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한 숨
조해진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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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해진의 소설집 『환한 숨』에서 내가 취할 수 있었던 정서는 사랑을 향한 머뭇거림이었다. 아홉 편의 이야기가 전부 사랑을 말하지 않았음에도 나는 애써 사랑의 감정을 찾고자 했다. 어떤 이야기는 마음이 시렸고 어떤 이야기는 마음이 아팠다. 조해진이 그려내는 인물에게 자주 감정이 이입되었는데 그건 그들이 너무나 보통의 평범한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특별하지 않은 건 아니었다. 보통과 특별의 경계를 조해진은 능숙하게 넘나들었다.


대부분의 인물이 혼자 살거나 가족이 있어도 따로 산다. 부모는 부재하고 형제는 소원한 상태로 말이다. 태어날 때부터 혼자인 것처럼 살아가는 그들은 생의 한순간 사랑이라고 부르는 풍경에 다가갔다가 스스로의 선택에 의해 멀어진다. 섬과 섬이 만나 육지가 될 수도 있었을 텐데. 그들은 단단한 마음이 되어 서로를 밀어낸다. 어쩌다 사랑할 수도 있었지만 그다지 특별한 이유도 없이 멀어진다. 사랑하며 사는 것보다 사랑을 모르는 상태로 살아가는 게 익숙한 사람들, 『환한 숨』에는 그런 이들만 등장한다.


무리 없이 비유를 쓸 줄 아는 조해진의 문장은 『환한 숨』에서 절정을 이룬다. 사회적인 문제도 주저 없이 소설로 끌어온다. 요양보호사, 기간제 교사, 도서관 사서, 시인, 학원 강사, 경력단절 여성 등 『환한 숨』의 다양한 직업을 가진 인물을 배치함으로써 소설의 주제를 풍성하게 만든다. 직업과 나이 차이를 뛰어넘어 그들이 사랑을 느끼고 연애를 시작했으면 했지만 단순히 그것만으로는 사랑에 빠지는 건 아니라는 듯 그들은 사랑을 선택하지 않는다.


대신 편지와 시를 쓴다. 생의 최초의 감각을 기억하며 소설을 쓴다. 모두 쓴다는 행위로 귀결되는 삶이다. 쓰지 않으면 살 수 없다고 말한다. 글을 쓰겠다는 마음은 어디서부터 시작되었나를 묻는 여정으로 『환한 숨』은 쓰였다. 살아가기는 쉽지만 버티기는 어려운 시대. 사랑하며 살기 보다 미움 없이 사는 걸 선택한 인물들의 오늘을 읽으면서 내내 서글픈 마음이었다. 찬바람이 불어오는 밖에서 노크조차 하지 못하며 서 있는 나의 과거들.


포기하기가 어려워 구질구질하게 과거를 붙들고 살고 있다. 후회를 반복하고 잘못은 모른 체하는 나의 오늘. 환한 미래 따위는 없어도 좋으니 '환한 숨' 정도는 마음껏 쉬고 싶다. 밤중에 치킨 시켜 먹고 커피 한 잔 정도는 생각 없이 사 마시려고 돈 벌러 나간 건데. 죽음이 너무나 많다. 『환한 숨』에는 빈번한 죽음이 가족의 부재가 포기해버린 사랑이 많다. 최선을 다해 살지 않아도 된다고 누군가 일찍 말해주었으면 괜찮았을까. 『환한 숨』은 질문한다.


최선을 다할수록 최선으로 밀려나는 삶에서 사랑은 구원이 될 수 없었음을 『환한 숨』은 보여준다. 단지 사랑의 기억만을 가지고 남은 내일을 살아가라고 말한다. 사랑으로 나아가지 못한 순간을 복기하며 평생을 살아갈 허구의 인물들에게서 절망이 전이된다. 모두에게 안녕하냐고 쉽게 묻지 못하는 오늘날의 처연한 풍경이 소설에 담겨 있다. 슬프고 먹먹하다. 함부로 슬프다고 말하지도 못할 슬픔이 『환한 숨』에 가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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