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의 시대 - 일, 사람, 언어의 기록
김민섭 지음 / 와이즈베리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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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일어난 일부터 이야기해야 할 것 같다. 새로운 일을 시작한 지 6개월이 되어간다. 나에게 일을 알려주고 떠난 전임자는 전화에 대고 일단 6개월을 버티라고 했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그 말은 내가 아닌 자신에게 해주는 말 같았다. 전임자도 새로운 직장에 가지 얼마 안됐다. 힘들고 어려운 게 무엇인지 자세히 말하는 대신 나에게 해주는 말로 가장해서 스스로에게 위로를 주고 있었다.


왜 6개월일까. 1년도 있고 2년도 있는데. 6개월은 일을 시작하고 본인이 버틸 수 있는 최소한의 시간적 주기가 아니었을까. 그렇다면 맞다. 6개월 차인 나는 문을 닫고 나와 이제 그만할래, 지지를 선언했다, 울면서. 아직도 나는 일이 힘들거나 내 뜻대로 되지 않으면 우는 버릇을 못 고치고 있다. 다행히도 당사자 앞에서는 울지 않았다.


그동안 나에게 했던 행동과 말이 심했다고 알려주었다. 나에게도 인격이라는 게 있노라고. 이런 대접을 받을만한 사람이 아니라고도. 힘든 게 있냐고 물었을 때 솔직히 당신 때문에 힘들었는데 말하지 않은 것뿐이라고. 그 정도의 말을 하는데도 숨이 차고 지쳐버렸다. 한 젊은 공무원이 업무 부담과 스트레스를 이기지 못하고 자살했다는 기사를 봤다.


그러면 안 되지라는 것보다 그럴 수도 있지라는 생각을 하는 나 자신이 두려워졌다. 멈춰야 한다. 나를 없애면서까지 나를 혐오하면서까지 할만한 일인가 곱씹게 되었다. 그만하겠다고 말했다. 나의 말을 들은 친구는 피해를 당한 건 너인데 왜 네가 그만두어야 하냐고 했다. 용기를 내라고 했다. 배울 만큼 배우고 책을 읽고 글을 쓸 수 있는 나라는 걸 깨닫게 해줬다.


이 자리가 더러우면 침을 뱉고 나오면서 더 더럽게 만드는 사람이 있다면 너는 그래서는 안된다고. 나오더라도 다음 사람을 위해 깨끗하게 만들어 놓고 나와야 한다고. 주소록을 열고 버튼을 눌러 그간의 상황과 마음을 전달했다. 내 전화를 받은 이는 자신도 내 상황을 짐작하고 있다고 했다. 어떤 상황에서 당신 자신도 불편한 마음을 느꼈고 그걸 내내 겪었을 내가 마음이 쓰였다고.


김민섭의 『훈의 시대』에는 이런 문장이 나온다. '휴가 가거나 퇴근 시 눈치 주는 농담을 하지 않는다. 휴가에는 사유가 없다.' 많은 말들이 쓰였는데 유독 휴가에 관한 부분에 마음이 갔다. 한 사람은 연차를 쓰라고 하고 한 사람은 연차를 쓰면 일이 힘들어지는 게 아니냐는 애매한 말을 하는 상황에서 나는 어떻게 해야 하나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며 고민하고 있을 때 '휴가에는 사유가 없다'라는 문장은 어둠 속 한 줄기 빛을 발견한 듯한 느낌을 주었다. 『훈의 시대』는 우리 사회에서 볼 수 있는 다양한 훈을 찾아본다.


가르치다의 중심 의미를 가진 훈은 놀랍게도 일상의 가까운 곳에서 쓰이고 있었다. 집에서는 가훈으로 학교에서는 급훈과 교훈, 회사에서는 사훈으로 일상을 지배하고 있다. 숙제로 가훈을 써오라고 한 적이 있었다. 처음으로 훈의 언어를 인지한 때였다, 그때가. 우리 집에도 그런 게 있었나. 숙제니까. 공부는 못 하지만 말 잘 듣고 인사 잘하고 숙제 잘하는 것으로 나를 꾸미던 시절이니까 가훈을 물었다. 신언서판. 네 글자를 공책에 적어 학교에 갔다.


학교에서는 어땠나. 기억이 나지 않는다. 분명 칠판 위의 액자에 뭐라고 쓰여 있었던 것 같았는데 기억이 나지 않는다. 대신 인터넷에서 돌아다니는 웃긴 급훈만이 떠오른다. '엄마가 보고 있다.' 같은. 전임자는 말했다. 자신은 직장을 옮기면 먼저 하는 일이 취업 규칙을 읽는 일이라고. 나는. 나는. 취업 규칙을 읽을 새도 없이 일을 해야 했다. 하루에 가장 많이 한 말이 죄송해요, 제가 처음이라서요, 온 지 얼마 안돼서요 상대가 들으면 화나는 말이었다.


죄송하고 처음이고 온 지 얼만 안되면 더 잘해야 하지 않나요라는 말을 들어도 할 말이 없던 시간이었다. 지금도 바뀐 건 없다. 일을 하다 보면 능숙해지는 게 아니라 몰랐던 게 자꾸 튀어나오고 그걸 물으면 오히려 나에게 화를 내고 짜증 난다는 식으로 대꾸를 해서 주눅이 들었다. 주눅 든 나 자신을 누군가는 봤다. 사람은 고쳐 쓰지 못한다. 나 역시도 쉽게 바뀔 수 없다. 그럼에도. 타인에게는 함부로 대해서는 안된다.


『훈의 시대』는 학교, 직장, 아파트, 개인의 책꽂이에 쓰이는 훈의 언어를 조명한다. 남학교는 없는데 여학교는 있다. 여중과 여고를 다닌 나로서는 이게 차별의 언어라는 것도 모르고 살았다. 순결 캔디를 줘서 먹긴 먹었는데 정확한 의미도 모르고 먹을 걸 주니까 신나게 맛있게 먹었던 기억이 있다. 따라 부르라니까 교가를 부르고 5인 미만의 사업장이이서 근로기준법 적용이 안된다니까 그러려니 했다. 아파트 이름에 대해서는 아파트에 산 역사가 짧아서 신경을 쓰지 않았다.


무심함과 무지함으로 살았다. 단어 하나로써 나약한 상대를 힘들게 할 수 있다는 걸 인지하지 못했다. 내가 겪어보니까 알겠더라는 안일함으로 살아갔다. 『훈의 시대』의 마지막 부분에서는 15,000원으로 살 수 있는 훈의 언어의 예시를 보여준다. 누군가의 책꽂이를 유심히 보다 보면 알 수 있다는 거다. 그가 추구하는 그가 외치고 싶은 훈의 언어가 무엇인지. 화내지 않고 말할 수 없을까. 무례함에 웃으면서 받아칠 수 있을까. 되지도 않는 말에는 어떤 식으로 응수할까.


요즘의 내 화두다.


몰랐는데 『훈의 시대』를 읽으며 알았다. 배달의민족 사훈을. 웃기면서 서글픈 사훈. 5인 이상 사업장에서 일하면 뭐 하냐. 눈치 보지 않고 연차를 쓸 수도 없는데. 나는 내가 단단하고 용기 있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러기 위해서 책을 읽는데 아무래도 안 되겠다. 다시 태어나는 수밖에. 책의 마지막 문장은 '당신이 잘되면 좋겠습니다.'였다. 나쁘고 이상한 훈을 바꾸려는 노력은 나와 당신이 잘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다. 『훈의 시대』는 그런 마음이 담긴 책이다.


괴상한 훈을 찾아내어 알려주는 노력. 무사안일하게 살다가 내게 닥치는 불합리함 앞에 도망치기에 바빴던 나는 잘못은 잘못이라고 알려주는 일의 사명을 『훈의 시대』를 통해 깨닫게 된다. 내가 이 말을 하면 상대가 상처받지 않을까. 내가 이 글을 쓰면 누군가는 슬퍼하지 않을까. 고민해야 한다. 『훈의 시대』는 외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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