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리사회 - 타인의 공간에서 통제되는 행동과 언어들
김민섭 지음 / 와이즈베리 / 2016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지금까지 살면서 한 번도 해본 일이 없는 것 중에 하나가 대리 기사를 부르는 일이다. 그도 그럴 것이 운전면허가 없다. 운전을 배우지 않았기에 운전면허가 없고 그리하여 차가 없다는 도시 괴담 같은 이야기. 차가 없어요 하면 그럴 수 있지 고개를 끄덕이다가도 운전면허가 없어요 하면 놀란다. 심지어 자전거도 못 탄다는 말에는 경악을 한다. 대체 어떻게 살아온 거지하는 눈빛.


대중교통을 이용하고 가까운 곳은 걸어 다닌다. 운전을 하고 차를 사면 생활권이 넓어진다는 말을 자주 들었다. 시야가 달라질 거야. 달라지겠지. 보이지 않던 세상이 보이겠지. 여기보다 거기, 그곳을 알면서 더 넓은 세상을 꿈꾸겠지. 거기까지. 내게는 거기와 그곳을 동경할 체력이 없다. 주말이 왜 이틀뿐일까. 심각한 고민에 빠지다 못해 우울해지기까지 하다.


김민섭의 『대리사회』는 대학을 벗어나 새로운 세계에 진입하여 고군분투하는 이야기가 펼쳐진다. 박사 학위를 마치고 시간 강사를 하던 김민섭은 학교를 그만둔다. 학교에서 근무하지만 노동자로 인정받지 못했다. 4대 보험에 가입하지 못해 의료보험비를 걱정했다. 맥도날드에 근무하면서 가족의 의료보험비를 낼 수 있었다. 아르바이트 신분보다도 못한 대접을 받으며 학교에 머무를 필요가 없다는 걸 깨달았다.


조교와 시간강사로 근무했던 8년을 '유령의 시간'으로 규정지은 김민섭은 대리운전을 시작한다. 노동이란 무엇인가를 깊게 고민하면서 실제 삶의 체험 현장으로 뛰어든다. 카카오 드라이버에 가입해서 대리 기사가 된다. 수수료 20퍼센트를 제하면 다음날 돈이 입금 된다. 원고를 써서 돈을 벌 때와는 다른 감각이 존재한다. 책에서도 나오지만 원고료는 다음 달, 심지어는 두 달이 넘어도 입금이 되지 않기도 했다.


『대리사회』 속 세상은 신랄했다. 상상하고 사색해서 쓴 글이 아니다. 밤부터 새벽까지. 어떨 때는 아내와 함께. 대리운전을 하며 겪은 세상의 다양한 모습을 그려낸다. 사람 일이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그래서 장담할 수는 없지만 대리 기사를 부를 일이 없을 것 같은 나는 김민섭이 살아낸 대리운전기사의 생태계를 운 좋게도 엿볼 수 있어서 다행이다.


책은 노동이라는 가치를 함부로 여기는 타인을 안타까워하는 마음으로 쓰였다. 잘못을 따지거나 꾸짖지 않는다. 심지어 가르치려 들지도 않는다. 타인의 운전석에 앉아서 바라본 삶의 풍경을 쉽고 정다운 언어로 표현한다. 『대리사회』는 체험이라는 진정성을 획득하여 몰입의 즐거움을 가져다준다. 술을 마셔 직접 운전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호출로 김민섭은 도시의 이곳저곳을 돌아다닌다.


타인을 어떻게 대해야 하나. 『대리사회』는 묻고 답한다. 일하는 사람은 나인데 주체가 되지 못하는 노동의 현장에서 나를 어떤 방식으로 지켜 나갈 것인가. 김민섭은 논문을 쓰는 대신 타인의 운전석에 앉아 답을 찾아간다. 말 한마디 행동 하나에서 그 사람의 진정한 모습이 보인다. 타인을 대하는 태도는 타고나는 것이 아닌 스스로 만들어 가는 것이다.


호칭에서부터 단어 선택까지 타인을 대할 때 우리는 심각할 정도로 조심스러워야 한다. 예전의 나는 책에서 그러한 점을 배웠다면 요즘의 나는 실생활에서 느끼고 깨닫는다. 김민섭이 대학을 나와(책으로 익힌 세상이 아닌) 직접 발로 뛰면서 배운 현실이 더 입체적이었듯이 나 역시 우물 안에서 나온 개구리의 자세로 세계의 다층적인 면을 매일 만나고 있다.


대리운전을 부를 일은 없을지라도 대리운전을 불러서 가는 차에 타게 될지도 모른다. 그럴 때 기사님에게는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대리사회』를 통해 알게 되었다. 말 한마디라도 고생하시네요, 감사합니다. 뒤에 따라오는 차(대리 기사님을 픽업해가는 차)가 없다면 어떻게 나가시나요 물어봐 주는 일. 온기를 전하는 일은 사소한 말과 행동으로 이뤄낼 수 있다.


가끔 억울하다. 나는 책을 읽어가며 타인을 대하는 태도를 배우는데 일부의 타인들은 그렇지 못한 것 같아서. 오늘도 나는 짜증과 고함이 섞인 말에 대답을 해야 했다. 감정이 드러나지 않도록 노력은 했는데 그게 생각대로 됐을지는 모르겠다. 『대리사회』에는 운전석에서 만난 별의별 사람들의 에피소드가 들어 있다. 김민섭은 내내 운전석에 앉아 자신의 감정을 숨겨야 했다. 그것에 비하면 나의 하루는 별일 아닌 것처럼 느껴진다. 타인의 고통에 나를 대입해 슬픔을 무력화하는 것. 책을 읽어가는 이유가 되겠다, 이기적인 이유가 되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