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을 건너는 소년 사계절 1318 문고 108
최양선 지음 / 사계절 /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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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


너희들을 잊지 못하겠다. 얼마 전 새로 산 경추 베개는 만족스러워. 머리를 대면 바로 잠이 들어. 잠이 들고부터가 문제야. 꿈이라기엔 너무도 생생한 현실의 일이 잠 속으로 달려 들어와. 잠깐씩 깨곤 해. 여기가 어디일까. 몇 시쯤 됐을까. 나는 일어나야 할까. 땀은 왜 이렇게 많이 나지. 이불 속이 따뜻해서라고 농담해도 할 말이 없네. 겨우내 자면서 식은땀을 흘려. 예전에는 이렇지 않았는데 말이야.


철진, 재민, 박쥐, 시온. 너희들을 만나는 시간에는 어땠을까. 『밤을 건너는 소년』 속 너희들이 꾸는 꿈을 알고 싶어. 소설이 끝나면 나는 책을 덮고 일상으로 돌아오지만 소년, 너희들은 어쩐지 계속 그 골목에 서성이고 있을 것 같아. 춥고 냄새나는 골목에서 사나운 마음이 되어 있을 것 같아. 나는 어른이 되었다고 해. 어른이 되어서 일도 하고 은행 업무도 보고 세금도 꼬박꼬박 내지. 나의 처지를 비하하려는 의도가 없다고 하면서 건네는 농담에 반응을 보이지 않는.


밤이야.


아까 하던 얘기마저 할게. 자기 전 책을 읽으려고 노력해. 단어와 문장이 춤을 출 때까지 읽어. 잠이 가득 몰려오기 전에 보이는 증세. 마술사 부자가 파라다이스 클럽에서 일을 하는 장면을 읽다가 잠이 들었지. 무언가에 쫓기는 꿈을 꾸고 일어나 맞은 아침. 그래 맞아. 아침이야. 커튼 사이로 얇게 비치는 햇살에 아침이라는 걸 깨닫고는 안도했을까 아니면 한숨을 쉬었을까.


파라다이스 클럽에서 일하는 박쥐는 아버지가 늘 마지막이라고 하면서 돈을 가져가. 고시원에 숨겨둔 돈을 가져가고 미성년자를 일하게 했다며 사장을 협박해 석 달 치 월급도 가져가버려. 박쥐는 절망해. 철진이는 재민이에게 이상한 쇼를 보여주면서 돈을 얻어내지. 공부 스트레스로 힘든 재민이는 철진이의 쇼를 보면서 어두운 마음을 털어내려고 해.


너희들 앞에 마술을 하는 시온이가 나타나면서 일은 흘러가. 생기는 게 아니라 흘러가지. 『밤을 건너는 소년』을 다 읽었을 때 반전이 있어 놀랐어. 너희들은 어려움을 겪었지만 이겨내고 희망을 가지며 끝을 맺겠구나 하는 기대가 어긋나버리지. 알고 있어. 희망과 같은 단어는 너희들의 세계에서는 사멸된 언어라는 거. 희망 아닌 것들에 너희들의 세계가 물들어 있다는 것도. 어른이 되면 괜찮아질 거라는 기대는 있는지.


슬프니.


철진이가 박쥐에게 이상한 배신을 때리고. 박쥐는 저항 없이 순응하고. 삶은 자주 너희들의 기대와 희망을 배신할 거야. 야속하게 들리겠지만. 그렇더라고. 원하는 건 이루어지지 않고 뜻하지 않은 일이 생기면서 너희들의 시간을 끌고 갈 거야. 끌려간다는 게 맞을 거야. 너무 애쓰지 마. 절망도 힘이 된다는 걸 알기 되기까지 살아 있었으면 좋겠어.


밤을 건너 아침이 되면 식은땀을 흘리고서도 살아 있으매 안도하는 어른의 시간. 절망을 절망으로 놔두지 않고 너희들은 걸어가야 해. 따뜻한 물을 끓여서 청귤 차를 타 마시고 시간 날 때마다 인터넷 서점 사이트에 들어가 봐. 아무 책이나 읽어봐. 제목이 끌리는 책. 연예인이 읽고 있는 책. 자격증을 따기 위한 수험서도 좋지. 부드럽게 써지는 볼펜을 사서 책에 밑줄을 치면서 읽었으면 해. 소년들. 야망보다는 책을 가졌으면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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