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도 1년밖에 안 남았고… - 보조작가 김국시의 생활 에세이
김국시 지음 / 한겨레출판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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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단 말이지. 방송 작가의 세계란 이렇단 말이지. 프리하지 않은 프리랜서. 근로 계약서를 쓰지 않고 방문자용 주차권을 썼다고 해서 까이고 피디의 자식 과학경시대회 보고서를 대신 써 주는. 선배 작가의 말 한마디에 검색에 열을 올리고 퇴근 후에는 카톡 지옥에서 벗어날 수 없는. 자신을 보조작가라고 밝히는 김국시의 에세이 『전세도 1년밖에 안 남았고』를 읽고 나면 방송 작가의 이면을 알 수 있다.

드라마 작가가 되고 싶었지만 어쩌다 한 달만 일해주실 막내 작가를 모집한다는 공고를 보고 덜컥 다큐 작가의 일을 하게 되었다. 그때부터 계속 막내 작가의 길을 걷는 김국시. 인생 뭐 있나. 하고 싶은 거 하면 그만이라고 하는데 하고 싶은 거 빼고 다 하는 게 인생. 죽음과 관련된 다큐를 찍는 팀에서 일을 시작한다. 절벽에도 올라가고 아버지를 섭외해 촬영을 마치기도 한다.

한 달에 200만 원 버는 게 꿈인데. 주말이 있으면 좋겠는데. 6년이 지나도 오늘이라는 현재는 좀처럼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그나마 다행인 건 평생을 함께 할 동반자를 만났다는 정도. 김국시는 대단히 크고 벅찬 행복을 바라지 않는다. 주변이 안전하고 빛이 잘 드는 집에서 값이 조금 나가는 양말을 사고 편의점에서 아이스크림을 마음껏 고르는 삶을 꿈꾼다.

저녁이 있고 퇴근 후에 연락이 오지 않는 지극히 평범한 오늘을 원한다. 같이 밥을 먹으며 나의 일상이 반찬거리로서 탈탈 털리지 않는 관계 속에서 일하고 싶다고 말한다. 방송국에서 만난 많은 사람들 중에 인상 깊은 사람의 면면을 그럼에도 따뜻하게 보여준다. 잘난 사람은 잘난 대로 살고 못난 사람은 못난 대로 사는 요지경 세상 속에서 김국시는 오늘을 살아가는 나를 잃지 않기 위해 노력한다.

『전세도 1년밖에 안 남았고』는 스트레스를 받는 일이라면 되도록이면 하지 말았으면 하는 권유가 있다. 안다. 말이 안 되는 소리라는 거. 전세가 1년밖에 안 남았는데 어떻게 스트레스 좀 받는다고 해서 일을 그만 둘 것인가. 그런데 우리 이거 알아야 한다. 인생은 한 번뿐이라는 거. 돈과 영혼 그리고 육체를 바꾸는 순간 끝이라는걸. 보조작가 김국시는 과연 어떤 선택을 할까.

햇빛 한 점 받지 못해도 바위 밑에서 잘 자라는 이끼로서 그렇게 버텨보자.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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