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다시 태어나려고 기다리고 있어 - 이슬아 서평집
이슬아 지음 / 헤엄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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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시와 소설을 썼다. 낙서 수준까지는 아니고 뭐가 좀 돼보려고 시도 차원에서 썼다. 응모도 했다. 떨어지는 게 일. 처음엔 서운했다가 나중에는 그 감정마저도 사라졌다. 재능과 소질은 둘째치고 끈기와 노력도 없다는 게 함정. 쓰다가 안되면 읽었다. 읽다 보니 알겠더라. 세상에 읽을거리는 많고 내가 아니어도 누군가는 쓰고 있다. 나보다 부지런하고 재능도 많은 작가들이. 언제 죽을지도 모르는데. 하고 싶은 거 하면서 살자는 마음으로 이제는 읽는 사람으로 살아가고 있다.


쓰지 않아도 사는데 읽지 않고는 못 살겠다. 그래서 읽는다. 박완서 소설가는 전쟁 중에 피란을 갔는데 책 한 권을 못 챙겨갔다. 읽을 것이 없어 도배지 대신 벽에 붙인 신문지를 읽었다더라. 스마트폰을 쓰기 전, 화장실에 갈 때는 꼭 책을 챙겨 갔다. 이렇게 쓰니 옛날 사람 같네. 책 읽기 말고도 즐거운 게 한가득이지만 결국 돌고 돌아와 책을 읽는다. 한동안 텔레비전 보기에 빠져 살았는데.


종이책과 전자책을 번갈아 가면서 읽는다. 올해부터는 종이책을 읽을 때는 밑줄을 치면서 읽으리라 계획을 세웠다. 이런 것도 계획이 될지 모르겠지만. 기가 막힌 문장, 내가 쓰고 싶었던 문장, 내가 쓰리라 예상한 문장에 밑줄을 그으면서 더 깊이 있는 사람으로 2021년을 보내고 싶다. 이슬아의 서평집 『너는 다시 태어나려고 기다리고 있어』를 뒤늦게 읽었다. 근래에 내가 쓰는 글이란 죄다 서평이다. 서평이라고 쓰니 대단한 거 같은데 서평을 빙자한 나의 넋두리를 늘어놓고 있다.


새로운 이야기를 지어 내야 한다는 부담감이 없다, 서평은. 능력치 최고인 이들이 쓴 글에 내 이야기를 밀어 넣는다. 논리적인 분석은 없고 왜 읽었는지 읽으면서 어떤 마음이었는지 읽고 나서 나의 내면이 어떻게 바뀌었는지를 쓴다. 책에 대한 정보를 얻고 싶은 이에게는 도움이 되지 않는 글을 쓴다. 감각도 없어서 책 사진을 예쁘게 찍지도 못하고 좋아하는 라이언을 옆에 두고 찍을 뿐이다. 폰카라서 화질도 구리다.


『너는 다시 태어나려고 기다리고 있어』를 읽으며 응원뽕 맞았다. 서평이라고 해서 거창하게 쓸 필요 없구나. 그저 친한 누군가에게 이 책 한 번 읽어봐, 나는 좋았는데 너는 어떨까 하는 기분으로 쓰면 되는구나, 깨달았다. 이슬아는 연인에게 쓰는 편지 형식으로 서평을 완성해 나간다. 서평을 써 본 사람은 안다. 책을 읽고 나서 좋다, 좋은데 이 좋음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가 고민스럽다. 그래 쓰기가 망설여진다.


이슬아는 가장 다정한 목소리로 책의 좋음과 괜찮음과 아름다움을 이야기해 준다. 얼마 전에 황성희의 시집 『가차 없는 나의 촉법 소녀』를 사서 읽었다. 리뷰 대회에 응모하려고. 시 리뷰는 학교 다닐 때 빼고는 써보지를 않아서 포기했다. 무슨 이야기를 써야 할지 모르기도 하거니와 시를 읽고 분석해야 한다는 부담감 때문이었다. 그러지 않아도 되는 거였는데. 『너는 다시 태어나려고 기다리고 있어』에는 시집 리뷰도 있다.


이슬아는 욕심부리지 않고 시집에 있는 시 한 편을 골라 엄마에게 연인에게 읽어보기를 권한다. 시가 가지고 있는 서글픔과 아련함을 말해준다. 그렇구나. 평론가 흉내를 내지 않아도 되는구나. 그저 한 편의 시를 누군가에게 권하고 그이가 읽으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를 예상하면 되는구나. 『너는 다시 태어나려고 기다리고 있어』를 먼저 읽고 『가차 없는 나의 촉법 소녀』를 읽었으면 뭐라도 썼을 텐데. 아쉽다.


영어와 수학식이 범벅된 책을 몇 날 며칠 들여다보다가 한글을 읽으니 그것도 마음이 말랑말랑해지는 책을 추천하는 글을 읽으니 그중에 읽은 책도 꽤 되어서 내가 아무것도 아닌 게 아니구나, 헛살지 않았구나를 느끼며 자존감이 한껏 높아졌다. 이슬아의 글은 그렇다. 없는 자존감도 생기게 해준다. 아니 없던 게 아니라 있었는데 꽁꽁 숨어 버려서 찾지 못한 자존감을 찾아준다.


나도 쓸 수 있다. 좋은 책은 그런 게 아닐까.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글쓰기의 욕망을 마구 불러내주는. 너도 쓸 수 있어, 인마. 말해주는 책. 이슬아는 글쓰기를 통해 자신의 부지런함을 읽는 사람에게 나눠준다. 매일매일 글을 쓰다니. 저 사람 미쳤는데 대단해. 책을 읽으면 매일이 주말인 것 같은 기분을 느낄 수 있다. 잠시 잊는 것이다. 내일의 출근과 자동이체 금액과 해야 할 일의 목록을. 읽고 나서 글을 쓴다면 매번 새로운 나를 만날 수 있다. 다시 태어날 수는 없는데 다시 태어나는 기분을 느낄 수 있다.


또 이렇게 되고 말았다. 『너는 다시 태어나려고 기다리고 있어』를 읽고 서평을 쓰려고 했는데 나의 다짐과 각오만을 늘어놓고 말았다. 기어이 읽는 사람에서 쓰는 사람으로 살아가고 싶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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