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파 고양이를 부탁해 걷는사람 에세이 7
김봄 지음 / 걷는사람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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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찍이 어른들은 말씀하셨지. 술자리에 가서 정치와 종교 이야기는 하지 말라고. 맨정신으로도 하기 힘든 주제. 하긴 맨정신으로 못 하니까 술의 힘을 빌려라도 이야기하는 건가. 정치에 정, 종교에 종자만 나오기 시작하면 젓가락이 날아가 벽에 꽂히고 찌개에 있는 김치가 상대방 면상으로 날아간다. 그야말로 술자리는 난장판이 되고 만다. 난장판만 되면 좋게. 나중에는 절교. 너와는 끝이야. 요즘 말로 손절.

사람 그렇게 안 봤는데 앞뒤가 꽉 막혀 있네. 이러면서. 남의 생각을 바꿔 자신의 편으로 만드는 건 부처님, 하느님, 알라신, 공자, 맹자가 와도 못한다. 그냥 자네가 믿는 걸 계속 믿게. 손을 털고 나가겠지.(나가는 김에 계산도 해주십쇼. 꾸벅.) 그냥 비슷한 생각을 가진 이들을 얼른 파악해서 친해지는 수밖에. 친해지면 남의 편을 욕하며 스트레스를 푼다. 예전에 일했던 직장에서는 다행히 정치적 성향이 비슷한 이들이 있어 뉴스, 라기보다는 의견에 가까운 소식에 신나게 이바구를 나눴다.

지금은 노니까. 책을 읽는다. 『좌파 고양이를 부탁해』라고 하니까. 대놓고 정치 이야기를 하겠다고 하는 거구나. 읽었다. 사실 이 책은 제목 때문에 나 같은 오해가 생겨 읽는 사람이 꽤 있으리라 생각이 든다. 『좌파 고양이를 부탁해』는 정치 이야기를 빙자한 가족 썰을 푸는 책이다. 재미와 감동은 덤이다. 재미 쪽의 지분이 더 많다. 나는 그렇게 읽었다. 에세이를 이런 형식으로도 쓸 수 있구나 깨달음을 주기도 했다.

글을 읽으며 한 편이 끝날 때마다 아쉽고 뭐야, 이렇게 끝나는 거야, 빨리 다음 이야기를 들려줘 하며 읽었다. 소설가 김봄은 김 작가로 지칭되고 어머니는 손 여사로 불린다. 처음은 프랑스에 갈 일이 생겨 손 여사에게 고양이를 부탁하려는 김 작가의 치밀한 계획으로 시작된다. 치밀한 계획이라고 해봐야 손 여사에게 저녁을 사 먹이는 일이다. 눈치 빠른 손 여사는 딸의 수를 알아챈다. 네가 부탁할게 있어서 이러는 거구나.

딸과 엄마의 이야기는 계속 이어진다. 자식을 다섯이나 낳은 손 여사. 그 자식이 자식을 낳아 돌봄을 부탁할 때 손 여사는 솔직하게 놉이라고 말한다. '손 여사는 자기감정에 충실한 사람이었다. 좋은 것은 분명하게 의사 표시를 했고, 싫은 것은 더욱더 확실하게 싫은 티를 냈다.' 김 작가가 바라보는 손 여사의 성격은 내가 갖추지 못한 화끈함이 있었다. 한 번뿐인 인생,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겠다는 결연한 의지가 있는 손 여사. 부럽다.




어째 손 여사와 이야기를 하다 보니 이상하다. 성 소수자들에 대한 관점이 분명하고 소위 가짜 뉴스를 진짜처럼 믿고 있었다. 급기야 딸인 김 작가에게 빨갱이, 좌파라며 큰일이라고 말한다. 고양이를 부탁해라고 했더니 '빨갱이 좌파 고양이는 안 봐줘." 통첩을 날린다. 여기서 물러날 김 작가가 아니다. 정치 성향이 다른 건 어쩔 수 없다 치더라도 자식 같은 고양이를 한 달 동안 방치할 수는 없지 않은가. 십만 원 더 얹어서 이십만 원을 부른다. 오케이 콜. 좌파든 빨갱이든 딸이 주는 돈은 황홀하니까.



보수 부모님을 둔 김 작가. 여기에서 말하는 보수는 우리가 아는 그 보수. 손 여사는 시도 때도 없이 우주의 기운을 찾던 그 사람을 뽑고 아버지는 토론회에서 남자답다는 이유로 강성 노조 운운하며 진주 의료원을 폐업 시킨 그이에게 표를 준다. 딸인 김 작가는? 제가 소개하려는 책의 제목을 다시 한번 보십시오. 『좌파 고양이를 부탁해』. 소설을 쓰겠다고 한예종에 들어갔는데 김 작가가 끔찍이 싫어하는 쥐를 닮은 작자가 대통령이 되면서 학교가 이상해졌다. 그때부터 김 작가는 정치적 각성을 한다.



살면서. 한 번은. 머리가 빡 돈다. 뇌에 이상이 생겨 관성에 젖어 바라보던 세계의 현상이 다르게 보인다. 지금까지 내가 헛살았구나. 나만 좋자고 호의호식까지는 아니지만 잘 먹고 잘 살았구나. 이 세계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일말의 관심도 주지 않으며 나이만 먹었네. 깨달음이 급행열차처럼 찾아온다. 정치라는 열차가 도착했어. 얼른 타라고. 안 타면 출발한다. 알았어. 나 탈게. 이러면서.



가족이 나와 다른 정치와 종교 성향을 가지면 어떻게 하나. 『좌파 고양이를 부탁해』는 그 지점을 날카롭게 파고든다. 날카로워서 베일 정도는 아니고 웃음이 나와 즐겁고 한편으로는 짠해서 콧물이 흘러내린다. 김 작가의 필력에 반해서 지금까지 민음사에서 나온 한 권의 유일무이한 소설집 『아오리를 먹는 오후』를 주문할 예정이다. 읽으면서 즐겁고 심장이 두근대는 책을 만나면 행복하다. 글과 문장을 어떻게 써야 할지 배우면서 읽었다, 『좌파 고양이를 부탁해』는. 구질구질하게 늘어놓지 말고 핵심만 간단하게.



그러면서도 할 말은 다 해야 한다. 이렇게 썼지만 어려운 일이다. 그걸 알면 내가 이러고 있지 않지. 가족주의를 넘어 가족이기주의가 쩐 한국 사회에서 가족을 어떻게 대할 것인가. 그것도 정치와 종교 성향이 다른 가족을. 김 작가는 좌파 고양이를 부탁하면서 생각해 보는 것이다. 그 생각은 한 권의 책이 되어 세상에 나왔다. 땅은 배신하지 않는다는 믿음을 가진 엄마와 딸에 대한 자부심으로 부끄러움이 없는 아빠. 그들이 좌파든 우파든 나에게 사랑을 가르쳐 주신 분들이라는 걸 잊지 않으면 된다. 올해 읽은 책 중에 쵝오!(그래봐야 1월 3일이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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