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활발발 - 담대하고 총명한 여자들이 협동과 경쟁과 연대의 시간을 쌓는 곳, 어딘글방
어딘(김현아) 지음 / 위고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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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아의 글을 읽다가 어딘을 알게 됐다. 어딘 글방에서 글을 쓰며 수련을 했다는 이슬아. 매일 한 편의 글을 쓰는 부지런함이 그를 작가로 만들었다. 글을 써본 자는 안다. 첫 문장을 쓰기까지의 숱한 망설임. 쓰면서도 이게 글이 될까 나까지도 의심하게 되는 나날들. 기껏 써 놓고도 부끄러워서 누구에게도 보여주지 못하고 내 문서 폴더 안에 잠자고 있는 글, 글들. 작가가 될 거예요 선언조차 힘이 들어 마음속으로만 간절히 작가의 꿈을 키우고 있는 문청의 옆모습.


김현아가 이끄는 어딘 글방에서는 서로를 닉네임으로 부르는가 보다. 현실의 이름이 아닌 자신이 선택한 이름으로 서로를 부르며 매주 한 편의 글을 써서 다정한 혹은 혹독한 이야기를 나누는 어딘 글방. 그곳에서 일어난 이야기를 다룬 『활활발발』은 90년 대생들의 글쓰기 스승이 쓴 글답게 쉽고 아름다웠다. 왜 글을 쓰는가. 묻는다면 명확하고 확실한 답을 할 수 있을까. 글쎄요. 어쩌다 그렇게 됐네요 식의 하나 마나 한 대답을 하다가 다음 주제로 넘어간다.


어딘 글방에 찾아와 글을 쓰고 함께 어울려 밥을 먹는 그들은 글을 쓰게 된 이유를 글을 쓰면서 설명한다. 외국 학교를 다니면서 받은 차별, 가난했던 어린 시절, 학교에서 당한 왕따, 성소수자로서의 시간, 우울증에 빠져 지낸 나날. 처음에는 자신을 드러내는 것조차 어려워하던 글방의 친구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무람없이 자신의 어려움, 고통, 가난, 두려움을 쓴다. 글쓰기의 이론은 모르겠고 좋은 글의 기준을 한 가지만 꼽으라면 솔직함이라고 생각한다.


솔직함은 양날의 검이다. 솔직해서 좋고 싫다. 이 글은 솔직하다고 평가할 때 과연 그 글은 솔직한 걸까. 어디까지 드러내고 감춰야 할까. 매번 실패한 글쓰기를 하는 이유다. 작정하고 솔직하게 쓴다고 할 때 검열관은 나 자신이다. 『활활발발』 안에서 펼쳐지는 글쓰기는 솔직함의 끝판왕이다. 어딘 글방에 모인 그들은 솔직해지기 위한 사명감으로 찾아온 이들 같다. 말로는 할 수 없는 개인사를 고르고 고른 단어와 문장으로 풀어낸다. 어딘은 그들이 써온 글을 읽고 중요한 말을 해준다. 앞으로 글을 계속 쓸 수 있도록 위한.


『활활발발』을 읽는 동안 마음이 뜨거워져 혼났다. 누군가 알아주기는커녕 나조차도 미심쩍어서 그만 둘까 생각하는 글쓰기를 누군가는 이토록 열렬하게 계속하는 모습들 때문에. 의심하며 쓰는 글은 자신을 위로하고 버틸 수 있게 해주었다. 존버는 승리한다를 어딘 글방에서는 몸소 보여준다. 쭈뼛쭈뼛 쓴 글은 혹평과 응원이 모여 책이 되었다. 작가 지망생은 작가가 된다. 어딘 글방에서 글을 쓰던 이들은 자신이 주체가 되어 새로운 글방을 연다. 어딘 글방에서 받았던 위로를 나눠주는 일을 한다.


책 뒤편에는 어딘 글방의 글방러들의 글이 실려 있다. 모든 글이 좋았지만 유독 조개의 글 때문에 심장이 다시 뜨거워졌다. 글을 쓰고자 하는 열망, 주수원 정신과에서 나눈 이야기, 작가가 될 수 있을지 없을지의 혼란, 그러거나 말거나 최선을 다해 오늘을 사는 것의 기쁨. 금요일 저녁, 괜찮아졌던 마음은 불시에 어두워졌다. 원하지 않았는데도 오늘 일어난 일을 복기하면 나 자신을 훼손하고 있었다. 월요일 아침에 밀려오는 열패감을 미리 떠올리기도 하면서.


잡일을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해야 한다는 주수원 샘의 말을 기억해야겠다. 영어로 잡은 직업이니까. 잡일을 직업의 일로 바꿔 생각하면서 그 일을 하는 나는 직업인이다 의식해야지. 나이 많고 경력 없는데 같이 일해보지 않겠냐고 간혹 연락이 왔던 건 A4 종이 한 장을 가득 채운 자기소개서 덕분이었다. 어떤 상황에서든 글을 쓸 수 있도록 그냥 쓴다. 쓸 수 있는 상황이 오면 쓰기 위하여. 어딘 글방이 지척에서 열린다고 해도 나는 가지 않겠지. 대신 그곳에서 연마하며 쓴 글이 책으로 나오면 읽는 사람은 되겠지.


작가가 되겠다 하던 마음은 엷어지고 단단한 사람이 되고 싶다는 마음이 남아 글을 읽고 그 글에 대하여 쓴다. 좋았어. 그거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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