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경찰관속으로 - 언니에게 부치는 편지
원도 지음 / 이후진프레스 / 2019년 9월
평점 :
이상한 책을 읽었다. 읽고 있으면 숨이 막히고 읽고 나면 숨이 쉬어지지 않는 책. 원도의 『경찰관속으로』이다. 다양한 직업의 세계가 궁금했다. 용기가 없어서 하지 못한 일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사정이란 어떤 것일까. 직접 마주할 일이 없으니 호기심을 충족하는 일에는 독서가 딱이었다. 청소부, 사서, 편집자, 경비 노동자인 그들이 쓴 책을 읽으며 불공평함과 서글픔을 마주해야 했다.
물론 직업의 긍지도 찾을 수 있었다. 어렵고 힘든 일이지만 자신만의 신념을 가지면서 살아가는 일상을 공유 받으며 힘을 내곤 했다. 『경찰관속으로』는 다르다. 책을 쓰는 시점에서 경찰관으로 부임한지 3년째인 원도 작가의 일상은 팍팍함 그 자체였다. 익명으로 글을 썼고 왜 그래야 했는지 알 수 있을 정도로 경찰관의 하루하루는 힘겨웠다. 매일 같이 폭력과 죽음의 순간을 눈으로 봐야 했다.
작가 후기에서도 밝히지만 『경찰관속으로』는 우울한 회색빛의 색채를 띤다. 경찰관으로서의 자부심과 긍지는 찾아볼 수 없다. 야간 근무 때 경찰차에서 나와 스트레칭을 했다는 이유로 세금 도둑이라는 소리를 듣는다. 가정 폭력 현장에 출동하며 마주한 어린아이들의 당혹스러운 눈빛을 그대로 받아내야 한다. 주취자가 내뱉은 욕설과 침. 파출소에 찾아와 커피를 달라고 하고 200장이 넘는 종이를 가져와 복사해 달라고도 하는 사람들.
『경찰관속으로』는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이다. 각각 산 사람, 죽은 사람, 남은 사람으로 구분된 사람들의 이야기는 핵진상들의 향연으로 펼쳐진다. 세상에나 아직도 저런 인간들이 있단 말이야 하고 놀랐다면 당신은 안온한 세상에서 살고 있거나 그런 척하는 연기를 하고 있을 뿐이다. 헤어진 연인을 감금하고 폭행하는 사람. 여자친구의 외도를 의심해 그가 키우던 강아지 두 마리를 죽여 껍질을 벗긴 사람. 남자 둘이 키스하고 있다고 신고하는 사람.
경찰관의 눈으로 지켜본 세상의 모습은 어둡고 서글펐다. 경찰을 꿈꾸는 많은 이들이 이 책을 읽고 나면 공부 의욕이 꺾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경찰관속으로』에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남는다. 원도와 함께 경찰관 시험을 준비했던 원매의 이야기는 절망 속에 희망이 그러니까 어둠 속에서 밝음을 볼 수 있다는 건 사람의 능력이라고 말해주는 것 같아 먹먹했다.
책을 읽는 조용한 행위로나마 내가 가진 세상을 향한 편견의 시선이 다정하고 부드러운 쪽으로 향했으면 한다. 경찰관으로서의 삶을 놓지 않으면서 왕복 열 시간이 넘는 길을 글쓰기를 향한 집념으로 달려갔던 한 사람은 원도가 될 수 있었다. 괴물 같은 사람들 사이에서 괴물이 되지 않기 위해 글을 썼다. 함부로 희망을 말하지 않는 책, 『경찰관속으로』. 세상은 따뜻하고 인정이 넘친다고 말하지 않는 책, 『경찰관속으로』. 소심하고 나약한 이들이 쓰러지지 않고 살아가기만을 간절히 바라는 한 사람의 부탁으로만 『경찰관속으로』는 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