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차 Time Difference K-픽션 10
백수린 지음, 전미세리 옮김 / 도서출판 아시아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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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이야기를 할 시간은 아니었다. 아니다. 어떤 이야기를 하는 데에 딱히 시간은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다. 어쩌다 모여 앉았고 이야기는 흘러나오고 뜻밖의 사실에 대해 당황해하거나 눈물을 쏟는다. 내밀한 속 사정이란 내밀한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본심은 자꾸 튀어나오기 십상이고 누군가 질문을 던지기만을 바라고 있었기에 그때 그날의 그 시간의 기억을 털어놓는다.

왜 그럴 수밖에 없었나,라는 질문에

잠깐 멍해졌다가 설명을 하기 시작했는데.

납득할 만한 설명이 되지 못했다. 그 밤에 오래전에 사놓고 잊어버린 백수린의 『시차』를 읽었다. 읽으면서 한낮에 나눈 대화를 떠올렸다. 아, 그게 그러니까. 설명이 되지 않는. 인과 관계가 명확한 소설과 현실은 다르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다. 서사와 사건 사이를 연결하는 인과 관계란 작가가 만들어 놓은 구성 안에서나 가능한 일이었다. 현실에서 일어난 일에 타인을 이해시킬만한 과정은 없다. 그냥 일어났다. 그렇게 되어 버린 일이다.

『시차』는 젊은 날에 이모가 낳고 입양 보낸 이종사촌을 만나 함께한 시간을 담았다. 네덜란드에서 한국으로 날아온 이종사촌. 밤하늘에 별을 찍으며 살아가는 북극에서 오로라를 찍은 이야기를 들려주는 서른여덟의 그에게 '나'는 차마 그 말을 하지 못한다. 생모는 당신을 만나지 않겠다는. 태어나자마자 타국으로 보내진 그의 고단함과 어린 시절의 어떤 기억으로 인한 상처를 수습하지 못하는 '나'의 망설임 사이에서 『시차』는 얇은 희망으로 나아간다.

우리가 보는 별빛은 이미 소멸해 버린 별의 흔적이다. 죽음 이후를 보고 있는 것이다. 죽는다고 하더라도 반짝임으로 남게 된다면 위안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인간의 시간은 동일하게 흐르고 있지 않아 경험을 나눈다기 보다 느낌을 전할 뿐이다. 『시차』에서 두 인물은 한 공간에서 서로를 만났지만 다른 시간을 살았음을 확인한다. 그들은 대화를 이끌어 나갈 수 있는 기억이 없다.

위도와 경도를 달리해 생모를 만나러 온 이종사촌과의 며칠을 통해 '나'는 삶이란 인간에 대한 이해가 아닌 체념의 단계로 나아가는 과정이라는 서글픈 사실을 마주한다. 왜 그때에 그랬는가 이런 의문을 가진 자들에게 그냥 그렇게 되었다고 말할 수밖에 없는 각자의 나약함을 인식하는 것. 소설을 읽으며 한낮의 대화와 의문을 잊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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