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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장에 수놓은 이야기 ㅣ 아르테 한국 소설선 작은책 시리즈
구병모 지음 / arte(아르테) / 2020년 3월
평점 :
누가 나를 지켜줄 수 있을까. 누가라고 했지만 위급한 상황이 되면 사람이라는 존재가 나타나기나 할까. 뉴스를 보면, 보고 있으면 일면식도 없는 사람이 묻지 마 폭행을 하고 달아난다. 버젓이 대낮에 사람도 많은 장소에서 그런 일이 벌어진다. 그런 모습을 지켜보고 있는 건 CCTV 일뿐. 사건이 끝나고 상황을 파악하기 위한 용도로밖에 쓰이지 않는다.
모르는 사람이 가하는 폭력이라고 썼지만 평소 가까이 알고 지내는 자들에게서도 폭력은 빈번하게 행해진다. 부모, 자식, 애인, 직장 동료. 말을 안 들어서 웃고 있는 게 기분 나빠서 거짓말을 했다고 해서 이번 한 번만 만나달라고 해서 일어나는 폭력. 구병모의 짧은 소설 『심장에 수놓은 이야기』는 어떤 것이라도 좋으니 제발 위급한 상황에서 나를 지켜줬으면 하는 바람의 상상력에서 쓰였다.
시미는 오십이 넘은 중년 여자로 젊은 시절 영업부에서 지금은 총무부에서 일을 한다. 딸뻘 되는 화인의 목덜미에서 샐러맨더 문신을 본다. 머리를 묶은 자세에서 발견했는데 그걸 보고 상무는 건수를 잡았다는 듯 화인을 이상한 사람으로 몰아간다. 시미는 문신이라고 하지만 요즘 사람들은 타투라고 패션이라고 하는 것을 듣는다. 목덜미에 새긴 샐러맨더를 보고 묘하게 마음이 일렁인다.
화인이 준 명함을 들고 타투이스트의 집으로 찾아간다. 그 사이에 이상한 사건이 연일 뉴스에 보도된다. 부녀가 싸우는 현장에서 불이 났다. 방화의 원인은 알 수 없다. 딸은 상황을 기억하지 못하고 아버지의 사인은 자연 발화가 아닐까 예상되는 사건 하나. 혼자 사는 33세 남자는 동물의 이빨 자국이 몸에 가득한 상태로 죽었다. 도심이라 멧돼지의 소행이라고 보기에도 어렵다. 남자의 옷장에서 청테이프로 묶인 여성이 같이 발견되었다. 도저히 그녀의 범행으로 볼 수는 없는 사건 둘.
화장품 업체의 대표는 익사로 추정된 채 발견되었다. 아파트 CCTV에는 그가 운전사에게 구타를 가하는 장면이 찍혀 있다. 맞은 운전사는 집으로 갔고 아무도 대표의 집으로 들어가지 않았다. 벽지에는 물이 들어찬 흔적이 있었다. 대표를 죽인 범인을 알 수 없는 사건 셋. 시미는 화인이 어느 날부터 부쩍 한숨이 잦아지고 멍한 상태인 걸 알아챈다. 화인은 첫 번째 사건의 피해자로 밝혀진다. 오랫동안 아버지에게 폭력을 당해왔다.
시미는 화인의 병문안을 가고 이상한 장면을 목격한다. 화인 자신을 그것이 지켜주었다고. 목덜미를 보여준다. 화인의 목덜미에 있던 샐러맨더가 사라졌다. 제일 절박했던 순간에 자신을 지켜주고 떠났다는 것이다, 그것이. 시미는 범인을 알 수 없는 현장에서 초자연적인 현상이 일어났음을 짐작한다. 그들의 몸에 새긴 문신과도 관련이 있다는 것도. 죽을 것 같은 순간에 고통을 참아가며 몸에 새긴 그것이 살아나 그이를 지켜주고 떠난다.
오래 고민한 시미는 몸에 무얼 새기고 돌아올까.
위급한 순간이 닥치면 나를 어떻게 구할까. 살릴까. 구병모는 오랫동안 이 문제를 고민해온 듯하다. 순간적인 기지와 우연으로 발생하는 행운이란 기적과도 가까운 것이다. 소설은 안타깝게 죽어간 영혼을 위로한다. 어이없는 형태로 죽어가지 않기 위해서라면 심장에 수를 놓는 잠시의 고통을 선택해볼 수도 있지 않을까라고 말하는 소설. 아무것이라도 좋으니 불행한 나를 지켜 달라고 『심장에 수놓은 이야기』는 외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