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보다 : 겨울 2020 소설 보다
이미상 외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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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2021년의 1월이었다. 다행이라고 쓴다. 크게 상처 될만한 일도 크게 기뻐할 만한 일도 없었기에. 아침 6시와 7시 사이에 일어나려고 애를 쓴 게 다였다. 도서관에 한 번도 못 간 게 아쉽기는 하다. 1월 계획을 세울 때 책은 열 권을 읽자고 했는데 지키지 못했다. 오랜만에 공부를 하다 보니 책은 뒷전이었다. 달력을 보니 여덟 권을 읽었다. 2월은. 더 분발해보자.


『소설보다 겨울 2020』에 실린 세 편의 소설을 틈틈이 읽어나갔다. 정확한 시간을 재어보진 않았지만 단편 하나를 읽는데 한 시간은 걸리는 듯하다. 하루에 세 시간 투자를 못해서 일주일 내내 읽었다. '겨울, 이 계절의 소설'이라는 부제가 달린 세 편의 소설. 전하영의 「그녀는 조명등 아래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는 지난 기억들을 한꺼번에 불러 모았다. 생각만 해도 볼이 뜨거워지는 부끄러운 과거가. 나와 나를 둘러싼 치졸한 이야깃거리가 생각났다.


오랜만에 읽는 단편인데 걸리는 문장 없이 읽혀서 좋았다. 우리는 정상적인 삶으로 회복하기 어려운 기억을 껴안고 살아가고 있다고 담담히 말한다. 정상과 비정상을 가르는 기준이라는 게 존재하기는 할까. 소설 속 화자의 모습이 지금의 나와 비슷한 처지 같아서 더 연민이 갔다. 미래는 없고 과거만 있는 삶. 현재는 과거에 묻혀서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다들 그러지 않을까. 그렇지 않은 척 할 뿐.


임현의 「거의 하나였던 두 세계」는 얼마 전에 있었던 나의 바보 같은 행동을 환기시킨다. 시간 강사로 일하는 '나'는 극도로 조심스러운 성격을 가지고 있다. 대학에서 일하는 비정규직 강사로서 해야 할 말과 하지 말아야 할 말을 구분하기 위해 노력한다. 그 노력은 어이없게도 실패로 돌아간다. 의도대로 흘러가지 않는 게 삶의 돌발성임을 소설은 이야기한다. 어쩔 수 없다고 위로해보지만 이미 일어난 일 앞에서 자책감만 깊어간다.


나는 이 세계에서 완전무결하게 살아갈 수 있을까는 의문으로 「거의 하나였던 두 세계」는 나아간다. 그럴 수 없다는 답을 알면서도 혹시나 하는 마음을 숨기지 않는다. 하나라고 착각한 세계는 두 개의 세계로 나뉘어 우리를 혼란으로 몰고 간다. 미안하다고 말했으면 좋았을 일이었는데 그 순간에는 다른 세계에 살고 있는 내가 등장해 화를 내기도 한다.


제목이 특이한 이미상의 「여자가 지하철 할 때」는 분열된 자아마저도 사랑으로 감싸는 소설이다. 지하철을 타고 가는 동안 뻗어나가는 이야기는 지하철 곳곳을 통통 튀어 날아간다. 겨울이 지나고 봄이 온다. 믿기지 않지만 시간은 착실하게 흘러가고 있다. 사무실에 앉아 컴퓨터를 들여다보는 나를 꿈꾸기도 하지만 「여자가 지하철 할 때」의 문장인 '사무실은 언제나 아득히 멀다'를 되뇌어 보며 인과 관계없는 우연한 인생을 살고 있으니 저 알아서 흘러가겠지 약간의 체념으로 무기력을 이긴다.


더 조심해질 순 없었을까. 자책했던 2020년 12월의 어느 시간. 그런데 얼마나 더 조심하며 살아야 해. 화가 나고 우울하기도 했다. 찢긴 마음은 복원하기 어려워서 내버려 두었더니 단단한 부분만 남았다. 오늘은 도서관에 다녀왔다. 가방 가득 책을 빌리고 아이들로 가득한 버스에 탔다. 아는 얼굴도 있었던 듯. 책이 나를 기다고 있다. 나보다 부지런하고 재능 많은 이들이 쓴 책은 나의 세계에 실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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