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라카미 T - 내가 사랑한 티셔츠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권남희 옮김 / 비채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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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에 일했던 곳이 좋았던 게 옷에 대한 지적이나 규칙이 없었다. 처음에는 몸집에 비해 왜 옷을 크게 입고 다니느냐 소리를 듣기도 했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계속 크게 입고 다니니 그런가 보다 했다. 신기하게도 대부분 자신이 입는 옷에 만족하며 지냈다. 이게 무얼 의미하냐면. 옷에 심미적인 기능을 부여하지 않고 오로지 활동하기 편한 옷을 찾아 입는다는 거였다. 그렇다고 옷에 관심이 없는 것도 아니었다. 계절마다 신상 옷을 사서 입고 왔고 보기 좋다고 근사하다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여름이 좋았다. 미니멀리즘의 유행에 동참하며 입지 않는 옷, 입지만 불편한 옷, 언젠가 입을 거라고 모아 놓은 옷을 정리했다. 남는 건 땀 흡수 잘 되고 빨면 금방 마르는 옷이 남았다. 카카오 프렌즈의 라이언을 좋아해 라이언이 프린트된 반팔 티를 많이 샀다. 그걸 입고 가도 괜찮았다. 알만하죠? 분위기. 깃과 프릴이 달린 옷은 거의 입지 않았다. 여름 내내 반팔 티와 청바지를 입고 다녔다. 하여 지금 내 옷장에는 격식을 갖추어야 할 자리에 입고 나갈 옷이 거의 없다.


봄, 가을, 겨울에는 셔츠를 입고 다녀 그나마 괜찮은데 여름은 이도 저도 안 되는 상황이 되어 버렸다. 그렇다고 옷이 없는 것도 아니다. 센스가 있다면 있는 옷으로도 그럭저럭 인상을 좋게 봐줄 만하게 코디해 볼 수도 있을 텐데. 그놈의 센스가 내게 없다는 게 문제. 무라카미 하루키의 『무라카미 T 』를 읽으며 반팔 티만을 입고 다녔던 작년 여름이 그리워지기 시작했다. 그때는 몰랐겠지. 지겹다고 생각하던 그 시간을 그리워하고 있을 줄은. 어쩌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티셔츠를 모으기 시작했을까.


어쩌다는 어쩌다. 그냥 마음에 들어 하나둘씩 모으다 보니 책으로 쓸 만큼 양이 상당했던 거지. 역시 소설가답게 티셔츠에 담긴 사연도 알차게 썼다. 대부분 어디에서 샀고 왜 샀는지 나름 티셔츠의 역사를 한낮 공원 벤치에 앉아 무심하게 들려주듯 나른한 감성으로. 소설가는 다르다. 그러니까 무라카미 하루키니까 다르다는 거다. 자신이 모은 티셔츠 컬렉션으로 글을 쓰고 책을 낸다. 책에 나오는 어떤 티셔츠는 당장 입어 보고 싶을 정도다. 보관 상태가 좋고 색감이 예쁘다.


정작 본인은 이건 이래서 못 입는다는 썰을 풀어 놓고 있지만. 프린트된 그림이 귀여워서. 자신이 이름이 있어서. 대학 로고라서. 그런데 사람들이 남의 티셔츠를 유심히 보긴 하나. 의외로 남의 시선을 신경 쓰는 무라카미 하루키다. 상대가 좀 특이한 티를 입었다면 와 귀엽네, 예쁘다 정도의 감상으로 끝나지 않나. 그런 티를 입은 사람이 이상하다고 생각은 들지 않을 텐데 말이다. 아무튼 『무라카미 T 』에는 수집에 일가견이 있는 무라카미 씨의 남다른 티셔츠 사랑이 감각적인 티셔츠 사진과 함께 들어 있다.


남이 입고 먹는 건 좋아 보이는 게 인지상정. 책에 실린 티셔츠가 매장에 있다면 당장 살 것 같지는 않고 그냥 입으라고 준다면 입고 다닐 정도. 왜 이런 마음이냐면 아니다. 아직은 그런 마음을 글로 쓸 정도는 아니다. 어제 시험 보고 진이 빠져서 내내 누워 있었다. 정신 차리고 책상 정리하고. 그렇답니다. 공부보다 책상 정리를 좋아하는. 공부왕 찐천재 채널의 홍진경 씨가 개척한 공부 준비라는 장르를 오래전부터 제가 하고 있었답니다. 그동안 풀었던 시험지 정리하고 다른 공부 할 거라고 마음먹고 책 새로 꽂아두고. 반팔 티를 입고 가도 힐난을 받을 일 없는 곳에서 일하고 싶다고. 세계적인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도 일상복으로 티셔츠를 즐겨 입는다고. 뭐라구요. 그건 무라카미 하루키니까 가능하다고요? 쳇. 뼈 때리시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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