김밥을 먹는다. 짠하다가도 이제는 상사의 농담에도 능글맞게 받아치는 서귤의 모습에 부러움과 탄성을 보낸다. 글도 글이지만 자신의 눈을 퀭하게 그려 놓은 만화도 웃긴다. 회사 생활에 적응을 했냐 안 했냐의 기준이 웃느냐 웃지 않느냐 이다니 와, 천잰데 하는 식이다.
진짜 커피와 가짜 커피의 차이가 뭔지 아시려나. 일할 때 먹는 커피는 가짜 커피. 그 외에 먹는 커피가 진짜 커피. 어떤 알고리즘의 계산법인지는 모르지만 어느 날 유튜브 최상단에 미라클 모닝 영상이 떠 있는 걸 보고 깜짝 놀랐다. 얼결에 보다가 꺼버렸다. 대체 새벽 네 시 반이나 다섯 시에 왜 일어나는 건데. 그렇게 일어나서 운동하고 공부하고 아침까지 챙겨 먹고 다시 자는 게 아니라 일을 하러 나간단 말이야? 세상 말세네. 그려. 아침에 눈 뜨는 거 자체가 나에겐 기적이다.
저와 같은 생각을 가진 이들에게 추천합니다, 이 책, 『회사 밥맛』. 요즘도 그렇고 앞으로도 그럴 테지만 내가 싸가는 도시락의 메뉴는 김치볶음밥이다. 오늘 뭐 먹지의 고민으로부터 해방될 탁월한 선택 아닌가. 금수저 아닌 이상 돈 벌러 계속 눈 뜨고 살려고 입안에 무언갈 넣으며 일할 것 같은데 지치지는 말자. 하다 안 되면 그만두는 것도 종일 한자리에 앉아 드라마를 보는 것도 괜찮다, 다 괜찮다. 큰일 나지 않는다. 나는 나에게 해주고 싶은 말을 이렇듯 길고도 간절하게 쓰는 버릇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