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까지 가자
장류진 지음 / 창비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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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일어나자마자 치킨집에 전화를 걸었다. 보통 배달 앱으로 주문하는데 생각해 보니 치킨집이 가까운 곳에 있었다. 배달비도 좀 아까운 마음에. 전화를 걸어 주문을 해놓고 가져가기로 했다. 메뉴를 집중해서 보면서(문제를 이렇게 집중해서 보란 말이다. 그랬으면 벌써 합격하고 남았겠다.) 배달비 아끼니까 사이드 메뉴 시켜도 되겠지, 나는 합리적인 사람이니까, 또박또박한 목소리로 뿌링클 한 마리랑 치즈볼 오천 원짜리로 포장해 주세요 말했다.


진짜 집이랑 가까운 곳에 치킨집이 있었다. 아직 오후인데도 매장에는 술 손님들이 있었다. 맞다. 지금은 코로나 시국이지. 늦게까지 술을 마실 수 없으니 오후에 모이는 거구나. 나보다 부지런한 사람들이 있네. 천국의 향기가 이런 걸까 하는 냄새를 풍기는 치킨을 소중히 받아들고 마트에도 갔다. 아무래도 콜라 한 캔으로는 탄산이 부족하니까. 탄산음료를 세 개 사고 바로 옆에 있는 커피집에 가서 커피도 샀다. 어른의 삶이란 이런 걸까. 하는 기분에 취해 집으로 올라와 치킨을 뜯었다.


망설이는 마음 없이 물건을 살 때만 느끼는 어른의 기분. 자본주의 사회를 살아가는 소시민의 비애 같아서 서글프지만 그래도 좋고 행복하다. 오라는 데는 없어도 갈 데는 많지만 굳이 가지 않는 게으름뱅이의 하루는 이렇게 먹고 자고 읽으며 지나간다. 장류진의 장편 소설 『달까지 가자』를 읽으며 지금의 나의 삶도 나쁘지 않구나 용기를 얻는다. 나는 시대에 뒤떨어지는 사람이라 문화·트렌드에 약한 편이다. 유행하는 게 있어도 모르고 유행이 지나도 모르며 살아간다.


남들이 좋다고 재미있다고 여기는 걸 뒤늦게 알고 뒤늦게 즐긴다. 드라마, 영화, 투자에 대한 것이라면 더더욱 그런 편이다. 단 한 가지, 책은 제외한다. 신간이 나오면 바로 사서 읽는 걸 좋아한다. 예전에는 책 사면 주는 굿즈에 미쳐서 책을 사 나르는 바람에 책장이 포화 상태가 되기도 했다. 아무튼, 책을 읽으며 요즘 유행에 대해 실감한다. 『달까지 가자』는 마론 제과에 다니는 여성 3인방이 등장한다. 공채가 아닌 루트로 들어온 '비공채 출신 3인방'의 가상화폐 투자기를 그리고 있다.


나이, 출신, 학력도 다른 그들이 그 어렵다는 회사 내에서 친구가 될 수 있었던 건 서로가 서로를 보자마자 같은 부류의 사람들이라는 걸 직감했기 때문이다. 아무리 거슬러 올라가도 교사, 공무원 출신이 집안에 없고 재산을 상속받아 임대 수익을 올리며 살아가리라는 기대가 없는 사람들. 다해, 은상, 지송은 단채 채팅방을 만들고 일주일에 두어 번은 점심시간에 콩나물국밥을 먹고 커피를 마시며 하루하루 성실한 듯 살아간다. 어느 날 은상 언니의 표정이 이상하게 달뜨고 미친 걸까 싶게 기뻐 보였다.


이 언니가 세상에 '케이크를 인당 하나씩' 시키라는 거 아닌가. 처음엔 남자가 생겼나 했는데 은상 언니는 진지하게 가상 화폐 이야기를 한다. 블록체인 어쩌고 암호화폐 어쩌고 하면서 외계어 같은 말을 하면서 자신이 지금 '이더리움'을 발목에 사서 투자 중이라고. 이더리움 한 개 가격이 13,950인데 이게 100만 원, 200만 원까지 오를 수 있다고. 다해, 지송은 은상 언니의 말을 믿지 못한다. 가상화폐 그거 잘못해서 패가망신 한 사람의 이야기를 건너 건너 들어 알고 있는데.


다해는 고민한다. 돈에 관해 밝은 은상 언니 아니던가. 회사에서 '강은상회'라는 잡화점을 열어 소소한 이윤을 올리던 은상 언니. 번 돈으로 아이패드 사고 학자금 대출 갚는 모습을 보니 다해는 적금을 부어 이더리움에 투자한다. 끝까지 버티던 지송 역시 코인 열차에 탑승한다. 『달까지 가자』는 대한민국의 현실, 세태를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 흙수저 3인방이 펼치는 가상화폐 투자기를 오늘날의 젊은 세대들이 가지고 있는 고민과 슬픔을 약간의 유머와 한숨을 버무려 포착해낸다.


끝까지 회사에 다닐 수 있을까라는 고민이 얼마나 사치인 시대인지. 그런 고민은 회사에 들어가야 할 수 있는 고민인 것을. 회사에 들어가지도 못한 채 매일매일을 자존감 깎아 먹으며 버티는 청년들-나 포함해서-은 무엇에 기대야 할까. 『달까지 가자』의 3인방은 코인에 기대를 건다. 남들이 카카오 주식, 가상 화폐 이야기할 때는 나는 카카오 프렌즈 최고의 인기쟁이 캐릭터 라이언 굿즈 사 모으기 바빴고 채굴이란 게 진짜 어디 가서 캐야 하는 건가 의문했다.


다해가 끝까지 회사에 남기로 한 결말이 마음에 든다. 우스갯소리로 로또 1등 되면 어떻게 할까 진지하게 이야기할 때도 나는 과거에 다니던 곳에 계속 다닌다고 했었다. 1등 수령금은 적금 통장에 넣어둔 채 이자 받아 가며 '먹고 싶은 케이크가 두 개일 때는 다 시켜서 먹는 삶' 정도로 만족하면서. 아직까지 로또 한 장 사 본 적 없는 주제에 그런 이야기를 잘도 했다. '돈은 좋아하는 사람에게 간다는 속성'을 은상은 깨닫는다. 과연 그럴까.


『달까지 가자』를 읽고 투자 쉽네. 나도 한 번 벌어볼까. 하는 마음이 들 수도 있겠다. 소설은 소설일 뿐. 오해하지 말자. 투자 성공기를 그리는 소설이 아니다. 마론 제과 비공채 3인방이 코인 열차에 탈 수 밖에 없는 현실을 비꼬고 나름 투자 수익을 올렸지만 회사의 거대 비밀인 제빙기가 8층에만 있다는 사실을 알아낸 것으로 기뻐 회사를 계속 다닐 수 있겠다고 다짐하는 인물의 현실성을 악착같이 그려낸 소설이다.


당신은 그 정도로 만족해라는 말을 들으면 심술을 부리는 은상. 0.5도 아니고 0.2 정도의 방 크기가 넓어진 것에 만족하는 다해. 내가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는 것에 무한 행복을 느끼는 지송. 이런 그들에게 좌절이 아닌 기쁨을 주는 소설가가 고마울 지경의 소설 『달까지 가자』. 나 소설 읽으면서 쫄렸다. 그들이 빚까지 내서 투자한 이더리움이 떡락할까봐. 이런 투자는 해롭습니다, 여러분. 열심히 일해서 돈 버세요,라는 수기 체험기 마지막 단락 같은 교훈 주면 책 던져버리려고 했다.(말만 그래요, 도서관 책을 어떻게 던지겠습니까. 비유입니다.)


빚 안 지고 수익 내서 퇴사하고 사업하고 집 옮기는 결말이라서 그래도 회사는 다닌다는 현실적인 결말이라서 『달까지 가자』는 꼭 읽어봤으면 하는 소설이 됐다. 치킨 시킬 때 사이드 메뉴 추가할 수 있고 300원 비싼 커피 시키고 세일할 때 사는 거지만 작고 소중한 사이즈의 케이크를 세 개씩이나 살 수 있어서 통장 잔고는 빠르게 줄어들고 있지만 누군가들의 성공기를 읽는 시간이 있어서 나의 소소한 실패가 두렵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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