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건이 건네는 위로 - 오늘이 소중해지는 애착 사물 이야기
AM327 지음 / 미래의창 / 2020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전前직장에서 테스크탑 하나를 받아왔다. 검색, 문서 작업, 음악 듣기에 무리 없는 사양인데 버린다고 했다. 안에 있는 하드를 부셔서. 같이 일했던 분이 괜찮은 거니까 가져가서 쓰라고 했다. 나는 공짜는 좋아하니까. 뭐든 모아 놓으면 쓸 데가 있으니까. 특히 기계는 더욱. 원래는 거실에 책상을 두고 노트북으로 글을 썼다. 남는 책상 하나가 있어서 안방에 집어넣고 컴퓨터를 세팅했다. 그리하여 나의 방에 안락한 작업실 하나를 만들었다. 대단한 걸 작업하는 건 아니고. 리뷰 쓰고 음악 듣고 엑셀과 영타 연습한다.


공부는 뒷전. 책상 꾸미기에 혈안이 되어 있다. 유튜브로 오늘의 집 보고. 알고리즘에 힘입어 집과 책상 꾸미기 영상을 홀린 듯이 보고 있다. 그리하여 필요한 게 잔뜩 생겼다. 내가 지금 쓰고 있는 책상에는 서랍이 없다. 찾아보니 틈새 수납장이란 게 있다더라. 국민 수납장을 살까 하다가 조립해야 해서 패스. 나는야 똥 손. 바퀴가 달린 틈새 수납장에 간식, 필기류, 노트, 읽을 책을 올려놓을 생각을 하니 심장이 두근두근. 뭐야. 미니멀 한다더니. 원래 계획대로 되지 않은 게 인생이라 굽쇼.


AM327 작가의 『물건이 건네는 위로』는 지금 내 상황에 딱 맞는 찰떡 책이었다. 제목만 보고 오해하지 마시라. 욜로주의로 마구 물건을 사대라는 책이 절대 아니다. 평소 작가가 좋아하는 사물에 대한 이야기가 실려 있다. 추억과 관심이 잔뜩 묻은 물건부터 삶의 전환점에서 만난 물건까지. 아기자기하고 귀여운 일상을 꾸리고 싶은 사람이 읽으면 좋을 책이다. 안방에 책상을 들여놓고(예전에 한 번 들여놓았다가 장식용으로 전락해 퇴출 된 적이 있는 책상, 미안) 컴퓨터를 세팅해 놓으니, 집 밖을 나가지 않아도 바쁘고 풍요롭다.


연말연시라서. 일 년 동안 만나지 못한 사람에게 새벽에 자니?라는 문자라도 보내고 싶은 시간인데. 그러지 못하는 2020년의 겨울. 우울해하거나 답답해하지 마시고. 평소 자신이 좋아하는 관심 분야의 책을 읽으며 자기만의 공간을 새롭게 꾸며 보는 게 어떨까. 그러다 필요한 물건이 있으면. 쇼핑몰 앱을 열어서 장바구니에 쏘옥. 『물건이 건네는 위로』에서 나의 심장을 나대게 만들었던 물건은 두고 두구 두구 바로! '까만 양장 10년 다이어리!' 너무 중요하니 강조의 표시로 글씨 굵게!


10년 넘게 다이어리를 쓰고 있는 나. (의외로 꼼꼼한 편) 매해 11월이 되면 다이어리 검색에 열심이다. 최근 몇 년간은 라이언에 빠져서 무조건 귀염둥이 라이언이 얼굴에 크게 있는 걸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골라서 샀다. 올해까지는 라이언 다이어리. 내년은 (라이언, 미안. 널 배신한 게 아니야. 난 네가 최고야) 펭수 다이어리를 쓸 예정이다. 이걸 작년에 사 두었다. 작은 서점에서 10년 치의 오늘을 적을 수 있는 다이어리를 알았다면. 아니야. 그래도 살 거라면 살 수 있지.


어제오늘 계속 생각하다가 10년은 긴 시간일 것 같아(아닙니다. 이건 변명이고. 찾아봤더니 10년 다이어리 가격이 좀 있더라고요. 다이어리가 없으면 모를까. 펭수 다이어리가 제발 써 달라고 앙증맞게 웃고 있는데 이걸 또 1년 동안 묵혀 둘 수가 없어서) 서점 적립금을 털어서 3년 다이어리를 주문했다. 오늘 토요일인데 벌써 배송 중이라는 알림이 떴다. 오예. 그런데.


자꾸만 그 서점의 10년 다이어리가 눈에 밟히는 건 왜 때문일까. 『물건이 건네는 위로』에서 작가는 오랜 시간 직장 생활을 하다가 프리랜서의 삶으로 살아가고 있다고 밝힌다. 말이 프리랜서이지 오롯이 혼자서 생계를 책임지고 일을 해야 하는 압박감이 상당한 직업이다. 향수, 손수건, 화분, 손목시계, 안경, 문진, 장 스탠드, 책장 등. 한 사람의 일상을 밝혀 주고 위로해 주는 건 거창하고 대단한 게 아니다. 마음이 깃든 물건에 의미를 부여하는 시간에 쓰인 『물건이 건네는 위로』. 요즘 같은 불안한 시절에 읽으면 행복해지는 책이다.


내가 벌어 내가 쓰는 소소한 재미를 모두 누리시길. 그리고 위로 받으시길.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