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의 방 사계절 1318 문고 128
최양선 지음 / 사계절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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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양선의 소설집 『달의 방』을 다 읽었고 리뷰를 쓰려고 책 사진을 찍었고 노트북을 켰다. 얼마 전에 새로 산 자이언트 춘식이 소파에 앉았다. 살고 있는 집에서 이사를 가야 하는 두 모녀의 이야기를 다룬 표제작 「달의 방」을 먼저 읽었다. 실린 순서대로 읽지는 않고 후루룩 넘기다가 맘에 드는 문장이 있으면 읽어가기 시작했다. 책을 받아 보면 알겠지만 얇고 가벼워 부담 없이 읽을 수 있다. 다섯 편의 소설이 실렸고 맘만 먹는다면 앉은 혹은 누운 자리에서 금방 한 권을 읽을 수 있으리라.


일주일을 붙잡고 있었고 쓰려고 했다가 책에 대한 이야기는 놔두고 엉뚱하게 신세한탄을 썼다.(신세한탄의 이야기는 조만간 손을 봐서 올릴 예정이다.) 다시 책의 이야기로 간다. 한창 마트에서 일하던 엄마가 저녁에 들어왔다. 집을 보러 가기 위해서였다. 지금이 아니면 시간이 없다고 한다. 전세 기간이 끝나서 빨리 집을 알아봐야 한다는 걸 '나'는 모르고 있었다. 밤에 집을 보러 다닌다. 밤에.


환한 낮에도 보이지 않는 집의 결점은 밤에는 더더욱 드러나지 않는다. 엄마와 내가 집을 보러 가는 그 밤 개기 월식이 일어난다. 달이 보이지 않는 밤에 중개사와 집을 보러 다니지만 마땅한 집을 찾는 건 어렵다. 마지막 집에 도착했을 때 집에 혼자 있는 아이와 만난다. 친구가 없으리라는 서로의 공통점을 발견하고 어른들이 오기를 기다리며 「달의 방」은 끝난다.


정말 다행히도 더 이상 이사를 다니지 않아도 된다. 아주 잠깐 놀러 온 지구별에서 다른 행성으로 이주하지 않아도 된다니. 그간의 힘듦은 잊어버려도 되겠다, 달랜다. 청소 노동자 할머니와 살고 있는 '나'의 일상을 담은 「붉은 조끼」에서 투쟁이란 살아가는 것이라고 배운다. 제도와 법을 바꾸려고 싸우는 게 아닌 나를 지키기 위해서 살아가고 살아남는 일이 위대한 투쟁이라는걸. 최양선의 소설이 좋은 이유는 가깝지도 멀지도 않은 거리를 지키며 이야기를 만들어 낸다는 것이다.


과장하지도 축소하지도 않는 나와 내 주변의 이야기. 아이들의 이야기. 나는 아주 오랫동안 웃기고 이상한 아이들과 함께 할 줄 알았다. 힘든 시험 기간이지만 웃으면서 공부를 하러 오고 시험 기간인데도 시내에 놀러 다니는. 학원에 왜 안 왔냐고 전화를 걸면 분명 놀고 있음에도 지금 가고 있다고 뻥을 치는. 말도 안 되는 오답을 써 놓고도 그게 왜 오답인지 어리둥절해하는. 그런 아이들과 함께.


『달의 방』에 등장하는 아이들을 실제로 만난다면 함께 떡볶이와 순대를 먹고 싶다. 문구점에 가서 학용품을 선물해 주고 힘이 들면 연락하라고 주저 없이 전화번호를 건네주고 싶다. 착하고 착해서 남에게 받은 상처마저도 자기 책임으로 돌려버리는 아이들. 소리 내어 마음껏 울지도 못하면서 누군가 울고 있으면 울음의 이유를 알아내어 해결해 주려고 하는 아이들이 『달의 방』에는 있다.


어떤 일이 생기든 너의 잘못이 아니다.


『달의 방』은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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