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이 찌면 세상이 끝나는 줄 알았다
김안젤라 지음 / 창비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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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일어나면 몸무게부터 잰다. 경건한 마음으로 체중계에 올라간다. 오늘은 몇 킬로그램일까. 얼마나 불어 있을까. 어젯밤 컴퓨터 앞에 앉아서 두유 넣은 커피랑 대왕 초코칩 쿠키 먹은 나를 떠올리며. 아니나 다를까. 지난주 같은 날에 비해 몸무게가 400그램이 불어 있다. 안다. 몸무게 강박인 거. 3년째 달력에 몸무게를 기록하고 있다. 어제 보다 찌면 우울. 빠져 있으면 안심. 이런 나날이 3년 동안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음식을 먹기 전 이걸 다 먹으면 살이 찔 것 같다는 걱정스러운 소리부터 낸다. 다행히도 같이 먹어주는 사람은 그런 나에게 잔소리나 힐난을 하지 않는다. 오히려 괜찮다고 다정하게 말해준다. 많이 먹으라며. 그래도 조금씩 천천히 먹기로 한다. 한때 나는 몸무게를 생각하지 않고 지냈다. 꾸미기에 열이 오른다는 이십 대 시절에는 통통한 체형으로 살아갔다. 먹고 싶은 거 다 먹으면서. 많이도 먹어댔다. 나는 식탐이 많다. 나는 내가 뭐든 잘 먹는 사람인 줄 알았다.


먹다 보니 알겠더라. 뭐든 잘 먹는 사람인 게 아니라 먹는 행위에 열을 올리고 있음을. 천천히 소화를 해가면서 먹어야 하는데 일단 먹고 보자는 식이었다. 그래서 소화제는 필수. 그렇게 잘 먹는 척을 하다가 인생 최고의 몸무게를 찍었다. 이러면 안 된다는 깨달음이 찾아왔다. 채식을 하고 현미밥을 먹고 한창 유행하는 1일 1식에 도전했다. 몸무게는 빠졌다. 앞자리가 두 번 바뀌고 일 년을 유지했다. 다이어트를 해본 사람들은 안다. 살을 빼는 것보다 유지하는 게 힘든 일임을.


다시 통통이로 돌아갔고 그동안 먹지 못한 음식을 먹었다. 하루 종일 먹는 것만 생각했다. 의지가 강한 사람이 아니란 걸 알기에 다시 다이어트를 하고 싶지 않았다. 사는 게 마음처럼 되는가. 극단적인 절식보다는 먹고 싶은 걸 먹되 조금씩 먹는 방식으로 몸무게를 조절하고 있다. 다이어트를 해서 날씬해지면 예뻐질 줄 알았는데. 그냥 나였다. 그냥 내가 됐다.


『살이 찌면 세상이 끝나는 줄 알았다』는 날씬한 몸매를 위해 무리한 다이어트를 하다가 폭식증을 앓게 된 김안젤라의 생생한 이야기가 담겨 있다. 어렸을 때는 날씬이었단다. 많은 음식을 먹어도 살이 찌지 않았다. 중학교에 올라가 호르몬의 변화가 생기면서 살이 급격하게 쪘다는 저자는 그 후 다이어트를 결심한다. 그 결심에는 끊임없이 다른 이와 비교하는 자신이 한몫했다. 안부 인사처럼 하는(그게 안부 인사가 되는가는 여전히 의문이 든다.) 살쪘네, 쌍수만 하면 이쁠 거야, 같은 되지도 않는 외모 평가를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할까.


아무 생각 없이 한 어떤 말에 누군가는 평생의 상처가 된다. 일하러 직장에 갔는데 쌍수를 해라, 왜 그런 옷을 입냐, 이런 말을 들으면 한동안 멍해진다. 김안젤라의 다이어트는 대학교에 들어가면서 심해진다. 초절식으로 음식의 양을 줄이자 몸무게는 빠졌지만 음식에 대한 집착이 심해진다. 집착은 폭식증으로 변했고 한 번 음식을 먹기 시작하면 절제가 안된다. 먹고 살이 찐다는 공포 때문에 토하는 이른바 폭토를 한다. 토하고 나서는 자기혐오라는 감정이 찾아왔다.


내가 왜 이럴까. 더 이상 이렇게 살면 안 된다는 마음에 스스로 섭식장애를 다루는 병원에 찾아간다. 이는 드문 일이라고 한다. 폭식증을 앓고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주변의 권유에 의해 간다. 스스로 병원에 간다는 건 치료 의지가 강한 것이라고. 병원에 가서 상담을 하면서 저자는 과거의 자신과 마주한다. '내면의 어린아이'가 겪은 고통의 기억을 찾아내 마주하는 것이다.


결코 말하기 힘들었던 경험을 진솔하게 이야기한다. 가족과의 관계부터 꺼내기 어려웠을 유학에서의 경험까지. 폭식증을 다룬 영화와 드라마를 소개해 주기도 한다. 무조건 마른 게 예쁘다는 인식에서 찾아온 폭식증이 어떻게 삶을 망치는지까지. 『살이 찌면 세상이 끝나는 줄 알았다』는 우여곡절 끝에 폭식증을 이겨냈다는 희망기가 아니다. 폭식증을 앓고 있는 자신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천천히 자신이 세운 미의 기준을 바꿔나가야 한다고 말하는 책이다.


통통해도 나. 날씬해도 나. 나는 어디 가지 않고 여기 있다. 단지 타인의 잣대로 내가 나를 바라보며 힘들게 한다. 사람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는 말에 동의한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하고 남을 의식하지 말고 본인의 삶에 충실하게 살아가세요,라고 말하는 책을 읽었다고 해서 당장 오늘부터 나를 사랑하기는 쉽지 않다. 대신 나와 같은 처지에 있던 이가 들려주는 솔직한 이야기에서 나만이 고통스러웠던 게 아니었음을 발견한다.


요즘은 나로 살아간다는 게 가장 어려운 일처럼 느껴진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하고 싶고 내가 어떤 사람인지도 모른 채 강요된 이런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압박 속에서 나는 점점 네가 되어 간다. 누구처럼 되고 싶다가 아닌 나처럼 살아가고 싶다는 사고가 내면에 정착될 때까지 살아가기로 한다. 일단 살아보라고 『살이 찌면 세상이 끝나는 줄 알았다』는 외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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