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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계장 이야기 - 63세 임시 계약직 노인장의 노동 일지 ㅣ 우리시대의 논리 27
조정진 지음 / 후마니타스 / 2020년 3월
평점 :
절판
일하지 않을 수 있을까. 예전에는 이런 생각을 하며 시간을 보냈다. 지금은. 일할 수 있을 때 하자. 이런 마음이다. 나이가 점점 들어가면서 밀려오는 불안감. 지금 그만두면 다른 곳에 갈 수 있을까. 나이가 많다고 해서 거절하지 않을까. 버스 정류장 앞 편의점에는 '연금복권. 매달 700만 원'이라는 포스터가 붙어 있다. 길을 건너가서 한 장 사? 말아? 갈등하는 사이 버스가 오고 착실하게 교통카드를 찍는다.
『임계장 이야기』를 읽으며 많은 깨달음을 얻을 수 있었다. 반성도 함께 찾아왔다. 임계장은 임씨 성을 가진 이에게 계장이라는 직급을 붙여 부르는 말이 아니다. 책은 쓴 저자의 이름은 조정진이다. 공기업에서 일하다 정년퇴직한 그는 일을 멈출 수 없었다. 생활비와 자녀 학비를 벌어야 했다. 고속버스 배차원으로 첫 출근을 한다. 전임자에게 인수인계도 받지 못한 채 일을 시작한다. 회사는 경력직의 전임자가 새로 인원 충원을 요청하자 시급 단기직 노동자로 대체했다.
그 자리에 조정진 씨가 들어간 것이다. 그곳에서 그는 임계장이란 호칭을 얻었다. 그는 자신의 성이 임 씨가 아니라 조 씨라고 말한다. 사람들이 자신의 성을 착각해 잘못 불렀다는 생각에서였다. 임시 계약직 노인장. 임계장은 그런 뜻이라고 했다. 탁송 업무를 하다 허리를 다쳤다. 회사는 질병 휴가를 인정해 주지 않았고 그는 해고당했다. 쉴 수가 없던 그는 아파트 경비원으로 일을 한다.
『임계장 이야기』는 믿을 수 없는 이야기와 그럼에도 믿어야 하는 이야기가 혼재한다. 일하는 곳에 후배가 찾아왔지만 변변히 대접할 것이 없던 그는 그간에 쓴 일지를 보여준다. 후배는 꼭 책으로 내야 한다고 했다. 노동의 순간에 찾아왔던 모멸감과 상실감이 『임계장 이야기』의 정서를 이룬다. 아파트 경비원에게 그러한 일도 시키는지 정말 몰랐다. 입주민의 자잘한 심부름을 해야 하고 택배를 찾아가지 않으면 직접 갖다 줘야 한다니. 아파트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의 책임은 경비원에게 지우려 하는 관리사무소장.
다쳤다는 이유로 해고. 바뀐 본부장 차를 몰라보고 호루라기를 불었다는 이유로 해고. 화단에 호스가 아닌 양동이로 물을 주었다는 이유로 해고. 세 번의 해고를 당하고 그는 다시 빌딩 경비원 겸 청소원으로 일하고 있다. 『임계장 이야기』는 '최초의 노인 노동'을 다룬 책이다. 최저 시급을 받으며 고용 불안의 겪으며 일하는 노인들의 목소리가 담겨 있다. 임계장들은 어디에나 존재한다. 고달프고 힘든 일을 하며 하루를 벌어 살아간다. 최근에 입주민의 폭행을 견디다 못해 자살한 경비원을 소식을 듣고 그는 펑펑 울었다고 한다.
고다자. 고르기도 다루기도 자르기도 쉬운 임계장들을 지칭하는 또 다른 말. 이런 말은 안 생겼으면 좋겠다. 그들을 위해 그는 항생제를 맞으며 『임계장 이야기』를 썼다. 그럼에도 죽음을 막지 못했다. 음식물 쓰레기통을 씻기 위함인데 물을 많이 쓴다고 폭언을 듣는다. 기둥 뒤에서 도시락을 먹었다고 혼난다. 화장실과 붙어 있는 숙소. 한 번도 빨지 않은 침구를 덮고 잠을 자야 한단다. 세탁을 요구해도 들어주지 않았다.
정말 이런 사람들이 있을까. 있을 테지. 있다. 내가 겪어보지 않았다고 믿을 수 없다고 함부로 말해서는 안된다. 일확천금을 바라는 짓 따위 하지 않겠다. 연금복권을 산다고 해서 당첨될 확률이 얼마나 될까. 시간에 맞춰 버스를 타고 일을 하고 집으로 돌아온다. 감시와 해고를 하겠다는 협박이 없고 인간적인 대우를 받을 수 있는 정상 사회에서 모두가 살아가기를 염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