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대주 오영선
최양선 지음 / 사계절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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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세대주 오영선』을 읽고 리뷰를 쓰기 위해 책의 제목과 작가 이름을 적다가 깨달았다. 주인공 영선의 중간 이름의 모음을 옆으로 돌리면 양선이 된다는 것을. 소설 속 영선과 현실의 양선은 문예 창작을 전공했다. 집을 구하기 위해 고군분투한 시간이 있었고 어찌어찌 집을 구했지만 그닥 내일이 희망적이지는 않다. 최양선은 오영선을 통해 꼭 간절하게 하고 싶은 말이 있었기에 자신과 비슷한 이름을 부여하고 세상에 내보냈다. 가라, 영선!


이 미친 부동산 열풍. 자고 나면 수천씩 올라가는 집값. 숨 쉬는 비용 빼고 모은 돈 1억이 우스워지는 세상. 집이 있는데도 집을 얻기 위해 아파트 모델하우스에 몰려드는 사람들의 얼굴. 술 대신 대출을 권하는 사회. 주로 아이들의 이야기를 썼던 소설가는 집을 구하다 지친 고단한 현실을 사는 어른들을 만난다. 『세대주 오영선』은 오늘을 사는 이라면 꼭 읽어야할 우리 시대의 필독서가 되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만큼 현실에 뿌리를 둔 소설이다. 내가 난감해 하는 장르가 있다면 SF인데 어쩐지 나는 환상과 우주와 몇 백 년 후의 미래 사회에 감정 이입이 되지 않는다. 지금 힘들어도 버티면 밝은 미래가 있을 거야 어쩌고 하는 개소리로 나를 달래는데 당장 1분 후도 장담하지 못하면서 자신 있게 말하는 그 입을 한 대 치고 싶다. 우선 지금, 당장, 오늘이다. 『세대주 오영선』은 지금과 당장과 오늘을 그린다.


89년생. 수도권의 사년제 문예 창작학과 졸업. 한 달에 150만 원 받는 사무직 아르바이트생. 부모님은 돌아가셨고 여동생 한 명과 전세 1억 2천만 원 집에 거주. 그마저도 곧 있으면 나와야 하는. 오영선의 간단 이력이다. 감히 연민을 느끼지 말라. 금수저들 빼면 우리 사는 모습 이렇지 않을까. 술자리에서 흔히 하는 고생 배틀에 참여 할까 말까 할 프로필 정도이다.


그저 열심히 살려고 애쓰면서 꿈을 놓지 않으려는 평범한 내 주변의 친구. 오영선. 엄마가 돌아가시고 짐을 정리하다 발견한 청약통장 하나로 영선의 심심한 하루가 스펙터클하게 바뀐다. 청약통장의 의미가 뭔지도 모르는 어른이, 있겠지, 있어, 토론에 나와서 무식함을 드러내는, 어른. 영선도 그중에 한 명이었다. 은행에 가서야 알게 된다. 엄마가 아빠 빚을 갚으면서도 깨지 않고 남겨둔 청약 통장이 얼마나 귀하고 소중한 것인지를.


읽기 시작하면 중간에 멈출 수 없다. 『세대주 오영선』은 누구라도 몰입의 즐거움을 느낄 수 있게 해준다. 나 지금 독서하고 있다아, 하는. 그니까 건들지 마. 집 위에 동그라미, 그 안에 쓰인 숫자가 우리 삶을 어떻게 쥐고 흔드는지 탄식하면서. 한숨은 기본. 소설의 후반부로 갈수록 긴장감도 느낄 수 있다. 우리의 영선이 어떤 선택을 할까.


청소년 소설을 쓰는 작가답게 문장은 간결하고 이해하기 쉬운 언어로 소설을 끌고 나간다. 잠시도 딴생각 할 틈을 주지 않는다. 어제의 피로와 내일의 걱정을 잊게 만든다. 영선, 경민, 휴. 나이대가 다른 세 여성이 집 때문에 겪는 상황이 기막히고 서글프다. 나의 단점 중에 하나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중에 가장 큰 건 끊임없이 남과 비교하고 남을 부러워하면서 나의 자존감을 떨어뜨린다는 것이다. 『세대주 오영선』은 그럴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


저 유명한,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 가까이 보면 비극이라는 찰리 채플린의 말이 있지 않느냐고 알려준다. 내가 좀 유명한 사람이면 최양선의 『세대주 오영선』을 읽으라고 하고 그러면 갑자기 판매량이 늘고 베스트셀러가 되어 우리 영선이가 알려지고 따라서 양선도. 한숨. 영향력이 없는 사람이라 죄송. 『세대주 오영선』을 알게 되어 감사한 마음에 작가의 다른 책을 사서 읽으며 다음 작품에 힘이 되는 것으로 경의를 표한다.


그리고 나와 당신의 옆을 걷고 있는 영선에게 바닐라 라테 한 잔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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