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해가 없는 완벽한 세상 마음산책 짧은 소설
최정화 지음, 최환욱 그림 / 마음산책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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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을 하는 것보다 말을 하지 않는 게 최선이라는 걸 알아가고 있다. 말을 하면 할수록 목소리는 높아지고 감정은 쉽게 상했다. 여름 오후에 놔둔 떡처럼. 지금은 배가 부르니까 좀 있다 먹어야지 해놓고 잊어버린 떡. 결국엔 먹지 못하고 버렸다. 어떤 마음인지는 모르겠지만 함부로 내뱉는 말 때문에 마음이 자주 내려앉았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화장실에 가서 앉아 있곤 했다.


변명 대신 사과의 말을 듣고 싶었다. 자신을 이해 달라는 듯 쏟아 놓는 말 앞에서 할 말을 하지 못했다. 집에 와서 등신 같다고 되뇔 뿐이었다. 오해가 있었다면 풀어야 하는데 그냥 이제는 되도록이면 말을 하지 않는 것으로 선을 그었다. 일정 거리가 필요해. 거리 두기를 지키자. 최정화의 짧은 소설을 모은 『오해가 없는 완벽한 세상』을 읽으며 그간의 상황에 대해 크게 억울해 할 것도 없다 싶었다.


상대 역시 나의 어떤 모습에 답답해하고 싫었던 순간이 있었다는 걸 깨달은 것이다. 대체로 나는 억울하고 피해를 받았다는 생각에 사로잡혔다. 영화에서처럼 슝 날아가 그 상황을 멀리 떨어져 지켜봐보자. 두 사람이 있고 대화를 해도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한쪽은 일방적으로 이야기를 하고 다른 한 쪽은 듣고 있다. 듣고만 있던 이가 결국 목소리를 높인다. 지금까지 참아왔던 감정을 토로한다. 그러고? 달라진 건 없다.


나는 임우현에게 말한다. "우린 정말 다른데도 정말 잘 맞는 것 같아요!" 임우현이 대답한다. "그렇다면 그건 우리 둘 중 누구 한 사람의 희생이었을 겁니다." 지면이 한정되어 있어서 그의 배려와 희생에 대해서 일일이 열거하는 것이 낭비라고 느껴진다. 음, 그러니까 누군가 닭을 싫어하면서도 자기가 싫어하는 '닭곰탕'을 꾸역꾸역 먹고 있는 것을 보았다면, 그 사람이 바로 임우현인 것이다. 맞은편에 앉아 있는 이는 그 사실을 모른 채 닭곰탕은 역시 맛있어, 이걸 싫어하는 사람이 있을까,라고 생각하면서 부지런히 수저를 놀리고.

(최정화, 『오해가 없는 완벽한 세상』, 「세 번의 겨울」中에서)


『오해가 없는 완벽한 세상』 속 소설들은 사람과 사람 사이에 생길 수 있는 오해의 서사를 다룬다. 오랫동안 알아왔던 남편의 다른 모습을 보고 재혼한 아내의 성격이 일순간 기묘해 보인다. 늘 예의 바른 사람이라 여겨왔던 이가 감내했을 슬픔을 마주한다. 우연히 만난 지인이 자신을 보고 도망가는 것을 보고 깨닫는다. 나, 저 사람에게 이상한 짓을 했을지도 몰라. 잠든 아내에게서 기분 나쁜 냄새가 나는 것 같기도 하고. 낯선 이웃이 내 집에 들어와 있는 걸 본다.


죽음 보다 삶에 대해 자주 생각하는 건 건강한 일일까. 살아가는 건 지치고 막막한 일이 되니까 오히려 죽음을 염두에 두는 게 정신 건강에 좋은 게 아닐까, 그런 의문들을 가지고 살아간다. 『오해가 없는 완벽한 세상』은 삶이라는 건 피곤하고 역겨운 일이 아닐까 하는 마음을 소설 곳곳에 숨겨 놓았다. 행복하고 즐거워 죽겠다는 이야기는 읽기가 힘들다. 대신 텔레비전을 틀어 놓는다. 그곳에는 먹고 마시고 사랑하고 누군가를 만나고 게임하는 즐거움이 가득하다.


오해가 있으면 풀어야지. 대화를 하고 해결 방안을 찾아가야지. 서로를 이해하고 맞춰 가야지. 뭣 같은 소리. 내 마음이 꼬인 탓일 수도 있지만 현실에서 그런 변명을 듣고 있을 때 의자를 던지고 싶은 충동이 든다. 최정화는 현실에서 지겹도록 경험해 봤을 오해로 빚어진 난감한 상황을 사실적으로 표현한다. 현실에서는 그러겠지. 오해를 하고 있는 네가 잘못이라고. 『오해가 없는 완벽한 세상』에서는 아니라고 말한다. 그럴 수 있다. 너의 분노는 충분히 납득될 수 있다고 박력있게 말해준다.


「K씨가 도망간다」를 읽고 무릎을 쳤다. 나의 화남 뒤에 너의 화남도 있다. 우리는 서로 잘못하며 살아가고 있다. 너무 억울해할 것 없다. 두 사람이 있다. 관계가 원만하다고 해보자. 가짜다. 소설 속 문장처럼 한 사람의 희생으로서 이루어지는 거다. 원만한 관계란 그렇게 믿고 싶은 환상이다. 타인끼리는 오해가 정상이고 이해는 희생의 결과이다. 이해하기 싫어서 오해하는 세상. 이해보다는 오해가 나를 덜 힘들게 하니까 그러고 살고 있는 세상. 지치는 것도 지친다. 『오해가 없는 완벽한 세상』은 이상한 즐거움을 느낄 수 있다. 뒤통수를 때리고 싶은 충동을 느끼는 거, 너도 똑같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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