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의 위로 - 다친 마음을 치유할 레시피 여행
에밀리 넌 지음, 이리나 옮김 / 마음산책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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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실이 나기를 기다리는 동안 엄마는 우리에게 오리고기를 먹고 오라고 했다. 그 와중에도 메뉴를 정해주는 엄마였다. 다른 건 안 되고 꼭 오리고기여야 한다고 했다. 골목을 돌아가면 나오는 맛집이라면서. 동생과 나는 엄마가 일러주는 대로 가서 먹었다. 밥이 안 먹히는 상황이었는데 막상 불판 위에서 익어가는 고기를 보니 허기가 졌다. 밥시간이 아니라서 손님은 우리 밖에 없었다.

다 먹을 때쯤 병실이 났다는 전화가 걸려왔다. 엄마는 응급실에 누워 있었다. 시간이 흐르고 나서야 그때 엄마의 멍한 눈빛이 떠올랐다. 딸들이 배를 채우는 동안 엄마는 혼자 있었다. 엄마만 두고 가고 싶지 않았다. 안 가면 화를 낼 것 같아 억지로 갔는데. 괜찮다고 할걸. 엄마의 눈빛을 보면서 후회가 밀려왔다. 엄마가 떠나고 애도의 날들이 이어졌다. 병원에서 함께 지냈던 시간이 불쑥 불쑥 떠오른다.

어지럽고 메스껍다고 엄마는 음식을 거의 먹지 못했다. 아무것도 해주지 못하고 우두커니 앉아 있는 내가 배가 고플까 걱정을 했다. 뭐든 먹고 오라고 했다. 에밀리 넌의 에세이 『음식의 위로』를 읽는데 자꾸 엄마 생각이 났다. 엄마가 해주던 요리. 엄마랑 같이 먹었던 음식. 병원에서 엄마가 먹고 오라고 했는데 귀찮아서 먹으러 가지 않았던 스테이크. 아파서 정신이 없는데도 스테이크를 먹고 오라고 했다.

『음식의 위로』는 상실을 겪은 이들에게 바쳐지는 위로 모음집이다. 오빠 올리버가 자살을 하면서 에밀리는 깊은 우울감에 빠진다. 알코올 중독이 재발했고 새롭게 꾸린 가정이 깨졌다. 약혼자는 오빠의 죽음에서 벗어나지 못한 에밀리의 슬픔을 공감하지 못한다. 술을 끊지 못하는 에밀리를 병원 응급실에 데려다준 이후 그들은 헤어지기로 한다. 집도 돈도 직업도 없는 에밀리는 술에 의지한다.

재활 센터에 가고 프로그램을 듣는다. 페이스북에 자신이 겪은 그간의 일을 올린다. 놀라운 일이 벌어진다. 에밀리를 아는 모든 이들이 댓글을 달고 위로와 공감, 지지를 해준 것이다. 자신이 있는 곳으로 오라는 친구부터 영혼을 위한 음식 투어를 시작하라는 사람까지. 그동안 겪었던 인생의 고통을 숨김없이 들려주며 에밀리가 절망에 빠지지 않도록 용기를 북돋아 준다.

에밀리는 음식에서 힌트를 얻는다. 요리에 관한 칼럼을 신문과 잡지에 기고했던 그녀였다. 음식이라면 자신이 있었다. 요리를 해서 누군가와 함께 먹는 일로 오빠 올리버의 죽음에 애도를 표할 수 있겠다고 생각한다. 에밀리는 짐을 창고에 보관하고 언니 일레인을 만나러 간다. 재활 프로그램을 다니고 친구들을 만나러 떠난다. 무기력에 빠진 에밀리를 친구들은 결코 외면하지 않는다.

살면서 가장 힘든 시기에 사람들이 진실로 원하는 것은, 남들이 주려는 것보다 훨씬 작은 것일 경우가 많다.
(에밀리 넌, 『음식의 위로』中에서)

어둠이 내리고 곁에 아무도 없음에 눈물 흘리는 저녁이 고독해지지 않도록 에밀리를 아는 친구, 친척, 가족이 손을 내민다. 갑작스러운 죽음 앞에서 우리는 어떤 모습일 수 있는가. 죽음은 후회를 남긴다. 그와 나누었던 모든 순간을 후회라는 감정으로 내내 느껴야 하는 것이 삶의 모습이다. 더 잘해주지 못해 미안하고 더 다정하게 굴지 못해 죄송한 시간을 살아내야 하는 것이다.

에밀리는 위로 음식을 찾아 떠나는 것으로 망가진 삶의 조각을 맞추기 시작한다. 사랑을 모르고 자란 아이는 사랑을 끝없이 갈구하는 일로 자신을 증명해 보이려 한다. 에밀리가 그랬다. 엄마와 아빠에게서 느낄 수 없었던 사랑의 온기를 에밀리는 음식으로부터 찾아낸다. 세상으로부터 버림받았다고 느낄 때 있는 그대로 슬픔을 드러냈다. 나의 슬픔을 사람들은 외면하지 않는다.

어떻게든 위로와 용기를 주기 위한 준비가 누구든지 되어 있다. 혹시 상실로 인한 허무 때문에 자신을 괴롭히고 있진 않은지. 『음식의 위로』의 첫 장을 펼칠 힘이 있었으면 좋겠다. 놀랍고도 솔직한 슬픔의 경험이 『음식의 위로』에 있다. 책을 읽는 동안 당신의 과거가 떠올라 가슴이 아플 수도 있다. 이내 다친 마음을 다독이는 쾌활한 위로가 담긴 사유의 문장을 읽으며 건강한 오늘을 살아간다는 게 커다란 축복임을 깨닫게 될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이 떠나고 나 혼자 남겨졌음에 견딜 수 없을 때 그와 둘러앉아 먹었던 음식을 떠올려 보라. 소박한 밥상의 기억은 그와 내가 지구별에서 잠시 함께 살 수 있었던 행운의 증거이다. 『음식의 위로』는 절망 때문에 주저앉아 있는 나를 일으켜 세우는 다정한 이가 보내온 밥상 같은 책이다. 친절한 타인이 알려주는 요리법을 읽는 것만으로도 불행한 어제는 잊고 오늘을 꿈꾸게 만들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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