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애하는 나의 집에게 - 지나온 집들에 관한 기록
하재영 지음 / 라이프앤페이지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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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갓집


그 집은 길가에 있었다. 대문이 없는 집이었다. 주인은 골목 안 조그만 슈퍼를 했다. 빨래를 널려면 슈퍼 안으로 들어가야 했다. 그러니까 남의 집 마당에 내 빨래를 널어놔야 했다. 부끄러워져서 속옷은 꼭 짜서 방 이곳저곳에 걸어놨다. 비가 오면 내 몸에서 쉰내가 나는 건 착각이었을까. 부모는 헤어졌고 나는 방치되었다. 한 달 월세가 7만 원인 그 집에서 혼자 2년을 살았다. 엄마랑 살던 동생이 잠깐 같이 살기도 했지만 철저히 혼자였다. 아이들은 꼭 내 방 앞에서 공차기를 했다. 골목은 비좁았고 하필이면 내 방 앞이 넓었다. 참다가 어느 날은 나가서 그만 가라고 소리를 치곤했다. 그들보다 몇 살 많은 나라서 말은 듣지 않았다. 잰 뭐야. 시큰둥한 얼굴로 다시 벽으로 공을 찼다.


여름방학 내내 갈 데가 없었다. 문을 열어 놓고 목욕탕용 의자에 앉아 책을 읽었다. 유일하게 바람이 불어오는 곳이어서. 지나가는 사람들이 힐끔 거렸지만 아랑곳하지 않았다. 몇 시간 동안 앉아서 책을 읽어도 시간은 흘러가지 않았다. 이청준의 『당신들의 천국』을 읽었다. 처음엔 무슨 말인지 몰랐는데 나중에는 소록도 사람들의 비애가 내게까지 전해져서 마음이 뜨거웠다. 그 여름 날. 반장이랑 반장 엄마가 찾아왔다. 내가 혼자 지낸다는 이야기를 반장이 엄마한테 했다. 반장 엄마는 방 여기저기를 둘러보았다. 그러곤 기도를 해줬다. 눈을 감았지만 눈 안쪽이 간지러워 뜨고 싶었다.


반지하


길갓집에 살다가 반지하로 이사 왔다. 주인은 할머니였다. 혼자 사셨는데 가끔 나를 자신의 1층 집으로 불러 음식을 먹이곤 했다. 사양하지 않고 식구 같은 얼굴로 상 위에 음식을 전부 먹었다. 수제비를 자주 해주셨다. 그 집은 월세가 10만 원이었다. 고등학교 내내 그 집에서 살았다. 장마철이 최악이었다. 습기 때문에 미치는 줄 알았다. 문학소녀답게 책을 사서 모았는데 아침에 펼쳐 두고 간 책이 학교 갔다 오면 퉁퉁 불어 있었다. 거짓말 아니다. 물기 머금은 책장은 쉽게 다음 장을 넘길 수가 없었다.


많은 책을 읽었다. 도서관에서 빌리고 헌책방에서 사서. 가난한데 꿈은 많아 결코 좌절을 모르는 주인공이 나오는 이야기에 심취했다. 나를 대입해 놓고는 무수한 상상을 부풀렸다. 지금 나는 아무것도 아니지만 언젠가는 멋지고 훌륭한 사람이 될 거야. 상상과 추상이 섞여 몽상이 되었다. 대학을 목표로 아이들이 방학에도 학교에 나가 자습을 할 때 나는 하루 종일 어두운 방에서 책을 읽었다. 하성란의 『삿뽀로 여인숙』. 레마르크의 『개선문』. 박완서. 조세희. 조정래. 한 번은 국어 선생님이 최인훈의 『광장『을 읽으라고 했다. 읽었다. 도서실로 오라고 했다. 원고지를 주고 독후감을 쓰라고 했다. 은상을 받았다. 글쓰기로 받은 최초의 상. 문학이면 가능하지 않을까. 문학이 나를 구원해 줄 거야. 그런 마음을 갖게 만든 일이었다.


한옥집


하재영의 에세이 『친애하는 나의 집에게』를 읽어갈수록 나는 어느 한 시절과 세월을 다시 마주 봐야 했다. 잊었다는 감각도 없이 잊고 지내왔던 시절이었다. 가스가 떨어져 난방이 안 된 방에서 이불 몇 채를 뒤집어쓰고 톨스토이의 『부활』을 읽었던 길갓집. 문을 열어 놓으면 잠시 햇빛이 떨어지던 시간에 연습장을 펼쳐 놓고 소설을 썼던 반지하. 겨우 마련한 등록금으로 대학에 입학했다. 집을 구해야 해서 전봇대만 쳐다보고 다녔다. 다리가 아파 포기할 때쯤 '방 있음'이라는 글자가 적힌 종이를 발견했다.


할아버지, 할머니 두 분이 방을 안내했다. 거대한 한옥집이었는데 대문에서 입구까지 다닥다닥 방이 붙어 있었다. 그 방이라면 들어가지 않을 작정이었다. 다행히 보여준 방은 두 분이 기거하는 바로 옆이었다. 도둑이 들 일은 없겠구나. 한 달에 14만 원. 10년을 살았다. 그 집에서. 책을 제일 많이 읽고 많이 사 모았던 집이었다. 사면을 책장으로 채웠다. 청소는 한 달에 한 번 했다. 집을 가꾼다는 개념 자체가 없던 시절이었다. 문학이 나를 구원했을까. 『친애하는 나의 집에게』는 하재영 소설가의 집에 대한 기록을 담고 있다.


책의 띠지에 여성학자 정희진은 책의 소개를 이렇게 남겼다. '나는 오랜 시간 울었다. 이 책이 내가 살아왔던 집들을 모두 불러냈기에.' 나 역시 이 책을 읽으며 그리움과 비애 때문에 울컥했다. 정희진은 정확한 사람이구나. 또한 모두에게 공통의 정서를 불러일으키는 집에 대한 기록을 낱낱이 써낸 하재영은 정확하고 야무진 사람이구나를 실감한다. 자신이 살았던 최초의 집에 대한 기억을 시작으로 『친애하는 나의 집에게』는 꿈의 좌절을 겪었지만 끝내 나를 잃어버리지 않고 버텨낸 한 인간의 서사가 담담한 언어로 펼쳐진다.


총 열 편의 에세이가 실려 있는데 마지막 문장마다 서글프고 힘겨웠던 과거를 소환 한다. 소설을 쓰겠다고 밖으로 나가지 않고 텔레비전만 보던 시간. 집 밖에서는 살인 사건이 일어나고 학비를 벌기 위해 아프간으로 떠난 젊은이는 죽음을 맞이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무력감이 한 사람을 울게 한다. 가방 디자이너로 일하는 동생이 할부로 산 명품 가방을 메고 나간 언니는 백화점에서 가방을 잃어버리고야 만다. 자신의 싸구려 지갑은 쓰레기통에 버려졌고 에곤 실레의 그림으로 감추려 했던 초라한 현실을 목도한다.


시를 읽고 소설을 써도, 그림과 사진으로 싸구려 벽지를 감춰도, 나는 나의 현실을 잊은 적 없었다. 재개발의 희망조차 사라진 쇠락한 동네를 오르락 내리며, 창문 밖에서 오가는 거친 말소리를 들어야 하는 진짜 현실을. 나는 떠나기 전에 이 동네에 많은 것을 버리고 싶었다. 에곤 실레의 그림, 시가 적힌 종이, 쓰이지 않은 소설, 직업이 될 수 없는 직업 같은 것들을.

(하재영, 『친애하는 나의 집에게』中에서)


한옥집에 사는 10년 동안 나는 아무것도 한 게 없었다. 학과 사무실을 빈번하게 드나들며 구직 정보도 챙기지 않았으며 교직 이수조차 하지 않았다. 재학 원생이라면 할인을 받아 싸게 들을 수 있는 영어 강좌도 등록하지 않았다. 학교에 가면 도서관에 갔고 학교를 나오면 시립 도서관에 갔다. 도서관에 있는 책들이 달랐기에. 진은영이 시 '대학시절'의 한 구절처럼 '시시한 시들만 토해'내다가 졸업했다. 이력서에는 학교를 다닌 기록 외에는 적을 게 없었다. 단단한 마음도 없었기에 집에서 글만 쓰겠다는 각오도 없었다.


하재영은 집을 떠나올 때마다 무언갈 버린다. 텔레비전을 그림과 종이를 소설을. 그리고 '직업이 될 수 없는 직업 같은 것들을'. '집다운 집'에 살고 싶어서. 그렇게 살아가려면 소설을 버려야 했다. 꿈 하나를 포기하고 현실의 안온을 얻었다. 닥치는 대로 글을 쓰자 겨우 살만한 곳에서 살아간다. 그게 좋았다. 안 되는 걸 아는데도 끝까지 물고 늘어지는 게 아니라 현실을 냉정하게 바라보는 위치로 옮겨 갔다는 사실이. 남의 집이지만 사는 동안에는 '온전한 내 집'이라는 마음으로 집을 꾸미자 혼자서도 살아갈 수 있다는 각오가 생겼다.


햇살 맛집


『친애하는 나의 집에게』는 개인의 서사이기도 하지만 읽어가다 보면 알게 된다. 모든 집의 기록은 보편의 서사로서 개개인에게 작동한다는 것을. 오랫동안 마음속에 간직했을 그 꿈. '내 집 갖기'는 공간을 점유한다는 탐심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었음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곰팡이가 피어오르지 않고 책이 물에 젖지 않는 집. 낮인데도 불을 켜 놓는 대신 햇살이 들어와 사방을 밝혀 주는 집. 각자의 방이 아니라도 넓은 책상 하나를 들여놓고 그 앞에 앉아 무얼 적을까 고민하게 하는 집.


누군가가 자기만의 방을 가지고 싶다면, 그러나 그것이 어려운 환경이라면 집의 한구석에 자기만의 책상을 놓았으면 좋겠다. 그러면 책상이 차지하는 면적만큼 내밀한 공간을 소유할 수 있을 것이다.

(하재영, 『친애하는 나의 집에게』中에서)


다양한 집에 살아왔다. 『친애하는 나의 집에게』를 읽고 나서 이렇게 쓸 수 있겠다. 나는 다양한 시절을 거쳐왔다고. 기쁨과 즐거움보다는 서글픔과 분노가 나의 한 시절을 지배했지만 이제는 알 수 있다. 그 시간을 살지 않았더라면 나는 시시한 사람이 되어 피곤한 일들을 하며 현재를 보내고 있을 거라고. 품위 있는 사람으로 살 수는 없었다. 척박하고 삭막한 집에서의 시간이었다. 밤새 부부 싸움을 하며 텔레비전 선을 잘라가 자신의 집에 연결하는 사람이 있었고 문을 열어 놓고 음악을 크게 듣는 이웃이 있었다.


그때마다 나는 미래의 집을 희구했다. 커다란 창이 있고 거실에는 책상을 놓아둔다. 바람이 잘 통하고 햇빛이 들어와 곰팡이가 올라오지 않는다. 이리저리 옮겨 다닐 일 없이 원하면 평생 살아도 되는 집으로 나를 밀어 넣어 준다. 팬데믹 시절, 나는 직장을 잃고 이력서에 쓸 한 줄을 위해 하루 4시간 컴퓨터 수업을 받고 있다. 엑셀과 수식 함수, 차트 그리기, 셀 합치기, 처리 용량 속도, 에드삭, 에드박 같은 용어를 외우며 살아간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여전히 누군가의 기록을 읽으며 과거의 나를 미워하지 않기로 한 것이다. 그때의 나는 어리숙하고 아팠던 거구나 이런 마음으로 현재의 나에게 용기를 준다.


『친애하는 나의 집에게』는 좋은 책이다. 결코 용서할 수 없게만 느꼈던 과거의 나와 화해를 시켜주기 때문이다. 집에서의 기억을 꺼내보니 희미한 사랑이 있었다. 버림받았다고 울고 있을 때도 나는 혼자이지 않았음을 떠올린다. 반장이 주인집 할머니가 있었다. 그리고 곰인형을 사 왔던 엄마가 있었다. 하필이면 그때 아빠가 찾아와 얼른 가라고 화를 내었다. 곰인형을 주지도 못한 채 엄마는 어두운 골목으로 사라졌다. 단발 파마머리를 한 늙은 여인만 보면 마음이 내려앉는다. 그때 왜 우리는 같이 살지 못했나. 다시 만날 때까지 안녕. 『친애하는 나의 집에게』가 좋은 책일 수밖에 없는 이유는 말로 하면 신파가 되어 버리는 나의 서사를 길고도 자세하게 쓸 수 있게 만들어 주었기 때문이다. 이 책을 읽는 겨울밤은 서글프지 않았다. 내일의 햇살을 기대해야 하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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