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말하고 있잖아 오늘의 젊은 작가 28
정용준 지음 / 민음사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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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용준의 소설 『내가 말하고 있잖아』는 성장 소설의 범주에 속한다. 세상이 자신에게 왜 그렇게 무관심하고 방관으로 일삼는지 도무지 알 수 없어 힘들어하는 아이가 나오고. 지구 용사처럼 맞서 싸우지는 않지만 내내 괴로워하다가 껍질을 깨고 세계 밖으로 탈출하는. 나쁜 어른이 존재하고 또 이상한 어른이 등장하며 손을 내밀어 준다.


말더듬이증이 있는 열네 살의 소년은 자신을 금사빠라고 소개한다. 호의와 친절을 간절히 원하는 소년은 날카로운 첫사랑의 기억을 가지고 있다. 부반장을 자신에게 잘해줬기 때문에 좋아했다. 원래는 다른 이에게 갔어야 할 생일 선물을 부반장은 거절당해 소년에게 줘버린다. 그 길로 소년은 사랑에 빠진다. 내내 부반장에게 관심을 보였지만 돌아오는 한 마디는 '쳐다보지 마'였다.


114 안내원으로 일하는 엄마와 둘이 살고 있다. 엄마의 전 애인 쓰레기가 집으로 들어오기도 한다. 말더듬이증을 고치기 위해 소년은 '스프링 언어 교정원'에 간다. 원장은 사람들에게 소년을 '무연'으로 소개한다. 그곳에선 최근에 말하기 어려운 단어로 이름을 정해 한 달간 부르게 한다. 무연중에 다니는 소년. 스프링 언어 교육원에서 다양한 사람을 만난다.


원장은 노트를 주면서 '말하기 힘든 말. 어려운 단어와 문장을 적'으라고 한다. 무연은 쓴다. 말을 할 수 없다면 쓰는 것으로 소통을 시작한다. '나'로 시작하는 이야기를 쓴다. 나에 대해서. 나의 주변. 나를 괴롭게 하는 것. 나를 실망에 빠뜨리는 것. 소년은 무연에서 24번으로 이름이 바뀐다. 학교에서 이름 대신 불리는 번호. 국어 선생은 소년의 말더듬증을 고쳐 주겠다는 이상한 사명을 가지고 있다. 억지로 글을 읽게 하는 국어 선생은 소년을 24번으로만 부른다.


소년은 조금씩 자신의 말을 할 수 있는 용기를 찾는다. 원장의 표현처럼 용기가 없는 이에게 용기를 내라는 말은 기만이다. 사람들은 가짜의 말로 진짜를 숨긴다. 하지 않아도 될 만을 하며 살아간다. 소년은 일상에 필요한 말만이라도 제대도 하고 싶었다. 교정원에서 만난 이상하거나 다정한 사람들에게서 실마리를 얻는다. 그들은 가짜가 아닌 진짜의 말을 하고 싶어 찾아온 사람들이었다.


계피 맛 사탕을 손에 쥐여주고 돈가스를 사주고 너 진짜 글 잘 쓴다 말해주는. 내내 사소한 친절이 소년의 입을 열 수 있게 도와준다. 소년의 마지막 이름은 용복으로 정해졌다. 소년이 쓴 노트에 가장 많이 나오는 말이 '용서와 복수'였기 때문이다. 소년을 슬프게 했던 누군가들. 용서를 하거나 복수를 하거나. 『내가 말하고 있잖아』를 다 읽고 소년의 진짜 이름이 나왔는지 찾아보았다.


눈 어두운 독자라 혹시 놓쳤을까 봐. 나오지 않았다. 소년이 열네 살에서 열다섯이 되는 고독과 성장의 모습을 보여주기만 했다. 추측한다. 용복이 소년의 진짜 이름이 아닐까 하는. 우리의 삶은 용서와 복수 사이 중간을 헤매고 있다는 암시가 아닐까. 독특하고 다양한 개성을 가진 인물들이 『내가 말하고 있잖아』에 등장한다. 캐릭터가 살아 숨 쉬고 있어 영상화되면 즐거울 것 같다.


스프링 언어 교정원에 가면 나의 이름은 무엇이 될까. 안돼. 싫어. 이렇게 불릴 수도. 용기와 위로를 주는 『내가 말하고 있잖아』. 자신감이 떨어지고 말하는 게 힘든 어른이들. 어른이 되기 전에 좋아하는 말을 마구 하고 싶다면 꼭 이 책을 읽어보기를 바란다. 아까워서 사 놓고 쓰지 못한 펭수 노트의 비닐을 벗겼다. 용복이처럼 나도 쓰며 살고 싶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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