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꾸로 소크라테스
이사카 고타로 지음, 김은모 옮김 / ㈜소미미디어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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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카 고타로의 신작 소설 『거꾸로 소크라테스』를 빨리 읽고 싶었다. 일요일 오전부터 읽어 나가기 시작했다. 누운 자리에서 세 편을 내리읽었다. 그러다 배고파서 잠깐 책을 덮어 두었다. 마지막 한 편이 남았을 때 내일이 월요일이라는 사실이 머리를 스쳤다. 아. 안돼. 월요일이라니. 빨리 자야 하는데. 다음 이야기가 궁금하다.


일 끝나고 와서 읽지 뭐. 했지만 다섯 번째 소설인 「거꾸로 워싱턴」을 일주일 내내 읽었다는 진실. 거짓말, 뻥 아니고. 6시에 문 닫고 나오는 순간부터 손목과 등이 아팠다. 길바닥에 눕고 싶을 지경이었다. 누워 있으면 그대로 나를 집까지 데려다주면 안 될까. 순간 이동 같은 거 그런 걸로는 안 되나. 집에 와서 씻고 뉴스 보고 그러면 밤 아홉시.


구독 중인 유튜브 채널을 보다 보면 열시 반. 방으로 들어가 책을 펼쳤다. 한 장 읽었을까. 잠이 쏟아진다. 잠깐 눈을 감고 있을까 했지만 스탠드를 끄고 등과 바닥이 혼연일체가 되어 잠이 든다. 금요일이 되어서야 『거꾸로 소크라테스』를 전부 읽을 수 있었다. 금요일이니까 가능했다. 모든 요일이 금요일이 되기를, 미래의 어느 날에는.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좋아한다. 묵묵히 일상을 살아가는 혹은 견디는 듯한 자세로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고 있으면 존경스럽고 경이롭다. 예전에는 미처 알지 못했다. 아침에 눈을 뜨고 밥을 챙겨 먹고 일하러 가는 일이 실로 대단한 일이었다는걸. 남과 다투지 않고 아프게 하지도 않고 살아가는 건 대단한 노력이 필요하다는걸. 몰랐고 이제는 알게 되면서 조심스러운 마음으로 살아가려고 한다.


『거꾸로 소크라테스』는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이 주인공이다. 인상 깊은 기억 외에는 그 시절이 잘 떠오르지 않는다. 소설을 읽다 보면 하나둘씩 그때의 그 기억이 떠오르는 놀라운 경험을 하게 된다. 그랬었나 하는 일이 그랬었지 하는 식으로. 답답한 시절을 살았는데 잘도 잊어버리고 살았구나. 표제작 「거꾸로 소크라테스」는 선입견으로 가득 찬 담임선생님의 사고를 전환 시켜주는 이야기이다. 생각이 깊은 전학생 안자이 덕분이다.


교사의 말 몇 마디는 아이들의 미래를 바꿀 수 있을 정도의 효과를 가져온다. 무심코 뱉은 말에 아이들은 상처를 받는다. 혹은 그 말에 압도되어 놀라운 능력을 발휘한다. 안자이가 본 구루메 선생님은 구사카베를 함부로 대한다. 아이의 능력을 인정하지 않고 폄하한다. 안자이는 친구들과 작전을 펼친다. 구루메 선생님의 생각이 틀렸다는 걸 모두에게 보이려 한다.


이사카 고타로니까 가능한 소설이다. 사람의 겉모습만 보고 평가하는 것에. 힘이 있음에 도취되어 남에게 뻔뻔하게 상처를 주는 것에. 솔직하게 굴면 오히려 상대를 무시하는 것에. 초등학생을 주인공으로 너희들 그러면 절대 못 쓴다는 교훈을 경쾌하게 이야기한다. 기발한 술수를 쓰지 않는다. 아이들이 짜내는 묘책이 얼마나 대단할 것인가.


시험을 잘 보게 만든다든지. 능력을 숨기고 있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드러낸다든지. 오해가 생긴 상황에서 진실을 알려준다든지. 『거꾸로 소크라테스』에는 평범에 평범을 더한 빛나는 순간이 존재한다. 따뜻한 마음을 가진 친구가 한 명 있다는 건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내일을 맞이할 수 있다고 알려준다. 악의에는 선의로 맞설 수 있다고도.


평범한 모습으로 살아가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부정적인 생각에 빠지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나를 인정하며 살아가고 싶다. 역사와 인류의 미래를 바꿀만한 능력 같은 건 내게 없다. 앞으로도 없을 예정이다. 다만 그저 나를 싫어하지 않고 남을 미워하지 않으며 오늘을 보내고 싶다. 좋은 일이 생기면 기뻐해 준다. 힘들면 그만해도 되고 하지 못한 일에 미련을 가지지 말라고, 계속 말해준다.


소설 속 말처럼 약속을 잘 지키고 믿을만하고 착실한 나로 살아간다. 놀라운 이야기는 평범함 속에서 나온다. 이사카 고타로의 『거꾸로 소크라테스』는 그의 다른 어떤 소설 보다 놀랍고 아름답다. 특별할 것 없는 나라는 사람이 실은 괜찮고 근사한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음을 넌지시 알려준다. 사는 거. 어려울 거 없어. 네가 하던 대로 하면 돼. 인사 잘하고 친절한 모습 그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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