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춘단 대학 탐방기
박지리 지음 / 사계절 / 201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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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으면 어떻게 될까. 길을 걷다 그런 질문을 했다. 죽음이 무서운 이유는 죽는다는 걸 깨닫게 되는 것이라고도 말했다. 아, 나는 죽는구나. 이제 어쩌지. 막막하고 두려운 감정을 느끼는 것. 죽음의 순간을 자각하는 상상이 죽음이 무섭게 여겨진다고. 질문을 받은 이의 대답은 명쾌했다. 죽으면 끝. 아무것도 느낄 수 없을 거라는 단호한 대답.


그렇구나. 죽으면 끝. 두렵고 무서운 기분을 느낄 새도 없겠구나. 그렇게 생각하면 죽음은 별것 아닌 게 될 수도 있겠구나. 생일을 며칠 앞두고 길을 걸으며 우리는 그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소설가 박지리를 나만 늦게 알게 된 걸까. 나름 한국문학 애호가라고 비밀리에 떠들고 다녔는데. 무지렁이였다. 나는. 부지런한 독자가 아니었다. 좁고 편향된 세계를 살아가는 독자였던 것이었던 것이다.


나만 그런 것 아닌 것 같다는 추측으로 박지리를 늦게 알게 된 걸 위로해 보지만 위로해보아도 소용없는 게 소설가 박지리는 세상에 없다. 일찍이도 세상을 떠났다. 소설가가 남긴 책의 목록을 보면서 그중에 한 권을 읽기 위해 책을 펼치면서도 생각하게 되는 의문. 왜 죽었나. 안다. 사람은 죽는다. 그건 나도 당신도 우리 모두 아는 사실이다. 세상에 단 하나의 진실만 남게 된다면 사람은 죽는다는 것.


그래도 의문과 의심과 의구심은 남는다. 왜 죽었을까. 살아 있었다면 더 좋은 작품을 써냈을 텐데. 처음으로 읽은 『양춘단 대학 탐방기』를 읽는 내내 안타깝고 서글펐다. 소설을 읽어보면 안다. 일찍 세상을 떠난 소설가의 죽음이 이토록 마음이 아픈 이유를. 내가 뭐라고 평가를 하겠느냐만. 박지리의 문장은 대단하다. 공선옥 이후에 전라도 사투리를 능숙하게 써내는 작가는 박지리가 처음이다. 물론 내가 읽은 작품에 한해서. 더 잘 쓰는 작가도 있겠지만 내가 제일로 여기는 작가는 공선옥이다.


시골에서 농사짓고 사람들과 어울리는 걸 제일의 낙으로 여기는 김영일, 양춘단 부부. 평생 농사를 지으며 마을 사람들과 도란도란 살줄 알았다. 어느 날 덜컥 영일이 큰 병에 걸렸다. 치료를 받기 위해 서울로 상경을 한다. 살던 집은 마을 사람에게 잠시 내주고 영일, 춘단은 아들이 사는 곳으로 간다. 수술은 성공적으로 끝나고 병원에서 알게 된 인연으로 춘단은 대학교에 미화원으로 일을 시작한다. 청소 일이지만 대학에 가는 것을 큰 자랑으로 춘단은 여긴다.


자신이 아는 모든 이에게 전화를 걸어 대학에 가게 됐노라고 어린 시절 학교에 가지 못한 설움을 한풀이하듯 자랑으로 풀어낸다. 『양춘단 대학 탐방기』는 시대를 앞서간 소설이다. 시대를 정확히 읽어내기 위한 노력이 담긴 소설이다. 청소 노동자의 열악한 환경, 시간 강사의 비애, 노동 운동의 현실이 소설 안에 총망라되어 있다. 석공의 딸로 태어난 양춘단의 시선을 통해 한국 사회의 부조리를 파고든다.


춘단은 대학에 청소하러 가게 된 것이 생애 가장 큰 행운으로 여긴다. 그곳에서 춘단은 자신이 지금껏 몰랐던 새로운 가치에 눈을 뜬다. 시간 강사 한도진과의 우정은 춘단을 성숙하게 만든다. 참, 사는 거 별거 아닌데. 너무 어렵게 산다. 별거 아니라고 쓰는 건 진짜 별게 아닌 게 아니라 마음을 바꾸어 먹으면 어려운 일은 없다는 뜻이다. 조급해 하지 말고 욕심부리지만 않으면 오늘은 고마운 시간이다. 살아 있다는 게 행복하다고 간지럽지만 깨닫게 되는 것이다.


쉽게 생각할 순 없었을까. 『양춘단 대학 탐방기』를 읽으며 든 생각이다. 이토록 아름답고 현실을 투명하게 반영하면서 문제의식조차 슬프게 표현할 수 있는 재능을 가졌으면서. 왜. 도대체. 왜. 춘단의 결의는 대단했다. 미화원들이 농성을 벌일 때 자신은 그저 시급이 깎여도 대학에 다닐 수 있다는 점에 만족하면서 혼자 청소를 했던 춘단이었다. 같이 점심을 나눠 먹던 한도진이 세상을 등지고 그가 남긴 공책에 적힌 일기를 화장실 벽에 쓰면서 춘단은 각성한다.


하나의 계기가 필요할 뿐이다. 한 인간이 가진 가치관과 세계관이 바뀌는 건. 나의 얄팍한 경험으로 볼 때 계기가 만들어지는 건 누군가의 죽음이었다. 죽음을 목도하는 순간 나의 세계는 이동한다. 불온하고 위험한 세계 쪽으로. 박지리의 세계는 끝이 아니다. 죽으면 끝이라고 했지만 박지리의 세계는 끝나지 않았다. 그가 두고 간 절박하고 서늘한 세계는 남았다. 위험한 그곳을 알게 되어서 살아 있는 나는 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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