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생애 가장 큰 축복 - 성석제 짧은 소설
성석제 지음 / 샘터사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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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들 잘 지내고 계시나요? 버스를 기다릴 때. 엘리베이터 안에서. 부모 손을 잡고 유치원 버스를 타러 가는 아이를 만날 때.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낯선 이에게 무작정 다가가 어떻게 지내고 계시나요? 걱정은 없으신가요? 오지랖을 부리고 싶은 요즘입니다. 예전에는 그저 무심히 지나쳤습니다. 서로를 보는 둥 마는 둥 했어요. 왜 이럴까요? 마스크에 가려 서로의 표정을 알 수 없게 된 지 일 년이 다 되어 가네요. 그래서 그런 걸까요?


웃어도 웃어 보이는 것 같지 않고. 당황하거나 화를 내는 것 같은데도 어쩐지 속내를 알 수 없어요. 눈빛만 봐도 알 수 있잖아. 노래도 있지만 전 누군가의 마음속을 그렇게 확실히 알아챌 수 없는 눈치 없는 1인이거든요. 운전면허 있으신지요. 남들 부지런을 떨며 살아갈 때 전 뭘 했는지 몰라요. 면허가 없으니 차는 당연히 없지요. 버스를 타고 컴퓨터 학원을 다니는 2020년 12월의 근황 보고드립니다. 옆자리에 누가 앉으면 좀 멈칫하게 되네요. 지금은요.


거리 두기라는 말이 내년에는 사라지면 좋겠어요. 흔들리는 버스에 앉아 오늘도 무사히, 아픈 사람이 나오지 않기를. 마음껏 카페에 가고 수다를 떨고 대형 서점 문구 코너에 가서 이것저것 만져 보고 들었다 놨다 하면서 결국 결제를 하는. 평범한 시간이 우리 모두에게 깜짝 선물처럼 주어지기를요. 그때까지 힘을 내시기를요. 여행을 가지 못해 답답하신가요. 친구들을 만나지 못해 서운하신가요. 여기 한 권의 책이 있습니다. 짧은 소설의 대가 성석제가 쓴 『내 생애 가장 큰 축복』이라는 책을 소개해 올립니다.


답답하고 알 수 없는 미움의 감정이 들 때 읽으면 딱인 책입니다. 총 40편의 이야기가 실려 있습니다. 오늘부터 한 편씩 읽어가다 보면 2021년을 맞이하실 거고 그러다 어느새 이야기에 취해 저 무서운 코로나19가 물러가 있을지 누가 알겠어요. 이야기는 힘이 세다. 이야기는 우리를 웃고 울게 하는 초강력 마법이 있습니다. 한 편당 페이지 두세 장 정도입니다. 차 한 잔을 끓여 놓고 읽는 겁니다. 그러다 보면 먹기 좋은 온도로 식은 차를 마시며 방금 읽어낸 이야기를 음미하는 것이지요.


인생, 별거 있나요. 인생사 새옹지마. 전화위복. 비온 뒤에 땅이 굳어지고. 비유야 어찌 됐든 큰 걱정 하지 말라는 위로를 건네는 『내 생애 가장 큰 축복』입니다. 즐거운 이야기가 한가득입니다. 명절 때 되면 슈퍼에서 파는 과자 종합 선물 세트 구성 같은 책입니다. 취향 따라 입맛 따라 마구 고르면 좋겠지만 상자 안에 무엇이 들어 있을까 궁금해하면서 사달라고 조르던 과자 종합 선물 세트. 리본을 풀어서 포장지를 벗겨 그 안에 든 과자를 구경하는 즐거움을 잊을 수가 없었습니다.


『내 생애 가장 큰 축복』을 읽다 보면 어린 시절 느꼈던 들뜬 행복감을 만끽하실 수 있습니다. 이야기 한 편마다 느낄 수 있는 다양한 감정이 들어 있습니다. 라떼는 말이야로 시작하는 이야기에서는 이제는 느낄 수 없는 아련함이. 자유롭게 여행을 떠났던(아, 옛날이여 ) 시간에 쓴 여행기에서는 재미와 감동과 모험이. 나이가 들면 입맛이 변한다고는 하지만 힘들었을 때 먹었던 영혼의 음식 이야기에서는 그리움이. 서로 다른 얼굴만큼이나 개성이 특별한 사람들과의 만남에서 맛보는 황당함이. 듬뿍 들어 있습니다.


어느 이야기를 읽어도 마음이 뭉클해지고 뭉클해지다 못해 노긋노긋해집니다. 이렇듯 단정적으로 말할 수 있는 건 성석제라는 네임드 때문입니다. 고등학교 때 읽은 성석제 소설은 우울과 번민, 분노, 짜증, 불안을 날려주었더랬습니다. 혹부리 영감의 혹처럼 이 사람은 어딘가에 이야깃주머니를 달고 있는 거 아닌가라는 착각이 들 정도로 재담의 황제였습니다. 결코 끝나지 않을 이야기를 들려주는 듯해 번쩍이다 못해 황홀해지는 순간을 맞기도 했습니다.


시간이 흘러 읽어도 여전히 성석제 소설은 즐겁고 신납니다. 그러다 한 가지 더 올라오는 감정이 있었습니다. 울컥함입니다.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에서는 온기가. 인간을 그리는 마음에서는 연민이. 저처럼 부정적이고 마음에 미움이 가득한 사람은 절대로 파악해낼 수 없는 삶에 대한 긍정이 『내 생애 가장 큰 축복』에 있습니다. 짧은 소설이니 부담이 없습니다. 뉴스도 봐야 하고 구직 사이트도 둘러보고 자격증 시험공부도 해야 하는 지금. 몸이 열 개라도 모자라는(건 맞지만 몸이 열 개라도 여전히 게으름을 부리고 있을 것 같긴 하네요) 데도 불한당의 자세로 소설을 읽으니 더 즐겁습니다.


『내 생애 가장 큰 축복』 안에 실린 「다음에, 나머지 반도」의 풍경처럼 전국의 장터를 돌아다니며 좌판을 펼쳐 놓고 사람 구경, 경치 구경을 하고 싶어질지 모릅니다. 좌판에는 생활 필수품인 책, 『내 생애 가장 큰 축복』을 늘어놓고요. 이 책 한 번 읽어봐. 우울, 답답함, 불안, 슬픔이 사라집니다. 골라. 골라. 일단 한 편만 읽어봐. 옆에는 빵과 막걸리, 수구떡이 있으면 더 좋겠지요. 도서정가제 법에 맞추어 10% 이상 할인은 안 되지만 책을 사는 사람에게는 보름달 빵 하나씩을 줘도 되고요.


책을 읽고 나니 더욱더 모르는 사람들의 안부가 묻고 싶습니다. 아는 사람들 안부는 안 물어보냐고요? 그이들은 굳이 내가 걱정하지 않아도 잘 지내거라는 믿음이 있어서 패스합니다. 부모 품에 안긴 어린아이가 마스크를 쓰고 있었어요. 부스스한 머리로 눈도 덜 뜬 아이가 유치원 버스를 타러 달리고 있었어요. 일상은 그리 쉽게 파괴되지 않습니다. 컴알못인데 엑셀을 배우러 다니기도 한답니다. 수식 암기를 못해 쩔쩔 매기도 하지만 일취월장할 거라는 옛 성현의 말씀을 응원 삼아 씩씩해지기로 했습니다.


다정한 사람들의 이야기 모음집, 『내 생애 가장 큰 축복』. 오늘 자빠지면 내일은 일어날 수 있으리라는 성석제표 희망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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