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간호사, 사람입니다 - 단 한 번의 실수도 허락하지 않는 삶을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
김현아 지음 / 쌤앤파커스 / 2018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창문을 열면 파란 하늘이 나를 반겨준다. 헐벗은 산의 나무들이 푸른 잎을 매달고 있다. 꽃이 피었고 놀이터에서 노는 아이들의 함성이 들린다. 너희, 빨리 학교 가고 싶지? 씽씽이를 타고 단지 앞을 달리며 웃는다. 택배 차가 하루에도 몇 번씩 들어온다. 제목에 끌려 기사를 클릭했다. '간호사 출신 작가 김현아, 드라마 집필 접고 의료 지원 위해 대구로'

21년 동안 중환자실 간호사로 살아온 김현아의 이야기였다. 메르스 사태 때 그가 있던 병원에서 메르스 확진 환자가 사망했다. 즉시 14일간 코호트 격리 상태로 중환자실에서 싸워야 했다. 그때 겪었던 기록이 신문 지면에 실리면서 사람들에게 놀라움을 안겨주었다. 숨도 쉬기 버거운 마스크와 방호복을 입고 중환자실에서 사투를 벌였다. 기적과도 같은 일이 벌어졌다. 최초 메르스 사망자 이외에 단 한 명도 그곳에서 메르스 확진 환자가 발생하지 않은 것이다.

그의 글이 세상에 알려지고 유명해졌지만 간호사 업무를 소홀히 할 수 없었다. 근무를 하면서 인터뷰와 강연 요청에 응답했다. 간호사라는 직업과 처우에 대해 알리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환자를 살리겠다는 사명감이 분명 존재했지만 그는 후배 간호사가 환자 가족에게 폭행을 당할 때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는 무력감으로 간호사를 그만두었다. 『나는 간호사, 사람입니다』는 간호사로서 살아왔던 그간의 기록이 담긴 책이다.

의료보험비를 내지 못해 병원에 갈 수 없었던 엄마를 위해 간호사가 되기로 결심한다. 중환자실을 전담하는 간호사가 되어 그곳에서 만난 환자의 일화와 보낸 시간이 생생하게 담겨 있다. '내 환자'라고 김현아는 부른다. 열악한 처우와 모든 걸 돈으로 생각하는 병원 경영에도 무너지지 않을 수 있었던 건 '내 환자'를 살리겠다는 마음 때문이었다. 『나는 간호사, 사람입니다』를 읽기 전까지는 알 수 없었다. 간호사의 업무가 어디까지인지.

중환자실에서 그들은 무적이 되어야 했다. 신입 간호사가 들어와도 업무 파악을 할 수 있는 시간은 주어지지 않았다. 인원을 증원해도 모자랄판에 병원은 경영 논리를 앞세워 간호사 인원을 줄였다. 경력 간호사가 그만두는 걸 좋아하기도 했다. 인건비 부담 때문이었다. 밥도 제대로 먹지 못하고 근무를 해서 환자에게 먹여야 할 밥을 자신의 입으로 가져간 간호사. 폐기물 쓰레기통 옆에서 달걀 한 알을 씹지도 못하고 삼킨 간호사.

죽음과 삶이 동시에 공존하는 중환자실에서 만난 환자들의 이야기는 알 수 없는 미래가 아닌 지금 여기에서 충실히 살라고 말한다. 출근하기 위해 버스로 달려가다가 사고를 당하고 교통사고로 아이를 먼저 떠나보낸다. 저승사자와 맞서 싸우는 김현아가 바라본 중환자실에서의 죽음의 모습은 처참했다. 돈 때문에 죽어 가는 부모 앞에서 싸우는 형제. 죽음이 임박해 옴을 알고서 같은 편이 되어 달라는 할머니. 가족을 위해 자신을 희생한 어머니.

김현아는 메르스 코호트 격리 기간 중에 자신의 어머니를 대구로 보냈다. 그 일로 대구에 마음의 빚을 진 게 있다고 하면서 대구로 의료 지원에 나서겠다는 신청을 했다. 드라마 집필도 멈춰 두었다. 『나는 간호사, 사람입니다』를 읽은 사람은 알겠지만 그는 노련하고 능숙한 간호사였다, 아니 간호사이다.

간호사란 직업은 끝까지 자신의 자리를 지키고 환자들을 열심히 돌보면 돌볼수록 점점 자괴감이 커져가는 직업 같았다. 어쩌면 자괴감이란 무슨 일이 있어도 자기가 끝까지 할 일을 끝까지 해낸 사람들만이 느끼는 감정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국가 전체가 위기였던 메르스 때 내가 중환자실에 남았던 건 병원을 위해서가 아니었다. 내가 중환자실에 남은 이유는 오로지 그곳에 내가 돌보던 내 환자들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다른 많은 간호사들도 나처럼 자기 환자들을 끝까지 지키려 각 병원에 남았다. 메르스에 감염되어도 그 누구에게도 책임을 묻지 않던 그곳엔 간호사들의 '희생'이 가득했다.
(김현아, 『나는 간호사 사람입니다』中에서)

끝까지 환자를 지키려고 했던 김현아는 다시 간호사가 되어 대구로 간다. 자괴감 때문에 간호사를 그만두었던 그였다. 어떤 이들에게 자괴감은 자신의 일을 정당화하기 위한 말이었다. 책임지지 않기 위해서 하는 그럴듯한 말로써 자괴감이라는 말을 쓰곤 했다. 김현아는 자괴감의 뜻을 다시 생각하게 한다. '자기가 해야 할 일을 끝까지 해낸 사람들만이 느끼는 감정'이 자괴감인 것이다. 누가 자괴감이란 말을 함부로 쓰면서 책임을 떠넘기고 진실을 왜곡하는가.

죽음 앞에서 한없이 무력해지고 약해지는 인간의 모습을 통해 삶의 정의를 곱씹게 만드는 책, 『나는 간호사, 사람입니다』. 삶이란 알 수 없다 와 모르겠다의 반복이다. 무엇도 장담할 수 없다도 추가한다. 모호한 세계를 뚫고 나갈 수 있는 힘이란 나보다 우리를 생각하는 마음이다. 단단하게 살 수 있었던 건 누군가들이 베풀어준 호의 때문이었다. 지금은 마음의 빚을 갚을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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