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가는 유가
이사카 고타로 지음, 김은모 옮김 / 현대문학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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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는 4층 높이의 집 베란다 밖으로 나왔다. 살려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맨발로 옆집으로 매달리듯이 걸어갔다. 라면으로 겨우 허기를 면하고 산에 숨어 있었다. 계부에게 발견되면 다시 집으로 돌아가야 했으니까. 거리로 나온 아이는 지나가는 행인에 의해 발견되었다. 신발도 없이 온몸에 멍이 든 아이가 이상하게 보였다. 편의점으로 데리고 가서 밥을 사 먹이고 경찰에 연락했다.

집안일을 할 때만 목줄을 풀어 주었다. 하루에 밥 한 끼를 겨우 먹었다. 목줄이 잠깐 풀렸을 때 아이는 탈출을 감행했다. 집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고 했다. 누구도 아이를 지켜주지 않았다. 혼자서 자신을 구했다. 이것은 실제 일어난 일이다. 소설이나 영화에서 다루어진 서사가 아니다. 차라리 소설의 어느 한 장면이라고 믿고 싶어질 정도였다. 영화에 그런 장면이 나오면 눈을 감게 되는 이야기였다.

이사카 고타로의 신작 장편 소설 『후가는 유가』는 친부에게서 폭력을 당하는 쌍둥이 형제가 나온다. 큰 아이가 유가. 작은 아이가 후가. 다섯 살 때 옆방에서 후가가 맞고 있었다. 친아버지인데 무차별적으로 아들들을 때린다. 이유는 없다. 친모는 그걸 방관하고 있다. 유가는 동생을 구하고 싶다. 어린 나이인데도 그런 생각을 했다. 히어로물에는 그런 상황에 변신하면서 악당을 물리치는 영웅이 등장한다. 현실은.

사이가 나빠질 수 없는 쌍둥이. 폭력을 휘두르는 남자를 이길 수는 없었다. 단지 유가와 후가는 혼자가 아니라는 점으로 위안을 삼았다. 자신들이 다른 쌍둥이와는 다르다는 점을 초등학교에 들어가서 느낀다. 온몸이 찌릿해지는 순간 유가와 후가의 위치가 바뀐다. 얼굴이 똑같아서 큰 문제는 없었다. 남이 눈치채지 못하게 규칙을 만들었다. 생일이 되면 오전 10시 10분부터 두 시간 간격으로 위치가 바뀐다.

특별한 능력은 아니다. 그걸로 친부의 폭력에서 벗어나지도 못했다. 여전히 폭력을 견딜 수밖에 없다. 다만 학교 동급생이 괴롭힐 당할 때 유가와 후가의 위치 이동 능력으로 때리는 애들을 골려 줄 수는 있었다. 비뚤어지지 않고 성실히 성장해 간다. 공부를 잘하는 유가는 학교로. 운동 신경이 좋은 휴가는 암굴 아줌마 밑에서 일하며 재활용 센터로.

『후가는 유가』에는 끔찍한 폭력과 방관 속에 놓인 어린아이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쌍둥이 형제가 바라보는 어른의 세계는 거짓과 무책임으로 가득했다. 일상의 평범한 행복이 무엇인지 모르고 자라는 쌍둥이. 그렇지만 그들은 둘의 힘으로 폭력을 견딘다. 특별한 순간에 벌어지는 위치 이동 능력으로 곤경에 처한 다른 누군가에게 도움을 준다. 책의 결말로 나아갈수록 가슴이 먹먹해진다.

제발 유가와 후가, 후가와 유가가 행복해졌으면 하는 바람에서. 행복을 빌어주는 일은 쉬운데 빌어준다고 해서 행복해지지는 않는다는 점에서 부질없는 일처럼 느껴진다. 누군가의 행복을 바란다는 건. 4층에서 맨발로 탈출한 아이에게 과거는 잊고 행복한 현재를 살아갔으면 하고 겨우 바랄 뿐이다. 반전에 반전. 『후가는 유가』는 이사카 고타로 소설답게 뛰어난 가독성과 풍부한 이야기의 재미를 선사한다.

한 번 더 반전을 보여줘. 외쳤지만 『후가는 유가』는 쓸쓸한 결말로 끝이 났다. 끝까지 읽고 나면 제목을 계속 음미하게 될 것이다. 후가는 유가. 후가는 유가. 왜 후가의 이름이 앞에 나왔는지도 이해하게 된다. Who가? You가. 너는 누구야? 나는 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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