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곁에 두는 마음 - 오늘 하루 빈틈을 채우는 시인의 세심한 기록
박성우 지음, 임진아 그림 / 미디어창비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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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책 읽기가 고팠나 보다. 도서관에서 빌려온 책들을 한 권씩 읽는데 엣헴 엣헴 신이 나. 연휴 동안 부지런히 하루에 한 권은 읽을 계획이다. 어디까지 계획이다. 잘 안될 수도 있다. 읽을 책을 쌓아 놓고 있으면 말도 못 하게 행복하다. 앞으로 읽어줄게. 책등을 쓰다듬고 표지 뒤에 실린 글과 서문을 읽으며 괜히 울컥한다. 요즘 쓰는 글에 어떤 단어가 많이 있나 곰곰이 생각해 보니 '마음'이라는 단어였다.


내 마음이 그래. 네 마음은 어떠니. 나는 이런 마음에서 그런 거야. 그 마음을 설명할 길이란 없어. 도무지 모르겠는 마음들의 상태. 그래서일까. 도서관 신간 코너에 꽂힌 박성우 시인의 『마음 곁에 두는 마음』을 단박에 골라낸 것은. 무려 마음이 두 번이나 들어 있는 제목의 책을 읽지 않을 수 없었다. 중간을 펼쳐서 봤는데 귀여운 그림체와 단정한 어투의 글이 마음을 설레게 만들었다.


앉아서도 읽고 누워서도 읽고. 대부분 누워서 읽었다는. 『마음 곁에 두는 마음』에는 사람 사는 이야기가 담뿍 담겨 있다. 시인이 보는 풍경 안에는 자연과 사람이 공존해 있다. 오후 세시의 고양이. 시인의 집에 찾아오는 고양이는 오후 세시에 정확하게 찾아와 먹을 걸 내놓으라고 운다. 시인은 모른척할 수 없어 간식과 사료를 챙겨 준다. 그 고양이가 한동안 오지 않다가 다시 찾아와 먹을 걸 먹고 눈가를 촉촉이 적시며 운다.


녹색어머니회에 나가는 시인의 아침 풍경. 딸애가 '여기가 아빠 자리야. 창피하게 하지 말고 잘해'라고 격려 아닌 격려 같은 말을 한다. 글을 쓰다 막히면 마당에 나가 별을 보고 물까치떼가 점령한 그곳에 서서 생각에 잠긴다. 마음 따뜻한 친구들은 에어컨을 달아주러 찾아오고 어머니 집 공사도 하루 만에 뚝딱 해치운다. 봉제 공장에 다니며 시를 쓰던 시절에 만난 봉팔이 성의 사연까지.


『마음 곁에 두는 마음』은 읽으면 읽을수록 짠하고 그리운 시절을 떠올리게 만든다. 그 안에는 내 마음과 네 마음을 함께 나누던 사람들의 온기가 묻어 있다. 아파트 경비 대장 어르신이 퇴직할 때 시인은 영양제를 사서 내민다. 어르신은 다시 찾아와 쿠키 한 상자를 내민다. 한 편 한 편에 담긴 일상의 모습이 애틋하다. 딸 친구들이 놀러 오면 자리를 피해 주는 시인 아버지. 서로 먹을 걸 챙겨주느라 바쁜 동네 어르신들.


하루는 길고도 짧다. 한 것도 없는데 어느새 시간은 밤 열시가 훌쩍 넘었다. 공부 조금 하고 책 조금 읽고 밥 한 번 챙겨 먹고. 아, 중간에 청소도 했지. 낮잠도 잤고. 의미 없는 하루를 보냈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오늘 하루 책 한 권을 읽어냈다. 대인기피증까지는 아니지만 사람 만나는 걸 꺼려 하는 나로서는 책 속에 펼쳐진 사람 냄새 물씬 나는 이야기를 읽으며 사람의 허기를 달랜다. 그게 그렇게 좋을 수가 없다.


누군갈 만난다면 이렇게 해봐야지. 잘 듣고 잘 웃어주는 일. 그렇습니다. 인간관계를 책으로 배우고 있습니다. 내 마음을 말로 표현할 수 없어 침묵했고 마음과는 다른 말로 상처를 주기도 했다. 방어적으로 사람을 대하다 보니 의심이 많고 친절에도 응답하지 않게 되었다. 『마음 곁에 두는 마음』은 모든 이름을 불러주는 시인의 배려가 과거의 인연들을 기억에만 놓아두지 않으려는 시인의 안간힘이 예쁜 마음으로 다가오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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