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사람을 위한 마음
이주란 지음 / 문학동네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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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란의 『한 사람을 위한 마음』을 읽어가다가 다시 표지를 보았다. 총 아홉 편의 소설이 실려 있는 소설집이 맞았다. 장편소설처럼 느껴졌다. 한 편이 끝나도 비슷한 이야기가 다시 시작되는 느낌이었다. 지루하다는 뜻이 절대 아니다. 오히려 소설 한 편이 끝나는 게 아쉬울 정도였다. 이주란 소설가가 나의 일상을 보고 있나. 왜 이렇게 나와 비슷한 인물들이 나오지.


표제작 「한 사람을 위한 마음」의 조지영이 「사라진 것들 그리고 사라질 것들」에 재등장한다. 비슷하지만 다른 형태의 삶의 모습으로. 「한 사람을 위한 마음」에서 조지영은 언니가 남겨 놓고 간 조카 송이와 엄마와 함께 산다. 성을 바꾸고 싶어 한다. 「사라진 것들 그리고 사라질 것들」의 조지영은 오후 두 시 출근인데 아침 일곱시에 일어난다. 출근하려는 마음의 준비를 하려고.


그런 것이다. 삶은. 비슷한데 미묘하게 달라서 누군가를 함부로 위로할 수도 충고를 말할 수도 없다. 큰 잘못을 저지르며 사는 것도 아닌데 그렇게 살지 마세요라는 문자를 받기도 한다. 청약 저축 이만 원 든 걸 깨서 엄마에게 주고. 집에 혼자 있을 언니에게 가져다주려고 친구 집에서 먹던 음식을 싸 가기도 한다. 아홉 편의 소설을 읽는 내내. 비슷한 이야기를 꾸준히 하고 있는 『한 사람을 위한 마음』을 읽는 내내.


어려운 마음이 들지 않았다. 줄거리를 따라가고 의미와 상징, 소설가가 숨겨 놓은 의도를 파악해야 하는 힘에 겨운 노력을 하지 않아서 안심이 되었다. 이제 이주란의 소설은 아무 때나 펼쳐도 된다는 믿음을 주고 편안한 위로가 되어줄 것이라는 기대를 품게 만들었다. 꼬박꼬박 월급을 받지만 그래도 오늘이 걱정되는 삶을 사는. 병이 생겼다는 진단에 어쩔 줄 모르는. 친구가 내민 만 원을 거절하지 못하고 대신 독후감을 써주는. 사람들이 살아가는 세계를 불편해하지 않아도 된다.


내가 쓰는 글은 누구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 글이다. 책을 읽고 느낌을 잊지 않으려는 일종의 하루를 헛되이 보내고 있지 않다는 발악 같은. 어떤 책은 읽고 나서도 쓸 말이 없지만 그래도 쓴다. 나는 책을 읽었고 책에 대한 글을 쓰면서 그럭저럭 열심히 살고 있지 않느냐는 자기 위안. 『한 사람을 위한 마음』을 아껴서 읽었다. '마지막 페이지입니다'라는 문구를 보고 싶지 않아서.


『한 사람을 위한 마음』은 결국 끝이 났고 이 책은 무엇을 설명하고 파악하려는 시도가 무의미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자신 없어 같은 말을 할 줄 알면 좋겠고 당연하게 나에게 요구하는 것에 거절을 했으면 좋겠다. 이주란의 소설 속 인물들이 실패했던 일에 나는 시도를 해봤으면 한다. 외모와 가난을 이야기해도 무시를 당하지 않았으면. 너보다 내가 더 힘들다 같은 뭣 같은 말을 듣지 않았으면.


『한 사람을 위한 마음』은 소설집인데 장편소설로 읽어도 좋겠다. 도통 마음을 알 수 없는 M이 계속 나오고. 집이 없어 자꾸만 먼 곳으로 이사를 다니는 엄마가 연이어 나온다. 성이 조 씨이면 이름을 지영으로는 짓지 말도록. 교회를 다니는 친구는 나를 위해 기도록 한다는데 그런 거 말고 만나서 커피 한 잔 사줬으면 좋겠다. 특별한 사건이 일어나지도 않았는데 다음 이야기가 궁금해진다. 『한 사람을 위한 마음』은.


누군가의 일기장을 훔쳐보고 있는 듯한 기분을 준다. 그 누군가는 나일 것이다. 세 시 출근인데 열두 시부터 괴로워하는 나. 매일 돈에 대해 생각하고 침울해 하는 나. 감정 조절이 안돼서 병신처럼 굴고 후회하는 나. 수시로 은행 앱에 들어가서 숫자를 들여다보고 있는 나. 그런 한 사람을 위한 마음에 대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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