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오지 않은 소설가에게
마루야마 겐지 지음, 김난주 옮김 / 바다출판사 / 2019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무슨 글이든 매일 써보려고 하지만 쉽지 않다. 핑계로 가득한 무덤 때문이다. 피곤해서. 우울해서. 즐거워서. 시간이 없어서. 같은 되지도 않은 핑계로 내일의 나에게 떠넘겨 버린다. 그 외의 활동은 지치지 않고 한다. 공부 자극을 받으려고 공부 브이로그를 보고. 그럴 시간에 문제집을 펴서 공부를 하는 게 나은데. 책상 정리를 하면 마음이 편안해질 거야 하면서 볼펜, 연필 줄을 맞춰 놓는다. 아니 그러지 말고 문제집을 펴서 밑줄을 그으라니까.


그동안 시집 읽기를 게을리했다는 생각에 시집을 잔뜩 주문해 놓고. 책이 오면 가지런히 꽂아 놓기만 한다. 정말 한심 두심 세심. 그리하여 오늘도 무언 갈해보겠다는 의욕뽕을 맞기 위해 책을 읽었다. 제발 그냥 시작하라니까. 일단 마음가짐이 중요하니까, 책을 읽는 거야. 마루야마 겐지의 『아직 오지 않은 소설가에게』는 한심한 나의 등짝을 찰싹 때렸다.


문학에 대한 마음가짐. 문학으로 무엇을 얻으려고 하겠다는 허영과 허세의 일침을 가한다. 구체적인 계획 없이 작가가 되겠다고 부리는 수작질에 따끔한 충고를 해준다. 좋아하는 작가처럼 쓸 거야를 가장 경계해야 한다고 말한다. 새로운 작품을 쓰려고 해야지 무슨 무슨 스타일을 따라 하겠다는 이상한 잡념을 버릴 것을 요구한다. 소설을 쓰겠다는 '아직 오지 않은 소설가에게' 선배 소설가로서 모든 필살기를 알려준다.


한 작품을 썼다고 해서 바로 신인상에 투고하지 말라. 편집자의 요구대로 맞춰줄 필요는 없다. 편집자는 출판사에서 일하는 직원일 뿐이다. 소설가들과의 교류에서 빠져라. 도시가 아닌 시골에서 집필하라. 선인세를 먼저 요구하지 말라. 어느 장소에서든지 쓸 수 있게 노트를 구비하라. 하루에 두 시간씩 책상에 앉아 쓰라. 일단 쓰고 볼 것. 소설은 쓰지 않고는 결과를 알 수 없는 법. 소설을 쓸 도구란 연필과 공책이면 충분하다.


『아직 오지 않은 소설가에게』에서는 이렇듯 구체적이고 정확하게 소설을 대하는 자세와 방법을 일러준다. 하루에 두 끼를 먹되 산책과 운동은 필수. 생활을 간소화하고 유명세로 문학을 대하지 말아야 함을 강조한다. 일본이나 한국이나 문학은 사양길에 해당하기는 마찬가지인가 보다. 한두 편의 작품으로 소설가 행세를 하며 어떡하든 얼굴을 알려 작품성이 아닌 다른 부수적인 것으로 자신을 알리려는 작가들이 허다한 것이다.


마루야마 겐지는 첫 소설로 데뷔를 하고 그 작품으로 아쿠타가와상을 받았다. 한 편을 써서 작가가 되고 유명해졌다. 그 후로 더 좋은 작품을 써야겠다는 마음 때문에 고생을 했다. 소설 쓰는 일 외에는 대외적인 활동을 하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문학판이 어떤 우스운 꼴로 돌아가는지 잘 아는 자로서 소설에 재능이 있고 직장을 포기하고 글을 써야겠다는 생각을 하는 후배 문인이 될 누군가를 위해 자신의 전철을 밟지 말라는 뜻에서 『아직 오지 않은 소설가에게』를 썼다.


단순한 생활을 하면서 매일 쓰는 일. 잠을 많이 자라는 말에 위로와 공감을 얻었다. 마루야마 겐지가 말하는 소설을 쓸 때 필요한 일 중 그것만 하고 있어서. 고독의 바다로 뛰어들 수 있어야 고독한 독자를 위로할 수 있다는 말. 책을 읽는 행위는 오로지 혼자만이 가능한 일이라서 책을 읽겠다고 펼친 고독한 독자는 좋은 작품을 읽을 권리가 있다. 그들을 위한 사명으로 소설을 써야 한다.


비싼 만년필을 사용할 필요도, 이름 박힌 특제 원고지를 사용할 필요도 없습니다. 도구에 집착하며 이 세계로 들어온 이는 고작해야 삼류 소설가밖에 되지 못합니다. 그들은 문학의 본질과 핵심을 파고들지 못하는 탓에 겉이 나마 치장하려는 것입니다.

(마루야마 겐지, 『아직 오지 않은 소설가에게』中에서)


장바구니에 담아둔 필통과 볼펜을 비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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