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사랑 모드
랜스 울러버 지음, 모드 루이스 그림, 박상현 옮김, 밥 브룩스 사진 / 남해의봄날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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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화 시인의 산문집 『아주 작은 인간들이 말할 때』를 읽다가 모드 루이스에 대해 알게 되었다. 이런 순간들이 기쁘다. 책을 읽다가 내가 몰랐던 부분에 대해 알게 되었을 때. 그리하여 나를 다른 책의 세계로 이끌어 갈 때. 기꺼이 나는 그 손을 잡는다. 『내 사랑 모드』는 그렇게 해서 읽게 된 책이다. 너무 좋았다고 밖에는 말할 수 없는 책이다. 한 인간의 내면에 담긴 예술과 삶에 대한 열정을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모드 루이스는 캐나다의 민속 화가로 알려져 있다. 그가 그린 그림의 주제가 시골 마을의 풍경 즉 전원생활이기 때문이라고 하지만 단순하게 민속 화가라고 칭하고 싶지는 않다. 그림에 대해 알지 못해 깊은 이야기를 나눌 수 없지만 모드 루이스의 그림은 '민속'이라는 카테고리로 분류하기에는 많은 주제를 품고 있다. 꽤 괜찮은 환경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모드. 부모님이 갑자기 돌아가시고 하나밖에 없는 오빠와는 인연이 끊겼다.


이모 집에서 살던 모드는 '가정부 구함'이라는 구인 광고를 보고 길을 나선다. 44세의 독신남 에버릿과는 그렇게 해서 만났다. 모드는 요리와 청소를 에버릿은 집과 식료품을 제공하기로 했다. 후에 류머티즘으로 손이 굽은 모드는 집안일을 할 수 없었다. 에버릿은 모드가 그림을 구할 수 있게 재료를 제공해 주는 일을 자신의 몫으로 추가한다. 작은 오두막에서 모드와 에버릿은 살아간다. 『내 사랑 모드』는 모드의 그림을 아끼고 사랑하던 변호사 울러버 씨의 아들인 랜스가 쓴 책이다.


아버지로부터 들은 이야기와 그가 실제로 모드를 만나며 받았던 인상. 모드가 죽고 나서 그의 집에 소장되어 있던 그림을 통해 랜스는 모드의 생애를 자신의 것으로 끌어안는 작업을 한다. 에버릿은 돈을 지독히 아꼈다. 모드가 그린 크리스마스카드와 그림을 팔아 돈을 벌었음에도 거의 돈을 쓰지 않았다. 허름하고 낡은 수도와 전기 시설이 없는 오두막에서 평생을 살았다. 모드의 작업은 작은 창문 옆이었다. 변변한 작업 도구조차 갖추어지지 않은 곳. 밥을 담아 먹는 쟁반에서 모드는 한 손을 받쳐 가며 굽은 손으로 그림을 그렸다.


어떻게 저럴 수 있어. 돈이 좀 생겼으면 부인이 그림을 편하게 그릴 수 있게 그럴듯한 작업실과 도구를 마련해 주면 좀 좋아. 그런 마음이 들었지만 이내 거둬들였다. 에버릿은 자신이 할 수 있는 만큼 최선을 다한 것이리라. 지독한 가난 때문에 돈에 대한 강박이 있었고 베풀 줄 모르는 성격이 된 것이다. 모드는 그런 에버릿을 싫어하지 않았다. 모드가 에버릿을 떠나지 않고 그의 그림 속에 자주 등장시킨 것이 그 증거이리라. 모드와 에버릿은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최선으로 서로를 사랑했다.


현실은 혹독했을지 몰라도 모드의 작품 속 세계는 평화롭고 아름다웠다.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사랑스러운 풍경이 화폭에 펼쳐졌다. 주어지지 않은 것에 불만을 품지 않고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일 줄 아는 모드의 숭고한 삶의 태도를 통해 나는 감동과 위로를 받는다. 에버릿 이외에는 사람이 없었음에도 모드는 외로워하거나 불평하지 않았다. 화목했던 어린 시절을 잊지 않았다. 결코 아름답지 않았던 현실이어도 모드는 자신만의 사랑스러움으로 내면을 다독여 나갔다. 그림을 통해서 말이다.


일상을 예술로 만들어 나갈 수 있는 단단한 내면을 가진 모드에게 경의를 표한다. 그 곁에서 모드를 보살펴 주고 페인트를 얻어다 준 에버릿. 구두쇠 짓이 심하긴 했지만 그만의 방법으로 사랑을 실천했던 에버릿. 때로 사랑은 희생이라고 부르지 않아도 실현된다. 모드의 그림을 보는 순간 마음을 빼앗겼던 건 어린 시절 내가 갖지 못했던 평화롭고 귀여운 풍경이 담겨 있었기 때문이었다. 세상을 바라보는 긍정의 시선이 소거된 채 살아왔다.


책을 읽으며 누군가의 삶에 감탄의 마음을 가질 수 있다는 것으로도 나의 현재는 아름다움으로 채워진다. 가질 수 없었던 사랑과 긍정의 기운을 오늘에서야 마련한다. 겨울에도 꽃과 눈이 쌓이지 않은 산을 그리는 모드. 사라지고 없는 것을 상상할 줄 아는 사람으로 남고 싶다. 나의 공간을 작고 귀여운 것으로 채워가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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