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틸다 (반양장) - 개정판 시공주니어 문고 3단계 34
로알드 달 지음, 퀸틴 블레이크 그림, 김난령 옮김 / 시공주니어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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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인이 군대에 가기 전 마지막으로 본 영화는 《찰리와 초콜릿 공장》이었다. 우리는 소란하고 북적스러운 극장 안에서 그 영화를 보았다. 나로서는 당황스러운 경험이 아닐 수 없었다. 대체 그 시간에(한낮이었다. 그래 한낮이니까 그렇겠지.) 어디에서 아이들이 나타난 것일까. 아마도 유치원 단체 관람이지 않을까 싶다. 선생님과 부모들이 함께 있었던 걸로 기억한다. 과자와 음료수를 든 아이들이 일렬로 앉아 있었고 우리는 뒷자리에 구겨져 있었다.


그때 처음으로 로알드 달과 조니 뎁을 알았다. 이후 애인이 없는 시간에 로알드 달을 읽고 조니 뎁의 출연 영화들을 하나씩 보았다. 그래도 시간이 가지 않았다. 아이들은 대체로 폭소했고 나 역시 어떤 장면에서는 웃음이 터졌다. 윌리 웡카가 만들어낸 큼직한 초콜릿을 먹고 싶었다. 그 안에 황금 티켓이 있으면 더 좋고. 시간이 흘러도 보면 볼수록 좋은 영화가 있는데 그중에 《찰리와 초콜릿 공장》도 포함된다. 화려한 색감과 흥미진진한 이야기. 교훈적인 결말이라서 세속의 때에 찌든 나의 영혼을 목욕 시켜 주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마틸다』를 아직 안 읽었다니. 도대체 왜. 로알드 달의 대표작인데. 가끔 이렇다. 중요한 걸 놓치고서 중요한 일을 했다는 착각을 이어간다. 『마틸다』를 읽지 않고서 로알드 달을 읽었다고 잘난 척을 해댔다. 한국어판 『마틸다』 뒤표지에는 '독서 레벨 3 권장 연령 초등학교 5학년 이상'으로 쓰여 있다. 요즘 5학년은 생각의 깊이가 넓으니 『마틸다』를 충분히 읽을 수 있으리라. 2021년에 읽어도 문제작인 이 소설을.


설명해 무엇하랴. 마틸다는 태어날 때부터 비범했다. 스스로 글을 깨치고 수학에 특별한 재능이 있는 아이였다. 다만 부모만이 몰랐을 뿐이다. 사기로 중고차 사업을 하는 아버지. 종일 빙고 게임에 빠져 있는 어머니. 평범한 소년인 오빠 마이클. 마틸다는 아버지에게 책을 사달라고 했지만 돌아온 대답은 텔레비전이나 보라는 것이었다. 세 살이 된 마틸다는 집에 요리책밖에 없다는 걸 안타까워한다. 스스로 걸어가 공공 도서관에 간다. 그곳에서 펠프스 여사를 만나고 마틸다의 체계적인 독서가 시작된다.


얼마나 다행인지. 소설이지만 마틸다가 책을 읽지 못하는 이야기로 계속 가면 나 책 안 읽을 뻔했어. 다섯 살이 된 마틸다는 학교에 들어가고 그곳에서 엄청난 모험을 한다. 첫눈에 마틸다가 천재임을 알아본 하니 선생님과 함께 말이다. 초등학교 5학년 이상용이지만 『마틸다』는 언제 어디서나 누구라도 읽어야 할 소설이다. 천재 이야기꾼 로알드 달은 아동용이라고 해서 평범한 이야기를 써내지 않았다. 여성의 교육, 가혹한 학교 수업과 체벌, 방임을 일삼는 부모.


시공간을 초월해 읽는 『마틸다』에는 지금도 곳곳에서 벌어지고 문제를 날카롭게 풍자한다. 하니 선생님의 놀라운 이야기 속에서 그녀가 삶을 사랑하는 방식을 배우고 싶다. 문제가 있지만 자신이 해결할 수 있는 한에서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 전부를 바꿀 수 없다면 일부를 바꾸며 살아가는 것이 근사할 수 있다는 걸 알려준다. 천재 소년 마틸다와 세상을 다정하게 이해하려는 하니 선생님의 우정은 경이롭다. 요즘 뜨고 있는 대안 가족의 형태도 로알드 달은 무리 없이 그려낸다.


안다. 책을 읽는다고 해서 세상을 힘들지 않고 살아가는 게 어렵다는 것을. 내가 그 경우다. 삶을 책으로 배웠어요의 표본이다, 내가. 빈 방에서 드러누워서 책만을 읽던 내가 뒤늦게 사람을 많이 만날 수밖에 없는 일을 하고 있다. 다양한 성격과 행동의 사람들. 서툴러서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몰라 허둥대고 있다. 그렇게 오랫동안 책을 읽었는데. 역시 이론은 실전과 다르다. 마틸다처럼 비범한 능력을 가지고 문제를 해결할 순 없다. 다만 나는 하지 못하는 그 일들을 해내는 마틸다를 보며 용기를 얻는다.


어린이는 어른이가 되었다. 나이를 먹고 몸집이 커졌을 뿐 세상을 대하는 건 여전히 힘들다. 어린이 적 읽은 환상과 모험이 가득한 세계가 펼쳐지는 책을 읽은 어른이는 좀 다를 수 있다. 유해보다는 무해의 방식으로 자신을 다독일 수 있다. 극적으로 상황을 타개할 순 없지만 죽지 않고 버티면 나아질 수 있음을 안다. 소설의 방식 대로. 이상 월요일이 두려운 일요일의 어른이가 쓴 마틸다 독후감이었습니다. 다들 마틸다 읽으셨죠. 또 나만 안 읽고 뒷북 날리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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