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디 혹은 애슐리
김성중 지음 / 창비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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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중의 소설집 『에디 혹은 애슐리』를 읽으며 깊은 위로를 받았다. 내가 지금 느끼는 감정과 생각을 소설의 많은 부분에서 말해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떤 언어로 표현해야 할까. 망설이며 방치하고 있었다. 순간순간의 감정을 설명할 길이 없어 자책을 하면서 지냈다. 살아가기는 만만치 않은 숙제여서 밀리거나 그마저도 안 하기 일쑤다. 『에디 혹은 애슐리』를 읽는 일주일은 천천히 그러다 빠르게 지나갔다.


소설의 결말로 나아갈수록 김성중은 이상한 행복을 선사한다. 잘난척하지 않는 문장을 쓰고 허세로 가득한 엄숙주의를 내세우지 않는다. 소설의 문장은 쉬어서 계속 읽어나갈 수 있는 힘이 있다. 책의 뒤표지에 쓰인 구병모의 표현대로 김성중은 다양한 서사를 쓸 줄 아는 진정한 이야기꾼이다. 과거, 현재, 미래의 시간을 자유자재로 넘나든다. 시간이 멈춘 미래의 일을 그리기도 하고 기묘한 청춘을 살았던 과거를 회상하기도 한다.


살아가다 문득 멈추어야 할 때. 정지 화면처럼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시간을 보내야 할 때. 우리는 어떤 자세를 취해야 할까. 「레이니」는 오 년마다 한 번씩 전 세계에서 모인 가족들의 시간을 추억하는 소설이다. 여러 대륙에서 날아와 각자의 삶의 장면을 풀어 놓는 그 시간을 추억하는 일로 현재를 살아간다. 「에디 혹은 애슐리」는 전복적인 상상력을 보여준다. 시간이 흐르지 않는 백 년이 펼쳐진 미래. 여자 혹은 남자로 수시로 성을 바꾸며 백 년의 시간을 보내는 에디 혹은 애슐리. 인간적인 게 무엇일지 질문한다.


「해마와 편도체」는 나이 차이를 뛰어넘는 우정을 보여준다. 절판된 도서를 직거래 하면서 알게 된 노인 편도체와의 만남. 세상을 한 권의 책으로 봤을 때 쉽게 넘어가지 않는 챕터가 있을 것이다. 고통이 찾아오기 때문에. 그럴 때 말이 통하는 누군가와 만날 수 있다면 함께 책장을 넘길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하게 만드는 소설이다. 「정상인」의 어느 부분을 읽다가 너무 좋아서 그 부분만 읽었다. 맑스가 자본론 1권을 끝내고 엥겔스에게 보냈다는 편지를 읽고 주영이 감격해 하는 부분. '가난한 자의 작은 기쁨이 넘치는 글은 언제나 주영의 마음을 강타한다.'


나는 행복해지고 싶은 사람이다. 그런데도 자꾸 행복을 부정하고 미루려고 한다. 「나무추격자 돈 사파테로의 모험」의 주인공 역시 그러하다. 불우한 성장 환경이 사파테로를 행복을 모르는 인간으로 만들었다. '일부러 불안을 만들어 행복과의 거리를 유지'하는 사파테로. 죽음이 엄청난 두려움이 아닐 수도 있겠다. 「배꼽 입술, 무는 이빨」은 말이 넘치는 사회를 조롱한다. 감당하기 힘든 절망을 껴안고 사는 이가 꼭 해야 할 말은 하면서 살아갔으면. 모든 삶의 짐을 내려놓고 나무속으로 들어가는 과감한 결말의 소설이다.


지금 죽으면 무엇을 남길 수 있을까. 글쓰기 아카데미에서 만난 인연으로 죽기 전 서로에게 책을 남겨주는 이야기 「상속」. 평소 죽는다는 건 무섭고 두렵고 피하고 싶은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다 죽음을 기꺼이 받아들이며 순응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읽으면 마음이 조용해진다. 「상속」이 그런 역할을 한다. 「마젤」의 결말은 아름답고 감동을 주었다. 김성중은 다양한 주제로 서사를 변주해내는 탁월한 능력을 가졌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김성중은 동화를 애독하는 듯 하다. 그의 소설 속 결말은 독특한 행복을 느끼게 한다. 이야기의 세계는 시련과 역경을 거쳐 안온한 끝이어야한다는 사명을 『에디 혹은 애슐리』에서 보여준다.


『에디 혹은 애슐리』를 읽는데 지루하지 않았다. 지루한 건 내 삶이었다. 흥미로움과 지루함이 적절한 교환을 이루며 2020년의 가을을 보내게 해주었다. 즐거움과 고통이 만나 가장 완벽한 숫자인 0으로써 균형을 이루었다. 그러니 괜찮고 행운과 불운이 동시에 찾아오더라도 평정심을 유지할 수 있다. 없는 행운을 만나려고 애쓰는 짓 따위 하지 않고 불운을 만나도 모른 척 다른 길로 걸어가는 뻔뻔함을 가지면 되는 일이다. 『에디 혹은 애슐리』, 그러니까 무엇을 선택하는 게 아닌 둘 다의 상태로 살아가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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