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한 생애 소설Q
조해진 지음 / 창비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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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해진의 소설 『완벽한 생애』의 주인공 윤주는 서울의 방을 여행자에게 빌려주고 제주도로 떠난다. 소설은 윤주가 제주도로 가는 비행기 안의 장면으로 시작한다. 시작하자마자 떠나는 이야기. 대체 어떤 사연이길래 떠나는 걸까. 짐작하기란 어렵지 않을 것 같았다. 현실의 나 역시 쫓기듯 도망치고 있었기 때문이다. 무엇으로부터?


고함과 은근한 협박과 모욕적인 말들로부터.


모욕의 뜻을 찾아보았다. '깔보고 욕되게 함'. 유의어로는 '치욕, 욕, 수모, 부끄러움, 모독, 멸시'가 있다. 가끔 그럴 때가 있다. 일상어로 쓰이는 말인데도 낯설게 느껴져 한참이나 뜻을 생각하게 되는 순간. 그러다 결국 뜻을 찾아보고 상황을 구체화해보는 일. 윤주는 어렵게 대학을 졸업하고도 기회를 갖지 못했다. 남들처럼 스펙을 쌓을 시간이 주어지지 않았다.


피디 시험에 낙방하고 방송사 스크립터에서 작가로 옮기기까지. 윤주의 생애는 거칠고 메말라갔다. 우연히 직장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차라리 듣지 않았던 게 좋았을까. 나는 과거에 집착하고 그때 하지 못했던 말과 행동으로 스스로를 괴롭게 만드는 성향이 있다. 후회를 반복하는 게 일일 정도로. 이제는 그러지 말자는 다짐을 한다. 윤주의 결단은 용기를 준다.


윤주의 재계약을 두고 피디와 아나운서는 이야기를 나눈다. 한 사람의 생계가 걸린 문제를 놓고 그들은 웃음을 터뜨린다. 자를까 말까 정도로 끝났으면 나았을걸. 두 사람의 웃음소리를 듣고 윤주는 그 길로 방송국을 나온다. 한때는 인권법재단에서 간사로 일한 미정은 제주도로 이주해 신공항 건설 반대를 하는 활동가로 있다. 미정은 윤주에게 전화를 건다. 실직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충동적으로 제주도로 오라고 한다.


『완벽한 생애』의 첫 부분에서 윤주가 제주도 비행기 안에 있었던 그간의 사정이다. 타의에 의해 직업을 잃은 윤주. 무엇을 위해 일을 하고 있는지 방향성을 잃은 미정. 이별 후 그 사람의 흔적을 따라 홍콩에서 서울까지 온 시징. 소설은 각기 다른 세 사람의 현재를 보여주면서 삶의 의미를 끊임없이 묻는다. 너는 왜 그 자리에 있니. 정말 슬프지 않은 게 맞니.


소설은 떠나는 이야기에서 다시 돌아오는 이야기로 끝이 난다. 돌아오기 위해 떠나는 걸 확인이라도 시켜주려는 듯 말이다. 불확실한 미래를 상상하느라 현재를 가혹한 상태로 몰아넣는 잘못을 저지르는 우리들의 자화상이 『완벽한 생애』에 있다. 결혼을 해서 가정을 꾸리는 일조차 사치가 되어 버린 현실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방법이라고 알려주는 게 굴복, 순응, 굴종의 언어들. 네가 참으면 된다는 식의 뭣 같은 말들.


윤주, 미정, 시징 그리고 보경 언니까지. 휴대전화 속 저장된 이름으로 살고 있을 것 같은 사람들이다. 이렇게 살고 있다고 했지. 전화를 걸어볼까. 망설이다 결국엔 통화 버튼을 누르지 못해 안타까운 마음만을 주는 사람들. 다만 살아내기를 바라며. 부디 나다움을 지켜가며 외롭지 않기를 바라며. 위로조차 마음으로만 보낸다. 그들이 떠나는 이유란 고작 이런 거다.


내가 잘못 살고 있지 않다는 걸 증명하기 위해서. 내가 한 행동은 최선이었다는 걸 다짐 받기 위해서. 나 스스로부터.


윤주는 자신의 방으로 여행 온 시징에게 편지를 쓴다. 만난 적 없는 낯선 이에게 자신의 과거와 현재를 털어놓는다. 느낄 수 있다. 나의 이야기를 해도 되는 사람인지. 시징은 그런 사람이었다. 어두운 속내를 드러내도 결점으로 삼지 않는 사람. 준비 없이 도망쳐 나왔다고 해도 잘했다고 말해줄 수 있는 사람. 수고했고 잘했어라는 말을 아낌없이 해줄 수 있는 사람.


조해진의 문장이 단순하고 가벼워져서 읽기에 편했다. 『완벽한 생애』를 펼쳐든 순간은 살아내는 일조차 사치라고 느낀 순간이었다. 대체 어쩌자고 생애 앞에 완벽한이라는 수식어를 붙였단 말인가. 의문을 품고서. 읽어갔다. 모욕의 언어를 감내하지 않으려고 애쓰는 사람들. 잘못을 잘못이라고 말하기 위해 힘을 내는 사람들. 타인의 슬픔을 결코 모른척하지 않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이 있어서 생은 완벽해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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