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4분 33초 - 제6회 황산벌청년문학상 수상작
이서수 지음 / 은행나무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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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이렇게 될 줄 알았다,라는 확신의 문장을 쓰고 싶지만 이렇게 되는 게 어떤 건데라고 물으면 할 말이 없어서 수정한다. 이렇게 될 줄 몰랐지만 이렇게 되어 버렸고 앞으로는 어떻게 될지 모르는 게 지금의 나의 상황이다. 이렇게 가 대체 뭐냐. 그건 나 자신도 예측하기 힘든 이상한 하루하루를 살고 있다는 뜻이다. 과거의 나는 오늘의 일보다 내일과 모레의 닥치지도 않을 미지의 미래를 두려워하기에 급급했다.


현재의 나는 그저 오늘은 무사히, 별일 없이 지나간 것에 무한한 감사를 보내고 있다. 다들 그렇겠지만 어린 시절에는 어른이 된 멋지고 근사한 나를 상상하기에 바빴을 터이다. 어른이 된 현재의 우리들은 멋지고 근사한 건 빼고 멀쩡한 나이기만을 바라며 살고 있지 않을까. 아무것도 되지 못함에 자책하지 않기를, 모두들. 그럴듯한 인생의 정의를 내리고 싶지만 알 수 없다는 모호한 말 밖에는 인생을 설명하지 못한다. 절망과 고통을 겪고 있더라도 애써 그것을 무시할 수 있는 강인한 체력이 있기를.


말도 안 되는-적어도 내 기준에서는-직업을 선택하면서 하루가 어떻게 지나가는지 모르고 지내고 있을 때쯤 이서수의 「미조의 시대」를 읽었다. 미조가 겪는 불합리함과 막막함에 나를 투영했다. 소설을 읽는, 읽어야 할 이유를 다시 한번 상기시켜 준 작품이었다. 그래, 나만 힘든 건 아니고 나만 바보 같은 건 아니고 나만 부조리에 빠진 건 아니란 말이야. 그래도 소설을 읽으면서 희망을 건져내고 기쁨을 구해내고 있잖아.


『당신의 4분 33초』를 빠른 시간 안에 읽을 줄 알았다. 잘하는 게 그닥 없는 나는 그나마 할 줄 아는 거라곤 한자리에 앉아서 혹은 누워서 (거의 누워서 읽지만) 책을 빨리 읽어낸다는 것이다. 지친 몸을(이런 상투적인 표현을 피하고 싶었는데. 진짜 하루를 마무리할 때쯤 몸은 지쳐 있다. 그 좋아하는 텔레비전도 제대로 보지 못한다. 눈이 감겨서) 눕히고 『당신의 4분 33초』를 펼친다.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의 소설이다. 역시. 나의 안목은 최고야.


곧바로 이야기로 직진하고 문장은 간결하면서도 중간중간 유머러스함을 퍼트려 놓았다. 인물이 겪는 상황은 딱 봐도 절망스러움인데 어찌 된 게 고통을 호소하거나 죽겠다고 징징대지 않는다. 파괴된 세계를 구할 수 있는 건 커트 보네거트 식으로 말하자면 유머와 농담밖에는 없다는 걸 아는 듯한 말과 행동을 이어간다. 소설을 읽어가다가 우리의 주인공 이기동은 소설가 이서수구나 유레카. 김밥 집을 하는 엄마는 아들 이기동이 의사나 판검사가 되기를 바랐다.


이기동의 성적은 평균 60점대를 맴돌고 있었는데도. 그걸 모르는지 알면서도 모른척하는지 엄마는 기동을 놓지 않았다. 결국 재수를 시키기로 하고 아들을 노량진 학원으로 보낸다. 거기서 기동은 서울대를 목표로 했지만 수능 중간에 위경련을 일으켜 시험에 망한 일등과 재수 학원 지박령 최장기수 누나를 만난다. 겨우 대학에 들어가 무논리를 앞세워 남과 대화만 하면 싸우는 선배와 썸을 타다가 군대에 간다.


무얼 하려다 실패만 맛보는 이기동과 소설가가 되려 했지만 음악가가 된 존 케이지의 삶을 나란히 두고 『당신의 4분 33초』는 흘러간다. 소설을 다 읽고서야 제목의 근사함을 확인했다. 음악의 혁명을 꿈꾸는 존 케이지는 아무 연주도 하지 않는 〈4분 33초〉라는 음악을 만들어 낸다. 피아니스트는 피아노 뚜껑을 열고 4분 33초 동안 앉아만 있다. 관객은 당황하기 시작한다. 그때부터 연주장의 모든 소음은 소리가 된다. 그리고 연주된다.


소설 읽기가 금지된 세상의 이야기는 어떨까. 저 중학생이 주인공이고, 뭐 어때. 재미로 쓰는 거지. 아무도 내가 뭘 쓰는지 모르고 관심도 없으니까 아무거나 써도 돼. 심지어 재미를 느껴도 돼. 촌스러운 문장이나 지루한 문장을 지울 필요도 없고 손 가는 대로. 남의 눈 의식하지 않고. 자유롭게. 이제 해방시켜줄 때도 되었지. 5년씩이나 가둬뒀으니.

내친김에 그는 매점까지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 연습장과 볼펜을 사 왔다. 그리고 열람실 의자에 앉아 첫 번째 문장을 적어 내려갔다. 아무런 심사 없이. 볼펜이 저 혼자 미끄러져 달려갔다. 그는 받아 적기만 하면 되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엔 더 이상 자신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사실로 괴로워하지 않았다. 그딴 건 상관도 없었다. 오로지 다음에 이어질 내용에 대한 고민뿐.

(이서수, 당신의 4분 33초 中에서)


이기동은 죽은 아버지가 남긴 노트를 읽는다. 앞 장을 뜯어서 신춘문예에 응모한다. 탈락. 이야기를 다시 배열해서 응모한다. 탈락. 이번에는 반은 자신이 쓰고 반은 아버지가 쓴 내용을 보낸다. 합격. 어쩌다 소설가가 되었다, 기동은. 무언가 간절히 원하면 그것만 빼고 다른 게 된다. 이 나이 정도 됐으면 책 한 권은 냈을 줄 알았는데. 책만 읽고 있다. 책 쓰는 거 빼곤 뭐든지 하고 있다. 나에게 주어진 상황 모두가 책을 쓰기 위한 여정이라고 한없이 너그럽게 생각하려다가도 자괴감에 빠진다.


최장기수 누나와 결혼을 하고 소설을 쓰려고 했지만 청탁은 오지 않는다. 엄마와 김밥 집에서 일하는 기동은 도서관에서 존 케이지가 쓴 책을 읽는다. 시간과 공간이 다른 두 세계에서 기동과 존 케이지는 만난다. 피아노 앞에 앉아서 온갖 소리를 듣는 것으로 연주되는 〈4분 33초〉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지만 아무것도 되지 못했지만 그건 실패가 아닌 훌륭한 삶의 이야기가 펼쳐지는 시간이라는 의미이다.


작가가 되지 못했다고 책을 내지 못했다고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는 건 아니다. 그게 조롱인지 아닌지 판단하고 싶지도 않지만 졸업한 학과를 들먹이면서 이 정도는 알아야 하지 않겠느냐는 말을 수시로 듣지만 나는 내가 읽어 가는 책으로써 주눅 들지 않는다. 네가 보기에 내가 이러고 있는 게 우스워 보일지 모르지만 나는 괜찮다. 『당신의 4분 33초』가 말해주었거든. 당신의 연주는 훌륭하다고. 쉬지 않고 이어지는 연주를 누군가는 듣고 있다고.


누군가 읽어주기를 기대하면서 쓰는 게 아니다. 내가 좋아서 내가 쓴 글을 읽고 나 자신이 위로를 받기 때문에 쓴다. 이기동의 깨달음. 아무도 나에게 관심이 없으니까 쓰고 싶은 대로 쓴다는 거. 희망적이게도 나는 나에게 관심이 많다. 『당신의 4분 33초』는 부디 당신 자신에게 관심을 가져달라고 말하는 책이다. 당신이 당신에게 관심이 없는데 누가 관심과 성원을 보일 것인가 진지하게 묻는다. 타인과 나에 대한 쓸데없는 비교는 넣어두고 나와 세계에 관한 사투를 이어가기를 이기동과 이서수는 바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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