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원 아침달 시집 2
유진목 지음 / 아침달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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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자귀나무
-유진목

살면서 가장 슬펐을 때가 언제냐고 물었더니 나 같은 사람이 한 둘이 아니라고 하더군요. 사람은 왜 그런 걸 궁금해하냐고 해요. 나는 몇 번째냐니까 몇 가지 떠오르는 일이 있나 봅니다.

무슨 생각해?

그는 가지 끝을 떨구고 한참을 울었습니다.

우리 엄마는 너처럼 고운 빛을 가지고 있었어. 그걸로 내 머리를 빗겨 주었거든. 널 보면 그때 생각이 나.

그건 마치 바람이 불어서 네가 흩어지는 것과 비슷한 거야.

그는 좋았던 이야기를 생각하며 나무 아래 서 있습니다.

33. 능소나무
-유진목

그는 나를 향해 길어진다. 그는 나를 향해 뾰족해진다. 붉은 것이 툭 터진 그는 담장에 올라 속삭인다.

다 왔어.

햇빛이 쏟아지는 그늘이었다.

나하고 같이 갈래?

담장을 타고 우리는 긴 긴 시간을 붙어서 갔다.

39. 유목
-유진목

먼바다를 헤엄치다 보면 예상치 못한 것을 만나게 됩니다. 이게 나를 죽일 수도 있구나 생각하면 다시 바다에 나가는 일을 망설이게 되죠.

세상에 혼자 남겨졌을 때

내가 그런 게 아니라고 하면

위로가 되던가요?

여기 두 사람이 깊은 잠에 빠져 있습니다.

어느 쪽이 더 사랑하는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망설이는 사람은 계속해서 살아갈 수 있습니다.

나무는 말이 없다. 수목원에 갔더니 동물원도 있었다. 포악한 원숭이 한 마리. 사람들이 놀리니 화가 난 것 같았다. 빽빽하게 서 있는 나무를 보는 척만 했다. 사진을 찍고 버스를 타고 돌아 나왔다. 사는 건 왜 이다지도 흐릿할까. 기억은 있는데 흔적은 없다.

세상에 혼자 남겨졌을 때. 위로는 필요 없다.

나 하고 같이 갈래? 말 만으로도 고맙다.

살면서 가장 슬펐을 때가 언제인지 물어봐 주기를 바라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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