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스무 번
편혜영 지음 / 문학동네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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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우리를 종종 알 수 없는 곳으로 데리고 간다. 이런 뻔한 문장을 쓰고 있다니. 편혜영의 소설집 『어쩌면 스무 번』을 읽고 리뷰를 쓰려고 앉았다가 최종에는 순탄하게 흘러가지 않는 사람들의 이야기 때문에 저런 문장을 첫 문장으로 쓰게 되었다. 행복한 성장 배경을 가지고 어른이 되고 원하는 곳에 취업을 하고 결혼을 해서 애 낳고 행복하게 살았다더라로 인생이 마무리되는 사람이 있나? 있겠지요. 잘 찾아보면 주변에 그런 사람들이 꽤 있겠지요.


문제는 잘 찾아봐야 한다는 것. 순탄 대로의 삶을 사는 사람이 주변에 있다면 그 사람 역시 인생이 고락 없이 흘러가고 있다는 증거니까. 당장 내 주변에만 봐도 없다. 천천히 곰곰이 생각을 해봐도 단 한 명도 없다. 부모 중 한 쪽이 없거나 어린 시절 방황을 했거나 직장을 잃었다거나. 나는 많이 꼬인 사람이라 텔레비전에서 내 또래의 성공한 사람이 나오면 성공까진 아니더라도 번듯한 직장을 가지고 있어 그걸 자부심 있어 하는 이가 나오면 가정 환경이 좋아서 훌륭한 부모 밑에서 커서 그런 거겠지. 그이의 노력을 외면해 버리고 만다.


아닐 건데. 원하는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 뼈를 깎는(이 또한 썩은 비유네요.) 노력을 했을 텐데. 왜 이렇게 꼬여 버렸나 생각해 보면 어린 시절을 떠올릴 수밖에 없는 것이다. 『어쩌면 스무 번』에 실린 마지막 소설 「미래의 끝」의 어린 주인공인 '나'가 크면 내가 될 것 같은 어두운 예감에 휩싸였다. 부모는 바깥에 존재했고 집에서 혼자 보내는 열 살의 '나'는 동방 생명 보험 아줌마와 기이한 우정을 쌓는다. 함께 일을 하는 부모는 집에 있는 나날이 거의 없다. 어느 날 동방 생명 아줌마가 찾아오고 지금 보험을 들어 돈을 조금씩 부으면 10년 후 '나'를 대학에 보낼 수 있다고 말해 엄마를 설득한다.


『어쩌면 스무 번』에 실린 소설 대부분이 어둡다. 그들은 인생의 마지막 기로에 서 있는 사람들이다. 치매 아버지를 모시고 시골집을 얻어 내려왔거나 투자를 잘못해 모든 걸 잃어 친구 집에 얹혀산다. 불명예 제대를 하고 고깃집을 차리지만 그마저도 망해 가고 어머니가 보내준 대학 등록금과 생활비를 생각 없이 쓰다 거액의 대출을 받는 사람들의 이야기. 그리하여 그들은 행복하게 잘 살았습니다는 동화에나 나오는 결말이라는 걸 알고 있지만 『어쩌면 스무 번』에 실린 소설 중 한 편이라도 마지막에 가짜 희망이라도 보여주었으면 했다.


과거의 나는 아프고 외로웠지만 미래의 나는 내가 바라는 일이 하나 정도는 이뤄지지 않을까 소망해 보지만 인과 관계없는 사건이 벌어지는 바람에 낙담 밖에는 할 수 없는 현재가 펼쳐질 뿐이다. 편혜영이 그리는 일상의 모습은 초기작에 비해 다소 색채가 옅어지긴 했지만 그래도 어둡다. 표제작 「어쩌면 스무 번」에 등장하는 집에 방범 장치를 달라고 찾아오는 남녀 2인조의 행동을 보고 있으면 내가 다 불안해질 지경이다. 진실을 말하고 싶어도 가지고 있는 비밀의 무게가 커서 거짓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편혜영의 인물들은.


인생은 알 수 없는 일들로 가득하다. 또 이런 뻔한 문장을 쓰고 있다. 그도 그럴게 성공의 절반은 운이라고 하던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운의 반의 반도 얻질 못한 채 살아가고 있지 않은가. 그 대신 불행을 폭격처럼 맞는다. 찾아와 달라는 운은 오지 않고 오지 말라고 거부하는 불행은 단골손님처럼 찾아온다. 그럭저럭 살아볼 만하다고 느끼는 순간 그나마 지키고 서 있는 일상을 무너뜨린다. 『어쩌면 스무 번』을 읽고 답답해할지도 모르겠다. 나의 시간을 어떻게 알고 썼을까 하고. 단 한 줌의 희망도 손에 쥐여주지 않은 채 야멸차게 떠나는 소설가 편혜영의 뒷모습을 보는 과거의 나에게 무어라고 말해줄 수 있을까. 고민하게 만드는 소설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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