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 허락된 미래 마음산책 짧은 소설
조해진 지음, 곽지선 그림 / 마음산책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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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10년 단위로 바뀌는 걸까. 음악을 들으려고 스포티파이 앱을 열었을 때 놀랐다. 홈 화면에 추천 음악으로 90년대 베스트가 떡 하니 올라와 있었다. 가입할 때 생년월일을 적으니까 나이대를 아는 건 당연한데. 그래도 어떻게 내가 90년대에 테이프와 시디를 사서 열렬히 음악 들은 걸 알고 추천을 해준다는 건지. 유튜브 알고리즘 신기한 것도 알지만. 새삼 자주 놀랍다. 스포티파이 검색했는데 얘네들 카피가 '나보다 나를 더 잘 아는' 이네.


90년대 베스트를 듣는 지금은 2020년대. 가사 없이도 노래를 따라 부를 수 있다니. 대체 얼마나 음악을 들었던 건지. 네이버 블로그 기능 중에 하나가 몇 년 전 오늘 내가 작성한 글을 보여주는 게 있다. 무의식적으로 생각한다. 코로나 시대 전에 쓴 글이네. 그때나 지금이나 달라진 건 없지만 마스크를 쓰지 않고도 돌아다닌 그때가 까마득하다. 전염병의 시대에 살고 있다.


《지금 우리 학교는》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좀비물을 좋아하기도 하고 재난에 닥쳤을 때 어떤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하는지 보면 나의 어려움을 대수롭지 않게 여길 수 있어 보지 않을 수 없었다. 아들이 용감해지기를 바라며 과학 선생이 만든 바이러스가 학교 내에 퍼진다. 한 번 물리면 좀비로 변해 사람을 공격한다. 감염 속도가 빨라 대처할 수 없다. 아이들은 살기 위해 뭉치고 옥상으로 올라가 구조 헬기를 기다린다.


창문 너머로 보이는 헬기. 프로펠러 소리. 아이들은 곧 어른들이 자신을 구하러 올 거라 믿는다. 그 믿음은 보기 좋게 깨지고 무증상 감염자일지도 모른다는 판단하에 아이들은 헬기에 타지 못한다. 주인공 온조는 말한다. 어른들에게 협조 따위는 하지 않을 거라고. 배에 탄 아이들 역시 하늘을 날고 있는 헬기를 보고 프로펠러 소리를 들으며 희망을 가졌을 것이다. 곧 우리 나간다. 엄마 아빠가 기다리는 집으로 갈 수 있다. 부드러운 이불을 덮고 잠을 잘 것이다 하는.


조해진의 소설집 『우리에게 허락된 미래』는 2020년 이후를 다룬다. 근미래. 아직 오지 않았지만 올 것이라 믿는 미래. 어느 날 관측된 소행성은 지구와 가까워지며 충돌한단다. 지구는 사라지고 한마디로 멸망, 끝. 디데이를 설정해놓는다. 그럼에도 출근을 하고 보고서를 쓰고 새로 개업한 식당에서 점심을 먹는다. 곧 망한다는데 가게를 여는 건 어떤 기분인지 궁금한 채.


좀비 바이러스가 퍼져 서로를 물어뜯는 건 드라마와 영화로 학습해서 현실에서 그런다 해도 잘 피해 다닐 수 있을 것 같다. 운전면허가 없어 버려진 차를 타고 도망가는 건 못 하고 버스정류장에 서 있으면 직업 정신이 투철한 버스 기사님의 버스를 탈 수는 있을 것 같다. 코로나 바이러스도 처음에는 뭔지 몰라 두려웠다. 지금도 그렇긴 하지만. 익숙해졌다고 할까.


불편하지만 마스크를 챙기고 마스크에 끼울 줄을 색깔별로 사는 걸로 코로나 시대는 일상화되었다. 받아들이며 살아가는 것. 인류가 갖은 고초에도 망하지 않고 버티며 살 수 있었던 비결이 아닐까. 처음에는 이게 뭐지, 확진자와 동선이 겹쳐 놀라면서도 검사받으러 가고 요일별로 마스크를 사라고 하니까 줄을 서서 산다. 『우리에게 허락된 미래』는 망해가거나 망한 지구의 시간을 그린다.


지구가 끝장날 거라는 뉴스에도 출근을 하고 바이러스가 퍼져도 상사의 지시에 상자를 배달하러 길을 떠난다. 문명이 발달된 어느 미래에서는 사고로 뇌를 다쳐도 칩을 이식해 살아갈 수 있다. 단 한 명의 인간이 지구에 남아 있어도 미리 세팅해 놓은 프로그래밍으로 죽지 않고 살 수 있다. 상상력으로 쓴 미래의 지구는 설마 그러기야 하겠어가 아닌 정말로 일어날 수 있어서 진짜 일어나고 있어서 소름이 돋는다. 좀비가 돌아다녀도 소행성이 충돌한다고 해도 방사능이 유출되었어도 수능을 걱정하고 출근 알람을 맞춰두는 일.


『우리에게 허락된 미래』에 실린 소설은 묻는다. 오늘 당신은 행복할 수 있는가. 무엇으로 행복할 수 있는가. 세상이 망하기 한 시간 전 소설 속 인물은 냉장고를 열어 식재료를 확인하며 기분 좋음을 느낀다. 현재가 있으면 좋고 미래는 알 수 없는 거고 확실한 건 우리의 과거뿐인 현실에서 우리는 행복해야 한다. 오늘 말이다. 세상은 망한다. 속도의 문제일 뿐이다. 미래가 허락되든 말든 상관할 바 아니다. 누가 허락을 해서 살고 있는 게 아니다. 나만은 죽지 않을 것처럼 구는 인간들이 문제다. 우리에게 허락된 건 죽음이고 그걸 잊지 않는다면 평화롭게 오늘만을 살아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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