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안갑의 살인 시인장의 살인
이마무라 마사히로 지음, 김은모 옮김 / 엘릭시르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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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없는 와중에 정신없이 『마안갑의 살인』을 읽었다. 왜 정신이 없었는가 하면 이번 주 가장 더운 날 세 군데로 면접을 보러 다녔기 때문이다. 나는 몰랐지. 그동안 집순이 모드여서 이렇게 여름이 성큼 다가와 있다는 것을. 언젠가는 면접 보러 다닐 거라고 사둔 나름 정장스러운 검은 바지에 KF94 마스크를 쓰고 나갔다. 나가자마자 큰일 났다는 것을 깨달았지만 다시 집으로 들어가기에는 시간이 빠듯했다. 다행히 가방에 부채 하나는 챙겼다. 서랍장에 고이 모셔둔 손풍기를 가져왔어야 하는데. 사 놓으면 뭐 하나. 제대로 쓰지를 못하고.


지금부터 면접 썰 풉니다. 혹시 이마무라 마사히로의 『마안갑의 살인』의 구성, 내용, 추리에 사용된 트릭을 알고 싶어 검색해 들어오신 분들이 있다면 건너뛰셔도 됩니다. 쓰긴 쓸 건데요. 언제 쓸진 몰라서요. 처음 찾아간 곳은 마음에 들었다. 급여만 빼고. 먼저 나를 보자마자 급여가 얼만지 알려주었다. 난 이게 제일 중요하다. 우리가 돈 벌자고 일하는 건데 사람 앞에 앉혀 놓고 훈계, 자랑, 조언을 하는 건 참 이상한 일 아닌가. 사실 이런 곳이 태반이다. 바로 업무 내용을 알려주는데 당황했다. 정중히 사양했다. 내가 생각하는 급여의 조건과 맞지 않는다고.


두 번째 간 곳은. 음. 뭐라고 말해야 하나. 사람마다 느끼는 게 다르겠지만 급여를 물었는데 네이버 계산기로 계산해 보라고 했다. 순간 당황. 이런 곳은 처음이었다. 정확한 급여를 알려줘야지. 안 그렇나요. 이런 게 보편적인 일인가요. 또 나만 모른 건가요. 세 번째 간 곳 역시 급여, 수당, 상여, 복지에 대해서는 정확한 답변을 주지 않았다. 예의 차린 훈계와 질책을 들어야 했다. 이런 게 압박 면접인가. 나는 좀 멍청해서 그 순간에는 아무 생각이 없다가 시간이 지나고서야 현타가 세게 온다.


영혼과 육체가 탈탈 털리고 집으로 돌아와 『마안갑의 살인』을 읽었다. 네. 지금부터 본격 리뷰입니다. 오늘 하루 힘들었던 게 엷어질 만큼 내용은 흥미진진했다. 이마무라 마사히로의 전작 『시인장의 살인』과도 이어지는 내용인 듯하다. 책을 사 놓고는 습관적으로 안 읽은 것 같은데. 『시인장의 살인』의 주인공이 등장한다. 그때 겪었던 이야기가 초반에 나온다. 대학교 추리 동호회 회장 하무라와 회원 겐자키는 오컬트 잡지에 실린 예언 기사에 주목한다. 익명의 독자가 보낸 편지에는 정확한 시간에 사건을 예고하는 내용이 실려 있었다. 그들은 예언가가 살고 있으리라고 추측하는 마을로 떠난다.


과거 M 기관이라는 곳에서 초능력 연구를 한 적이 있었다는 사실을 접한다. 전국에서 사람들을 모아 초능력 실험을 했다는 곳이다. 겐자키가 알아낸 바에 의하면 그곳은 마다라메 기관이라는 곳으로 실재하는 곳이었다. 그들은 기관의 실체를 알아내기 위해 마을로 떠난다. 소름 끼치도록 놀라운 예언을 하는 예언자의 존재 역시 알고 싶어서. 마을로 들어가는 버스 안에서 두 명의 고등학생을 만난다. 그들 역시 예언자가 살고 있는 마을로 가고 있었다. 하무라와 겐자키, 두 명의 고등학생은 마을로 진입하고 곧 놀라운 사실을 발견한다.


기괴하게도 마을은 텅 비어 있었다. 단 한 명의 마을 주민도 보이지 않았다. 마을로 들어오는 길에는 바리케이드가 쳐져 있었다. 그들이 만날 수 있었던 건 성묘를 하러 온 여자, 고장 난 차를 고치기 위해 여자를 따라온 아버지와 아들, 오토바이에 기름이 떨어져 구하러 온 남자였다. 마을을 배회하던 중 다리 건너 상자 모양을 한 건물을 발견한다. 마안갑이라는 건물은 이름답게 상자처럼 생겼다. 그들은 건물 안으로 들어가고 그때부터 기괴한 일이 시작된다. 이틀 동안 네 명의 사람이 죽는다는 예언을 듣게 되는 것이다.


한 공간에 사람들을 모아놓고 사건을 던져 놓는다. 전통적인 추리 소설 방식이다. 누가 범인이어도 의심스럽지 않을 상황에서 추리 동호회 회장과 회원은 그들만의 추리를 펼쳐 사건의 진상을 파악한다. 면접 보고 영혼 탈탈 털려도 손에서 놓을 수 없었던 『마안갑의 살인』이었다. 마지막까지 읽고 나서야 밝혀지는 반전 때문에 놀랍다. 전작 『시인장의 살인』도 재미있을 듯하다. 인간의 운명은 정해져 있는가. 예언자가 존재해 우리의 운명을 알려준다면 과연 미래는 바뀔 수 있을 것인가.


면접을 보고 버스를 탔던 그 시각. 다른 도시에서는 버스 위로 건물이 붕괴되었다. 찰나의 순간이었다. 도로에 차와 버스가 지나갔는데 1초 차이로 버스 하나는 사고를 피했다. 구조된 사람보다 사망자가 더 많았다. 마음이 아프다고 말하지도 못할 만큼 안타깝고 슬펐다. 『마안갑의 살인』에는 두 명의 예언자가 나온다. 그들은 예언을 하지만 미래를 바꾸지는 못했다. 예언에 갇혀 살았다. 그럼에도 예언자가 소설 밖으로 나와 정차하지 말고 그냥 가라고 말해주었더라면 하는 논리가 결여된 상상을 했다. 『마안갑의 살인』을 읽는 며칠은 정신없었다. 소설의 내용 역시 정신없이 읽을 수 있을 만큼 흥미진진했다. 강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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