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스틱맨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28
백민석 지음 / 현대문학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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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의 가을에서 겨울로 넘어가는 시기를 잊지 못한다. 그때만큼 뉴스를 많이 본 적도 없었다. 시간이 나면 뉴스를 보고 팟캐스트를 들었다. 그전에는 그러지 않았다. 연예 뉴스와 그 밑에 딸린 댓글을 보며 시간을 보냈다. 태블릿 PC가 나왔고 세상이 발칵 뒤집혔다. 대통령의 연설을 최순실은 빨간펜 선생님처럼 꼼꼼하게 첨삭해 주었다. 그렇게 해서 나온 말이 통일은 대박이었다. 믿기 힘들지만 믿어야 하는 일이 그해 가을과 겨울에 벌어졌다.


사람들이 촛불을 들고 광화문 광장으로 모였다. 나는 그 광경을 병실에서 봤다. 다인실에서 1인실로 옮기라는 간호사의 말. 준비를 하라는 뜻이었다. 하늘에서 본 촛불은 꺼질 줄을 몰랐다. 그러나 내 옆에는 한 생명의 불꽃이 꺼져가고 있었다. 2016년은 그런 해였다. 누군가를 떠나보냈고 누군가는 꼭 내려와야 했다. 내가 우리가 이겨야 하는 시간이었다. 사상자 한 명 없이 평화적으로 집회가 계속되었고 대통령은 그 자리에서 내려왔다. 백민석의 소설 『플라스틱맨』은 뜨거웠던 2016년의 겨울과 2017년의 봄을 그린다.


언론사로 수상한 우편물이 배달된다. USB가 들어있을 뿐이었다. 감정과 어조의 변화 없이 한 남자가 말하는 영상이 들어 있었다. 대통령이 물러나지 않으면 시민 한 사람씩을 죽이겠다는 협박이었다. 수사에 착수한 하경감은 그에게 플라스틱맨이라는 별명을 붙인다. 열전도율이 낮은 플라스틱은 사람을 죽이겠다는 말을 심상하게 말하는 남자에게 어울리는 말이었다. 마음이 아예 없는 사람은 플라스틱과 같은 성질을 지녔다.


처음에 플라스틱맨의 협박은 큰 반향을 일으키지 못했다. 여기저기서 협박이 난무하던 시절이었기 때문이었다. 사회의 불만을 난폭한 방식으로 표출하는 자의 소행 정도로 여겼다. 하루에 사람이 너무 많이 죽었다. 그 죽음의 배후를 캐는 일은 불가능했다. 하경감은 '의미도 가치도 없는 황당한 사건'이라는 뜻의 '셜록 홈스의 사건'식으로 수사를 이어간다. 『플라스틱맨』은 대통령의 탄핵소추안이 기각되었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를 가상한다. 소설에서 그 시간은 혼란과 무력함으로 그려진다.


대량으로 생산해 내는 플라스틱. 가공과 변형이 쉽고 가격마저도 싸다. 한 번 쓰고 버리는 일회용은 대부분 플라스틱이다. 환경을 파괴하고 바다거북의 목숨을 위협한다. 장점이 동시에 치명적인 단점이 된다. 대통령의 하야를 외치는 플라스틱맨은 정의를 구현하는 척하면서 사회에 혼란을 야기한다. 하경감은 혼란에 빠진다. 과연 플라스틱맨은 존재하는가. 테러와 살인은 그의 지시에 의해 이루어진 것인가. 『플라스틱맨』은 자기 의견이 없는 시대에 중구난방식으로 발화되는 사상의 무의미함을 플라스틱이라는 소재로 비유한다.


사실과 의견이 무리 없이 섞여서 가짜와 진짜를 구별할 수 없게 만드는 사회. 대량으로 찍어내는 플라스틱처럼 감정과 표정이 없는 말들이 펼치는 난장판에서 변화를 꾀할 수 있을지 『플라스틱맨』은 고민한다. 형사 소설의 구조를 이어가면서 무거운 주제를 탁월하게 끌어내는 백민석. 직접 촛불집회에 참가해 찍은 사진이 소설에 배치되어 있어 픽션과 논픽션의 경계를 허물어뜨린다. 소설임에도 소설처럼 보이고 싶어하지 않는 시도로서 읽힌다. 『플라스틱맨』은 가독성이 뛰어나서 금방 읽고 오랜 생각에 잠기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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