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의 집
손원평 지음 / 창비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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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몸은 피곤하지만 마음은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지난주였다. 그러니까 지난주라고 쓸 수 있는 건 지난주를 지나서 이번 주로 넘어왔기 때문이다. 다행. 다행이야. 못 버티는 건 없지. 버틸 수 없다고 여기는 마음 때문인 거지. 쉴 때도 일 걱정을 한다고 하면 유난 떤다고 할 건가. 그건 아니고. 원래 나는 불안에 걱정을 주렁주렁 달고 사는 사람인지라. 어쩔 수가 없다. 어쩔 수가 없다고 쓰면 다 인가.


오늘 글은 대체 왜 이럴까. 말장난이나 하고 있다. 요즘에 드는 생각이란 카프카가 대단하다는 것. 일 끝나고 집에 와서 어떻게 책상에 앉아서 글을 쓴 걸까. 매일 꾸준히 꼬박. 그렇게 대작을 써냈다. 나는 그렇지 못하다. 집에 오면 겨우 씻고 눕는다. 브이로그에 나오는 사람처럼 저녁 시간에 밥해 먹고 공부하고 책도 보고 싶은데 그런 사람의 일상만 들여다본다. 나도 저렇게 하고 싶다, 싶다. 책을 사놓고 펼쳐 보지도 않고 머리맡에 놓아 둔 채 누워 있다. 내일 업무에 대한 걱정이나 하면서.


특별한 일처럼 굴지 말고 일상의 일처럼 여기라는 조언을 듣고서야 마음이 풀어졌다. 손원평의 소설집 『타인의 집』에는 내가 잘할 수 있을까 의문했던 시간들이 그려진다. 소설 속 인물들에게서 현실을 살아가는 영감을 받는다. 나약하고 불안해서 사람들을 만나기가 꺼려진다. 그러지 말아야지. 일단 부딪혀 봐야지 하면서도 집으로 분홍색 이불이 깔려 있는 방으로 들어간다. 옆으로 누워 색온도를 조절해서 전자책을 읽는다.


작고 네모난 세상에서 만나는 사람들. 『타인의 집』에는 관계가 불안정한 사람들이 많이 등장한다. 이혼 직전에 있는 부부. 아버지가 미운 쌍둥이들. 엄마라는 이름이 부담스러운 엄마. 관계가 어그러진 노년의 부부. 1인 가구로 사는 노인. 전세 아파트에서 남과 같이 사는 여성. 아픈 형을 간호하는 택배 기사. 문학을 꿈꾸는 여학생. 책방 주인과 손님. 주위를 둘러보면 만날 수 있는 인물이다. 집을 나서면 만날 수 있는 사람. 쉽게 집을 나서지 않아 책에서 만난다. 나는.

표제작 「타인의 집」이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다. 서울에서 월급을 모아 집을 살 수 있을까. 질문은 바보 같다. 절대 없다는 답이 분명한 질문이기 때문이다. 주인공은 방을 구하기 위해 면접을 치른다. 쾌조 씨라는 아이디를 가진 집주인을 만나 이야기를 나눈다. 1차 면접에 통과해야 집을 볼 수 있단다. 애인과는 깨지고 회사에서 잘리고 살던 집에서는 월세 인상 때문에 쫓겨나다시피 했다. 이런 서사 흔한가. 지겨운가. 쾌조 씨는 집주인이 아니었다. 전세에 사는데 남는 방을 주인 몰래 빌려주는 거였다.


소설의 결말은 짐작할 수 있었다. 꽉꽉 닫힌 결말. 발랄한 소설이 될 줄 알았는데 『타인의 집』에 실린 소설은 어둡고 불안한 분위기를 유지한다. 발랄한 소설을 기대한 건 생활이 그렇지 못해서 소설에서나마 그런 기분을 느껴보고 싶은 이기심 때문이다. 걱정을 걱정한다. 내내 걱정만 하다 지낸 휴일의 결론이다. 걱정을 해서 해결을 하는 게 아니라 걱정이 걱정을 낳는 꼴이다. 지금을 잘 보내서 저녁 6시 이후에 기운을 내서 누구라도 읽으면 흔한 이야기네 하는 소설을 쓰고 싶다.

외계라는 세계가 존재한다면 오늘의 내가 두려워하는 일을 보면 뭐야, 먼지 같은 일에 연연하고 있네 하겠지, 하는 상상을 하면서. 별 일 아니라는 주문을 건다. 오늘 아침에는 머리를 말리다가 그런 생각을 했다. 소설 창작론 시간에 소설가 교수가 했던 말. 대학교 2학년 학생 치고 문장을 잘 쓴다. 어떻게든 그동안 들었던 칭찬의 말을 생각해 내지 않으면 출근을 할 수 없을 것 같았다. 문을 열고 나갈 힘을 마련하기 위해 몸이 반사 신경처럼 칭찬을 찾아내고 있었다.

「문학이란 무엇인가」는 문학이 가진 불온함을 담아낸다. 간절히 문학을 원하지만 문학은 나를 원하지 않았다. 용기가 없었다는 말이 맞겠다. 생활을 포기할 용기를 낼 수 없었다. 손원평이 그리는 내일에는 어떠한 희망이나 위로가 없다. 오늘에서 내일은 이어지지 않고 단절된다. 오늘로서 끝을 말한다, 『타인의 집』은. 그러니까 올지 안 올지 모를 내일은 기대하지 말라고. 걱정을 하는 이유는 내일이 있을 거라는 가정하에서였다. 내일은 존재하지 않는다. 존재하는 건 오늘의 너. 그것만 머릿속에 새기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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