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차 면접에서 돌발 행동을 보인 MAN에 관하여 욜로욜로 시리즈
박지리 지음 / 사계절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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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먹어서 취준생으로 살기 쉽지 않더라. 사람은 자기 힘든 것 밖에 보지 못하니까. 나는 그 시절이 힘들었는데 누군가의 눈에는 그래도 괜찮게 보였을 수도 있다. 그걸 의식하기에 주변에 사람이 없다는 게 함정. 아무도 나를 신경 쓰지 않았는데. 나만 나를 미치도록 신경 써서 괴롭게 한다. 쓸데없는 걱정을 만들어서 고달프게 만든다. 직업이 있든 없든. 놀고먹든. 매일 누워서 책만 읽고 그러다 잠이 들든 말든.


나는 내 나이가 많다고 생각하는 데 나를 아는 극소수의 몇몇 사람은 젊다고 여긴다. 놀랍다. 나이 많다고 면접 볼 기회조차 쉽게 얻지 못했다. 겨우 본 면접에서는 나이 이야기가 빠지지 않았다. 운전면허증이 없다는 말에 그 나이 먹도록 뭐 했는지에 대한 철학적인 고찰을 빙자한 비아냥을 듣기도 했다. 아, 애증의 운전면허증. 딸지 말지는 추후에 고민해 보는 걸로.


오늘 또 이상한 이야기를 들었다. (또라는 부사를 쓴 까닭은 이상한 이야기를 자주 듣기 때문이다.) 사후 세계라는 것이 있단다. 국적을 불문하고 한 번 죽었다 다시 깨어난 이들의 증언이 유사하다는 것. 고로 죽으면 끝이 아니라 죽으면 어딘가로 가게 된다는. 믿거나 말거나 같은 말이지만 사후 세계가 있으면 좋겠다. 그래서 일찍 죽은 소설가 박지리가 못다 쓴 소설을 쓰고 있으면 어떨까. 10년만 더 살고 싶다고 말하던 엄마도 그곳에서 아프지 않게 지내고 있었으면 좋겠다.


『3차 면접에서 돌발 행동을 보인 MAN에 관하여』는 독특한 소설이다. 희곡과 소설의 갈래가 섞여 있다. 소설의 첫 부분은 희곡의 무대장치를 설명하는 해설로 시작한다. 마흔여덟 번째 면접을 보러 가는 M. 취준생으로 살기 전에는 이런 말은 전부 과장인 줄 알았다. 이력서를 100통 넣었다. 몇십 번째 면접을 보러 간다. 이런 이야기들. 내가 겪어보니 알겠다. 그건 과장이 아닌 축소일 수도 있겠다는.


M이 보러 가는 면접장의 풍경은 서글프다. 취준생은 누구나 겪었을 모습. 면접을 보러 가서 한없이 기다리다 사장이라고 하는 사람에게 면접을 봤는데 알고 보니 사장이 아니었다는. 괴담이 아닐까 의심 되는 에피소드. 그 후에 M은 출제자의 의도가 궁금하고 나아가 출제자의 인성까지 의심하게 만드는 질문을 받고 다소 엉뚱한 대답을 하고 합격한다. 그걸로 끝? 그러면 너무 재미없지. 이건 소설인데. M은 연수를 하기 위해 합숙소에 들어간다. 다양한 인간 군상을 만나며 M은 변해간다.


전자책으로 읽어서인지 대화가 잘렸다. 어떻게든 종이책의 원문대로 보고 싶었는데 실패했다. 그래도 M이 착각한 부분을 알아낼 수 있었다. 연수원에서 M은 평가표 하나를 본다. 13번에게 적힌 X를 보면서 자신이 13번이 아닐까 고민한다. 결국 M은 자신이 13번이라고 믿는다. 합격을 목표로 조장을 맡고 집 짓는 일에 공을 들인다. 아침밥까지 하면서. 사는 거. 참 어렵다. 취업이 되어도 문제인 게 업무 파악하고 인간관계 맺는 일이 만만치 않다.


소설을 읽다가 드는 생각은 박지리는 어떤 마음으로 『3차 면접에서 돌발 행동을 보인 MAN에 관하여』를 썼을까이다. 생전에 인터뷰했던 기사를 찾아보니 대학에서 공부한 행정학이 어려워 소설을 썼다고 한다. 취업 공부하기 전에는 문학이 가장 어려웠다. 능력은 안 되는데 글은 잘 쓰고 싶었다. 열등감이 먼저 생겼다. 책을 읽기 전 작가의 나이를 먼저 봤다. 어리다. 나보다. 이제 이렇게 되는구나. 먹고살려고 자격증 공부를 하면서 아, 문학의 언어는 얼마나 다정했던가를 뼈저리게 느꼈다. 쉽게 쓰자는 마음.


변해가는 M의 모습은 소설 속 인물이라기보다 현실 세계 모두의 모습이다. 망상은 외로움의 다른 이름이 아닐까. 절망적으로 변해가는 나에게 단 한 명의 누구라도 위로와 용기의 말을 줄 수 있다면 망상의 지점까지는 가지 않을 수 있다. 이야기를 들어주고 들어주는 누군가. 언젠가는 죽을 나. 살아있는 동안 책 많이 읽을 거다. 사후 세계에 가서 작가들과 신나게 떠들려고. 그곳에서 쓴 작품들도 읽어야지. 죽어서도 책을 읽을 수 있다는 그런 망상으로 버티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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